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삶의 이스터 에그를 찾는 짜릿함
모든 것은 낯섦에서 시작된다. 낯설어하면, 낯설게 할 수 있다. 창작자는 낯섦과 친해져야 한다(’자까의 세상’ 2화 참고). 통찰을 얻었으니 이젠 실천할 시간이다. 더 많은 익숙함을 낯섦으로 바꿔 보자. 지난 일주일 동안 하루 한 번은 꼭 낯설어하는 연습을 했다. 평소에 사용하던 주간 계획표 양식을 활용해 ‘낯설어하기’ 기록표도 마련했다. 그곳에 당연한 사건, 현상, 방법, 생각 등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본 순간들을 적었다.
‘낯설어하기’ 첫날, 눈 뜨자마자 핸드폰 배경 화면에 시선이 갔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물건이 핸드폰인 만큼, 핸드폰 배경 화면부터 새롭게 바꿔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핸드폰 배경 화면에 큰 관심이 없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것도 기본 배경 화면 중 하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이 들어간. 잠깐, 내가 노란색을 좋아했던가? 아니다. 노란색이 재물을 부르는 색상이라는 사주풀이를 듣고, 노란색을 가까이했을 뿐이다. 나도 모르게 관념으로 자리 잡은 생각에 순응하는 버릇은 버리자. 낯섦과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대충 받아들이지 말고 관념을 집요하게 파헤치자. 새로운 배경 화면으로 평상시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보라색 배경 화면을 선택했다. 신선했다. 한 번도 보라색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관심조차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하다. 보라색은 생각보다 더 부드럽고, 차분한 색이었다. 새벽의 평화, 봄날의 꽃향기 같았다. 지금도 내 핸드폰 배경 화면은 보라색이다.
아침 독서도 ‘낯설어하기' 대상이었다. 아침 독서는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두뇌를 깨우기 위해 실천하는 매일의 습관이다. 30분 동안 소설이나 에세이, 또는 인문서를 읽으며 두뇌를 말랑하게 만든다. 그런데 왜 소설, 에세이, 인문서와 같이 긴 호흡의 글만 읽었을까? 지금까지의 아침 독서는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도구였다. 독서는 장문의 글을 출력하기 위한 준비 운동이었고, 책은 훌륭한 문장들을 모아둔 작가들의 비밀 금고였다. 이런 식의 독서는 흥미진진한 소설, 깊은 통찰이 담긴 에세이,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인문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오만한 짓이었다. 오늘은 단문의 글을 읽어보자. 사놓고 읽지 않았던 청마 유치환 선생의 시집을 꺼냈다. 30분 동안 그의 시 5편을 읽었다. 눈으로도 읽고, 입으로도 읽어 보았다. 시대적 정서와 시인의 감정에 집중했다. 글자마다 진심을 아로새기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랜만에 독서에 온전히 빠져들었다. 낯설어하기는 다양한 형태의 성찰을 돕는다.
지금까지 모아 온 수많은 메모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시시때때로 메모하는 사람이다. 감히 메모 중독자라고 말할 수 있다. 번뜩이는 생각이 순식간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메모를 시작했다. 메모는 습관 그 이상의 것이 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얼 그렇게 적냐”는 거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장에 적고 있었다. 내가 남긴 메모에도 무언가 새로운 게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메모장을 꺼내는 만큼, 메모해놓았다는 사실마저 잊힌 케케묵은 메모들이 많았다. 메모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았다. 옛날 일기장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웃음을 참지 못해 킥킥거린 메모도 있었고, 똑같은 생각을 표현만 바꿔 적은 메모도 있었으며, 무언가가 좋다고 적었다가 얼마 뒤엔 싫다고 적은 변덕스러운 메모도 있었다. 이번 ‘낯설어하기’의 가장 큰 수확은 문장 수집이었다. 아침 독서의 원래 목적이었던 그것 말이다. 과거의 내게 고마울 정도로, 표현과 깊이가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 메모들은 모두 ‘문장 활용’ 노트에 별도로 정리해두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낯설어하기'는 동네 물놀이장에서의 경험이다. ‘낯설어하기'를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동네 물놀이장에서 놀기. 거긴 구민들의 여름 나기를 위해 구에서 마련한 곳이었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하천 근처에 자그마하게 조성해두었다. 대여섯 살 어린아이의 허리춤에 겨우 찰랑거릴 정도의 얕은 물이 채워져 있다. 집에서는 고작 1분 거리다. 주말이면 물놀이장에 어린이들이 빼곡히 모인다. 어른들은 물놀이장을 에워싸고 앉아 아이들을 지켜본다. 어디에도 ‘어린이를 위한 물놀이장’이라고 쓰여 있진 않지만, 물놀이장에 발을 담그는 어른은 없다. 어른의 체면은 발 한번 담가보고 싶은 바람을 막아섰다. 해보지 않은 일을 직접 해보는 것만큼 강력한 낯설어하기는 없지 않을까? ‘낯설어하기’를 핑계 삼아 체면치레를 벗어던지고 물놀이장에 발을 담갔다. 마침 평일이라 아이들도 많지 않았다. 첨벙거리며 물속을 걸어 다니고, 아무도 없는 쪽으로 물을 튀겨보고, 수영 연습하듯이 다리를 번갈아 움직여보기도 했다. 시원한 물, 따뜻한 햇빛, 선선한 바람,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 순간의 공기를 병에 모아 담는다면, 그 병의 이름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평화’일 순간이었다. 집에서 몇 걸음 나서면 이런 평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낯설어하기'를 구실 삼지 않았다면 이런 평화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더 실천하기 어려웠다. 의식적으로 계속 되뇌어야만 하루에 한두 번 정도 무언가를 낯설어할 수 있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하루는 별 탈 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미 글에서도 묻어났겠지만, 분명 그 이상의 재미가 있었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 누군가 장난스럽게 숨겨둔 이스터 에그를 찾는 기분이었다. 짜릿하고 특별했다.
아쉽게도 ‘낯설어하기'가 나의 메모 습관처럼 자연스러워지려면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다. 지금 상태에서 각고의 노력 없이 일상에서 ‘낯설어하기’ 모드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책을 세웠다. 낯설어하는 연습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낯선 사고를 유도하는 질문을 모으기로. 답변까지 이어지지 않아도 좋다. 세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 이미 ‘낯설어하기’는 성공이다. 영감은 샌프란시스코 작가집단 그로토의 <글쓰기 좋은 질문 642>에서 받았다. 제목 그대로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은 다채로운 글쓰기를 위해 글쓰기에 좋은 질문들을 모아둔 책이다. 이 책은 ‘낯설어하기’를 창작의 습관으로 삼고자 하는 내게 유용한 방법론을 제시해주었다.
아래는 지금껏 모은 질문 중 몇 가지를 발췌한 것이다. 질문 모으기는 지금도 트위터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답변은 필요 없다고 했지만, 100가지의 질문을 모으면 그에 대한 답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볼까 한다.
하얀 마음, 노란 마음, 빨간 마음, 파란 마음, 검은 마음이 있다면?
전 세계 사람이 단일 언어를 사용한다면?
당신이 특히 아끼고 사랑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써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