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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술집 만들기

-코로나19로 술집에 갈 수 없는 부부들을 위하여

by 엉뚱이

또 600명이 넘었다. 이번주에도 확진자는 줄지않고 아무래도 1천명대까지 갈 모양이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아내에게 데이트를 청했다. 즐겨찾는 동네 술집으로 슬슬 걸어 가봤는데...세상에나! 마스크도 안 쓴 인간들이 드글드글하여 (아마도 저녁 9시까지 영업한다고 하니 미리들 부어라마셔라 하는 모양)그냥 나와버렸다.




인간은 늘 자극이 필요한 존재이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라 하던가...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19가 모든 인간들의 삶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렸다. 이제 3주간 또 아무 것도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인 탁구, 볼링, 독서모임...가끔 취하고 싶을 때 설렁설렁 나가는 마실까지도!


그래...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하자.


아내와 나는 술집을 못가니 집안에 술집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옥상에 널브러져 있는 야외 목재 테이블을 어찌어찌 톱질도 하고 손봐서 거실 베란다에다 배치하였다. 그리고 하얀 페인트를 주문해 와, 베란다에 보이는 모든 곳을 화이트톤으로 바꾸었다. 숯불통도 구입하여 베란다 한 구석에서 직화구이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50와트짜리 짱짱한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장착을 해놓으니 늘 가던 술집 부럽지않은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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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맞은편에도 Bar를 만들기로 하였다. 가운데에 근사한 고흐 그림을 하나 걸고 벽을 빨갛게 래핑했더니 기존의 하얀 보조 식탁과 잘 어울려 금새 압구정동 카페 저리 가라할 정도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내친 김에 안방도 손보기로 하였다. 베란다 바깥에 쭈그리고 있었던 고물 탁자를 안방에 들여오고 근사한 식탁보를 하나 씌웠더니 또 하나의 슈필라움이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다락방 서재를 두 구획으로 나누어 한 쪽은 완전 서재, 한 쪽은 문화공간(사실 술 공간)으로 꾸몄다. (아...그런데 몇 천 권이 되는 책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했더니 허리가 삐긋하여 완전히 맛탱이(?)가 간 것 같다 ㅜㅜ)

순식간에 우리는 무려 4차까지 갈 수 있는 술집들을 가지게 되었다. 아내에게 물어본다. 오늘 1차는 어디에서 하지? 베란다 술집! 2차는? 다락방 술집! 3차는? 안방 술집! 4차는? 주방 Bar! 5차는? 화장실에 누워있겄지!


햐~코로나가 우리 집 지형까지 바꾸어놓았다. 가는 곳마다 음주가무를 위한 테이블과 스피커를 배치해놓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술술술! ㅎㅎㅎ




하여튼, 무료한 코로나 시기에 집안의 인테리어를 조금씩 옮겨보고, 새로운 색깔로 벽을 칠하거나 테이블과 책장도 바꾸어 보는 것은 정서상 상당히 자극이 되는 활동이다.(이참에 아내는 사람도 좀 바꿔달란다. 자기도 정서 좀 자극받게)


사람은 환경을 바꾸지만, 환경이 사람을 바꿀 수도 있다. 부부관계가 지루해졌다면 가끔 환경을 바꾸어보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술집 컨셉도 좋고 갤러리 컨셉도 좋다. 어쩌면 집안에 분위기있는 작은 카페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벽에 화가들의 멋진 모작도 걸어놓자. 그러면 부부간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다. 화가의 이야기도 나오고 음식 이야기, 예전에 갔었던 이쁜 카페나 바닷가도 소록소록 소환이 된다. 가끔 스피커에 ASMR로 파도소리나 모닥불 소리를 고정해놓으면 금상첨화겠지...


우리 부부는 오늘 저녁도 3차까지 가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의 대화 주제를 뭘로 할까? 흠...이걸로 해야겠다. 우리 만난지 몇 일 되었는지 알아맞히기, 그리고 왜 만났는지 알아맞히기, (아...진짜, 왜 만났지)

물어보다 아무래도 한 대 얻어맞을 것 같다.


- 코로나 19가 심해지는 2020.12월 어느날, 용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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