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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Feb 03. 2021

노래는 신과 만나는 사다리다

접신하는 가수, 이성원

전문용어 좀 써야겠다. 노래를 ‘접신’하듯 하는 사람들이 있다.

드라마에도 나온 ‘손’이나 ‘방법’이 아니다.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를 때 신과 만나듯 한다.

자신의 신과 만나기 위해 서서히 악기를 움직이며 정신의 채비를 시작한다.

♪둥기둥 둥둥둥 덩기덩 당당 둥둥둥 ♪

자신의 소리를 얹기전 신맞이 동료를 먼저 울린다.

 마치 연주소리를 드높이 올려 신에게 닿는 사다리를 쌓는 것같다. 갑니다, 우리가 갑니다...


인간들의 언어에 갇혀서 그걸 반주라 말하고, ‘왜 노래는 안부르지?’ 하는 순간,

 그의 기도는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건너가 버린다.

 그저 연주의 사다리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따라 올라가면 된다.

♪둥두두둥 둥 당다다 당당 엄마아야 누우나이야아아♪

드디어 입술과 바람과 혀가 연주에 얹어지면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시작된다.

가끔은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의 목소리가 연주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3, 4분동안이지만 잠시 피안의 세계에서 천국의 맛을 보게 된다.

암브로시아와 넥타르가 그런 맛이리라.

그 맛의 비밀은 한번 맛을 보면 오래오래 그맛의 여운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들었다면 잠시의 감동으로 사라지기도 하겠지만

그런 경험자체는 신비한 것으로 남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언어 속에 우리 자신이 갇혀 산다는 생각을 한다.

시인과 소설가는 그 언어를 도구삼아 이야기를 짓고, 철학가는 사유의 집을 짓는다지만,

세상에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하물며 신에게 이르는 과정이야 두말 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그들 자신도 자신들이 내놓은 성과물이

그저 언어속에 우겨 넣으려고 애쓰는 과정 속에 얻어내는 부산물인 줄 화들짝 깨달을 때가 있을까.

노래나 음악은 더 그렇다.

흔히 인문학을 통한 지적 사유의 표현물이 예술이거나 문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렇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각자 자신의 시각에서 생각하고 표현한 것일 뿐일테니.


누군가는 음악으로 쉬어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음악으로 신을 만난다.      


결국 노래나 음악의 가치는 듣고 눈물 짓고 순간 위로를 받는 자체로 소비하는 것 너머에 있지 않을까.

요즘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 더 음악을 소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눈의 영역에 갇히면 노래의 내공이 덜해도 그럴 듯하게 여기기도 한다.

어젯밤 잠시, 신의 발치까지 갔지만

제사장이 하고픈 세속의 언어가 많아 서 말들의 벽에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맛본 ‘접신’과정이었다.

가수 이성원은 접신 전공 노래사제 같다.       


항상 내 안에 있는 신을 만나기가 참, 그렇게 어려운 것 같다.


*이성원씨는 진해출신 포크가수로 인도를 거쳐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며

가끔 고향 진해로 살짝 오기도 하고,

전국에 흩어진 후배들과 동료를 만나 ‘헛방’이 된 요즘노래의 시간을 걱정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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