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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Sep 29. 2021

지극히 개인적인 리더십 이야기 ⑥

- 사람 내치는 방법 (직원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는 방법)

부하직원 한 사람을 다른 부서로 전보 보냈을 때의 일이에요.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었으나, 조직 다운사이징 흐름에서 몇 명을 조정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었지요. 마침 그룹 감사실에서 충원 요청이 들어와 해당 실장과 충분히 협의한 후 그에게 감사실로 이동을 명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필자도 전보 발령이 나서 본사에서 사업장의 HRD 팀장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졌는데, 그해 그룹 정기 감사에 제가 적발된 것이었지요. 덮어쓴 죄명은 "허가 없이 외부 강의를 하였고, 게다가 저한테 외부 강의를 주선한 컨설팅사와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 프로젝트 수의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었어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부족하지만 필자가 HR 외골수 30년 차 경력이라 그런지 HR 관련 특강은 늘 있어왔고, 그때마다 CEO나 인사팀에 구두 보고를 한 뒤에 개인 연차를 내고 다녀왔는데 '허가 없이'라니...

게다가 수의 계약이라... 이것은 이미 지점 기획실과 충분히 논의하고 CEO에게도 컨펌받은 후에 진행한 것인데... 그럼 CEO와 기획실장도 공동 책임이 있다는 것인가요?


저는 구두 소명과 함께 성실하게 문서 소명까지 완벽하게 작성을 해서 넘겼지요. 하지만 소명은 형식적 절차일 뿐, 회장님께는 어처구니없는 감사 보고서가 그대로 올라갔고, 결국 저는 징계위에 회부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사건 종결 후 다시 한번 추론해보니, 이 모든 것의 뒷배경에는 몇 년 전 감사실로 전보 보낸 그 부하직원의 감정이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그의 직무가 각 지점의 HR 관련 감사였으니 개연성은 더욱 충분할 터...


"나쁜 자식!"

내가 그래도 옛 상관이었고, 당시 전보 발령 부서는 나름 그 친구를 많이 생각해서 보낸 부서였었는데...


하지만 솟구치는 마음속 감정을 누르고, 몇 년 전의 그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였죠. 전보되었을 당시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같이 근무할 당시에는 저와 상당히 친했었는데...


다시 거꾸로 생각해보니 많이 억울했을 듯했습니다. 본인은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서장에 불필요한 인원정리 풀 안에 들어가 있었다니, 배신감과 자괴감도 많이 들 수도 있었을 듯했죠.


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인과응보의 첫 동아줄은 내가 꼬았구나! 하아...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는 대체 어떻게 했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내치는 것은 정말이지, 몇 날 며칠을 숙고해야만 하고, 최대한 합리적이고 충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을 중용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을 내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내침을 당하는 사람은 어떠한 보상 계획을 받더라도 속으로는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해요. fMRI를 활용한 뇌 연구에 의하면, 그룹에서 배제될 때 느끼는 감정은 누군가 내 피부를 꿰뚫는 고통과 똑같은 부위의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즉, 누군가에게 물리적 폭력을 당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왕따나 집단 따돌림 현상을 못 견뎌 누군가는 우울증에 빠지고 심지어는 자살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내치는 것도 TPO(Time, Place, Occasion)을 잘 따져서 해야만 합니다. 


첫째, Time을 고려하자. 


다른 부서에 보내고 싶은 직원이 있다면 직원 경력개발제도의 정기 직무 순환 기간을 활용해 보도록 하세요. 기업에서는 통상적으로 연말 임원 인사가 끝나면 직원 정기 이동 인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보내야 합니다. 이것은 직원이 잘못해서 다른 곳으로 전보 보내는 것이 아니라, 경력개발을 위해서 보내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당사자의 부정적인 감정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둘째, Place를 고려하자.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거나, 평소 쌓은 전문성과 다른, 전혀 엉뚱한 곳에 재배치하게 되면 이 또한 심각한 부작용이 따릅니다. 직원 개인 차원에서는 내적 동기 감소로 인하여 역량 개발은커녕 생활형 직원(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자)이 될 가능성이 많겠고, 조직 역량에도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급적이면 이전 직무와 연계할 수 있는 부서나 직무, 직책을 고려해주도록 합니다.


또, Place 문제를 고려할 때, 지역 문제도 같이 고민해주어야 합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갑자기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이나 광주에 가서 근무하라고 한다면, 당사자는 차라리 자신의 생활 연고지에 있는 다른 회사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셋째, Occasion을 고려하자. 


다른 부서로 보낼 때는 그 부서에서 당사자가 꼭 필요로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우리 부서 역시 전력 손실이 상당하다는 것도 미리 알려줍니다. 이러한 상황이 매번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없으므로 전보 전에 부서장끼리 미리 짜고 물밑 협약을 해두는 것도 좋겠어요.




저의 뼈아픈 경험을 담은 지극히 개인적인 직원 전보 발령 방법을 나열해보았는데, 결국 모든 HR의 전략의 기본은 '인간존중'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만의 개체성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문화가 조직 Talent 확보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 많이 주는 회사면 무엇합니까? 인간 학대 또는 인간 경멸, 인간 무시 조직이라면?


앞으로는 직원 내치는 방법 대신에 진정으로 직원 모시기 방법을 고민해야겠어요. 자칫 직원을 내치는 상황이 아니라 거꾸로 내가 직원에게 내침을 당할 수도 있기에...


- 9월 용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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