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정말 있을까
♬…내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중략)
가는 세월 어쩔끄나 늘어진 계수나무 끄트머리에다 매달아놓고
국곡투식 하는 넘과 부모불혀 허는 넘과 형제화목 못허는 넘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어서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쓸쓸하던 그 골목이 살아있던 시절, 대문앞에서 장기 두던 할배는 탁배기 한잔 걸치면 꼭 이 <사철가>를 부르셨어요. 막 배우던 영어 알파벳보다 더 알아듣기 힘든 대목도 있었지만 이제 할배나이 즈음에 이 노래를 찾아 듣습니다. 주름진 눈가에 촉촉해지던 눈물을 얼핏 보았나 싶은데 내가 그러고 있습니다.
영화 <서편제>속 양아버지 유봉역할의 김명곤이 양딸 송화, 오정해의 눈을 멀게 만들죠. 오로지 노래에 집중시키려 했다는데 그때는 비정한 애비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학대입니다. 예술은 그러니까, 무서운 면이 있는 장르죠. 그 딸을 지팡이를 잡히고 앞서 데리고 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사철가>입니다. 그렇게 배운 노래가 딸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지만 시절이 다르니….
‘창자’(노래하는 이)가 아니라 ‘작창자’(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이)라는 천재 이자람의 공연을 보러갔을 때 새롭게 이 노래를 만나기도 했네요. 어렸을 때 아버지 이규대씨와 함께 부르던 <내이름(예솔아) >기억하는 사람들 있을 겁니다. 힘있고 의지를 담아 판소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청년 이자람의 단가는 남달랐습니다. 미래를 향한 노래랄까요? 암튼 완창하면 몇시간도 걸리는 판소리를 제대로 하기 전 목을 푸는 노래로 ‘단가’라고 부른답니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이 단가들도 당시에는 최신곡이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을 보니 인기곡이었겠죠.
이산저산에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니 봄인줄 알겠는데, 세상사는 봄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허망하기만 하다고 그시절 선조들도 느끼며 살았나 봅니다. 그때도 봄처럼 짧은 것도 없어서 곧 떠날 걸 아니까 아예 반기지 않겠다는 거죠. 그래도 미련에 소리 지릅니다. ‘갈테면 가라’고요. 봄 닮은 내 청춘도 날 버리고 갔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오는 여름과 가을 겨울을 차례로 노래합니다.
‘한잔 먹소 그만 먹게’하며 거드렁거리며 놀아보자는 대목에서는 최근 본 영화 <어나더 라운드>가 안성맞춤입니다. 애주가들에게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 확신을 가져다 주는 영화더라고요. ‘어나더 라운드’의 의미가 ‘한잔 더! 혹은 2차, 3차’, 뭐 이런 뜻인 것으로 압니다.
<사철가> 속 재미있는 것은 시간개념입니다. 세월이 가서 사계절이 바뀌고 나도 늙어가니 이 세월, 시간이란 녀석을 계수나무에 매달아 놓자고 합니다. 순리상 누군가는 보내기도 해야 하니 백성곡식 허투루 먹는 공무원들, 불효하고 우애 없는 인간들 먼저 보내고 남은 벗들, 겨울 백설 닮은 흰머리 벗들은 ‘한잔 먹소 그만 먹게’ 하며 거드렁거리며 현실을 즐기자고 는 겁니다. 각성이 됩니다. 결국 있는 것은 지금 뿐이라고.
그런데요. 어쩌면 시간이란 녀석은 그 실체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세월이 간다’는 것은 ‘우리는 여기 있다’ 고 보는 해석이죠. 그런데요. 추억도 그렇고요. 미래의 어느 날도 그렇고요. 시간은 불러내면 언제든 있는 것이죠. 단가 <사철가>만 해도 사랑받는 노래여서 그때도 있었지만 지금 불러내니 여기에도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에도 불러내면 있겠죠. 결국 불러내어 있는 것이니 노래도 사람도 또한 시간도 어쩌면 없는 것이 아닐까요, 불러내지 않는다면요.
저는 지금 이 자리에 탁배기 걸치던 할배도 불러내고 서편제 속 배우들도 불러내고 이자람과 이글 읽는 여러분과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저도 불러내어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