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나의 강박증 이야기
나는 숫자 3을 좋아한다. 3은 완전한 숫자다. 무엇이든 3개가 있으면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다. 물건 하나를 정중앙에 놓고, 이것을 기준 삼아 나머지 둘을 대칭으로 배치하면 된다. 비슷한 이유로 건축물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 건축물은 선과 면으로 구성된 피사체이면서 네모반듯한 창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처럼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좋아하고, 모든 걸 제자리에 두거나 나름의 규칙에 따라 배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자타공인 각(角)쟁이다.
내 눈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격자가 보인다. 가로세로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인쇄된 반투명한 종이를 눈에 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나는 모든 물건을 가상의 격자점 위에 올려두고, 격자무늬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벽에 사진이나 메모지를 붙일 때는 흐트러짐이 없도록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손톱을 깎을 때는 잘려 나간 손톱의 두께가 동일하도록 깎는다. 매가리 없는 에코백보다는 의자에 반듯하게 눕혀두거나 세울 수 있는 가방을 들고나간다. 부득이하게 에코백을 들었다면 에코백을 의자 위에 최대한 평평하게 펴놓는다. 지갑을 오래 사용하면 자주 사용하는 칸만 유독 카드가 깊숙이 들어가곤 하는데, 그럼 끝까지 밀어 넣지 않고 다른 칸의 카드와 위치를 맞춰 조금 빼둔다. 설령 카드가 계속 빠져나올지라도. 책을 여러 권 겹쳐둘 때는 가장 큰 책을 맨 아래에 놓고 그 책의 모서리에 맞춰 책을 쌓는다. 책상이나 벽지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이 생기면 대칭의 지점에 일부러 얼룩을 만들거나, 다 먹고 버릴 우유 팩을 굳이 원래의 직사각형으로 모양으로 잘 펴두기도 한다. 친구는 이런 내게 각쟁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여기까지만 읽고도 이미 눈치챈 사람이 있겠지만, 내 정리 습관은 사실 도가 지나치다. ‘습관'이 어쩌면 ‘강박'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지인 A씨로부터 나의 정리벽에 관한 기막힌 일화를 들은 이후부터 시작됐다.
이야기는 직장을 다니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직장 선배였던 A씨는 간단한 논의를 하려고 내 자리에 찾아왔다. 우리는 모니터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A씨는 잠시 내 마우스를 넘겨받아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내가 집중을 못하며 어수선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마우스 패드의 정중앙에 올려두더라는 것이다. 마우스는 본디 계속해서 위치가 바뀔 수밖에 없는 물품인데, 그걸 구태 정리하는 걸 보고 A씨는 속으로 무척 놀랐었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이 내 물건을 건드릴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결국 ‘마음이 편안해지는' 위치로 돌려놓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름의 사회생활이랍시고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비밀스럽게 행동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겉으로 티가 날 만큼 불안해했다는 건 전혀 몰랐다.
강박(强迫)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매우 강하게 핍박한다’는 뜻이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면 몹시 괴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건강의학에서는 어떤 생각이나 행동에 사로잡혀 일상생활의 불편을 겪는 상태를 강박 장애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강박 장애는 불안을 일으키는 '강박적 사고'나 이를 일시적으로 없애기 위한 '강박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내 정리 ‘습관’을 여기에 대입해보자. 나는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거나 각 맞춰 정렬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균형을 이룰 때까지 불안은 계속 이어진다. 정리 ‘습관'은 불안을 없애기 위한 ‘강박' 행동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확실히 습관이라고 보긴 어렵다. 습관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지만 나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정리하는 건 즐겁지 않고, 정리하지 않는 건 괴롭다.
습관과 강박을 구분하고 나니, 강박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습관이 보였다. 바로 아무리 하찮은 생각일지라도 일단 떠오르고 나면 메모해야 하는 습관이다. 만약 메모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떠오른 생각의 수만큼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고, 메모할 수 있을 때까지 손을 풀지 않는다. 손가락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인식할 때마다 아까의 생각을 되뇌면서 기억하려 애쓴다. 그러나 대부분 지나치게 하찮은 생각인지라 이렇게 하기도 전에 휘발되어 버릴 때가 많다. 그럼 잊어버린 생각을 되찾기 위해 모든 행동을 멈추고 생각을 되찾기 위한 생각에 몰두한다. 빠르면 30분, 길면 1시간 안으로 생각이 돌아온다. 허나 가끔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생각이 있다. 그럴 땐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며칠을 허비해버리고 만다. 처음엔 분명 중요한 생각을 놓칠 때만 이런 골몰에 빠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생각도 되돌리지 않으면 불안한 지경에 이르렀다.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지만, 점점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강박은 자신이 친 거미줄에 걸린 거미의 꼴과 같다. 제 줄에 걸린 거미도 처음부터 자기를 옭아매려고 줄을 치진 않는다. 그러나 가느다란 거미줄 하나가 몸에 걸쳐진 줄도 모르고 반복해서 거미줄을 치다 보면, 어느 순간 제 몸을 에워싸버리고 마는 것이다. 습관은 그렇게 강박이 된다. 한 번 거미줄에 걸리면 탈출이 어렵듯이 강박 역시 빠져나오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강박은 그 행동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 완화된다. 그러나 누가 내 책을 아무렇게나 책장에 쑤셔서 넣어놓고 정리하지 못하게 하거나, 떠오른 생각을 어디에도 옮겨 적지 못하게 막는다면? 아마 돌아버리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나는 오늘도 정렬하고, 메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썼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나를 에워싼 강박의 거미줄 안에서 살아갈 예정이다.
이왕지사 같이 살기로 했다면, ‘잘’ 살아볼 궁리를 해보자. 요즘은 강박이라는 놈과 가능하면 잘 지내보려고 애쓰고 있다. 나의 강박들에게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 정리(이를테면 버릴 우유 팩을 굳이 펴놓는 것과 같은)를 하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이런 강박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인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행동을 기록해둔다. 생각을 되찾기 위한 생각에 몰두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때면, 되찾은 생각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이 글도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볼일 보고 다 먹은 우유 팩 각 맞춰서 싱크대에 올려놔야지. 나도 참 징글징글하다. 이걸로 글이나 써볼까?”라고 적어둔 메모에서 시작했다. 어찌 됐든 한 편의 글을 위한 자양분이 되어주었으니, 나의 강박들을 너무 미워하진 말자.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에게는 어떤 강박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