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나의 페이버릿을 생각해

8화. 진실은 언제나 하나!

by 방자까

해야 할 일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일주일이었다. 글쓰기를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더는 미루면 안 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까의 세상'을 쓰기 위해 문서 프로그램을 켰다. 뭘 써야 할까. 이 상태로 글을 완성할 수나 있을까. 문서 프로그램을 앞에 켜둔 채로 온갖 무용한 딴짓들을 하다가, 결국엔 생기를 잃은 식물처럼 그저 앉아만 있었다. 아아, 햇살이 필요하다. 축 처진 나의 줄기를 다시 일으켜 세울 만큼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 필히 글을 써야 한다면, 나를 살게 하는 햇살에 관해 써야겠다. 떠올리기만 해도 힘이 나는 나의 페이버릿(Favorite)에 관해.


긴말하지 않고 소개하겠다. 나의 페이버릿은, 세기의 소년 만화 《명탐정 코난》이다. 이 사실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두뇌가 작동할 힘을 얻은 것 같다. 맥없이 스러져가던 영혼이 어느새 키보드 위에서 춤추고 있다. 《명탐정 코난》은 내 마음속 소셜 미디어에서 언제나 엄청난 수의 ‘좋아요'를 단번에 확보하는 치트키(cheat key)다. ‘코난' 하면 《미래소년 코난》부터 떠올리는 우리 아빠와 같은 독자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명탐정 코난》은 범죄 조직의 약물에 의해 고등학생에서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소년 탐정 ‘코난’이 각종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만화다. 내 나이만큼 연재되어 이제는 고전 만화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코난'이 자신감으로 가득한 얼굴로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외치는 대사가 유명하다.


나는 언제부턴가 ‘코난’ 덕후였다. 언제부터 《명탐정 코난》이 나의 페이버릿이 되었을까? 초등학생 탐정이 셜록 홈스처럼 사건을 멋들어지게 해결하는 스토리라인이 취향에 맞았나?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각종 범죄 사건의 트릭을 파헤치는 과정이 흥미로웠나? 아오야마 고쇼 작가의 개성 있는 그림체가 매력적이었나? 아니다. 내가 ‘코난’ 덕후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내 취향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나는 추리 소설만 골라 읽는 추리 소설 마니아고, 아오야마 고쇼 작가의 그림체와 비슷한 만화를 좋아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명탐정 코난》을 좋아하기 시작한 시점에 자리 잡은 몇몇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생 탐정의 이야기가 나의 세계 깊숙이 발을 들인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나에게는 네 살 터울의 고모가 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지금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마음으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으나, 어릴 적엔 일주일에 한 번은 얼굴을 보는 가까운 사이였다. 때는 바야흐로 나는 초등학생, 고모는 중학생이던 시절이었다. 주말에 고모 집에 들르면, 교복을 입은 고모가 방에서 늘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땐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내게 고모는 형제간의 동경을 유발하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초등학생 아이의 눈에는 교복을 입은 모습도, 만화책을 읽는 모습도 정말 멋져 보였다. (나는 지금도 고모를 동경하는데, 그 이유는 만화를 좋아했던 고모가 이제는 그림으로 돈벌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서 도서 대여점을 운영하셔서 고모 집엔 항상 만화책이 많았다. 도서 대여점을 처분한 다음엔 만화책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동경이 전부였다. 단 한 번도 만화책을 펼쳐보지 못했다. 고모는 사춘기였고, 나는 만화책을 빌려달라고 말할 만큼 숫기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마침내 고모 집에서 만화책을 읽었던 건, 고모가 대학생이 되어 독립한 이후였다. 할아버지께서는 고모가 아끼는 만화책은 다 챙겨갔으니, 남아있는 만화책은 편하게 읽어도 된다고 허락해주셨다. 바로 그때, 내가 집어 들었던 만화책이 《명탐정 코난》이다.


그러나 고모 집에 있던 수많은 만화책 중에서 굳이 그걸 골랐던 건, 이미 《명탐정 코난》에 푹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명탐정 코난》을 좋아하기 시작한 시점은 그로부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때 우리 모녀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찜질방에 갔다. 엄마의 페이버릿이 찜질방이던 시기였다. 지금은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찜질을 즐기시지만, 당시 엄마는 도서 대여점에 들러 찜질방에서 읽을 로맨스 소설을 자주 빌리셨다. 나는 자동차에서 엄마를 기다리거나,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엄마와 함께 도서 대여점에 들어갔던 어느 날, 그날따라 만화책이 진열된 서가를 구경하고 싶었다. 또 그날따라 특별히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즐겨봤던 《명탐정 코난》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그날따라 엄마가 빌리고 싶은 만화책이 있으면 빌려보라는 제안을 하셨다. 생각해보면 운명 같은 만남이다. 그날 나는 《명탐정 코난》 만화책 46권을 빌렸다. (46권의 만화책을 빌린 게 아니라, 46번째 단행본을 빌렸다는 뜻이다.) 제일 처음 읽었던 《명탐정 코난》 만화책이 몇 번째 단행본이었는지를 아직까지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다. 1권부터 읽기도 싫고, 그렇다고 맨 마지막에 출시된 책(대략 80권쯤이었다)을 읽기도 싫어서 적당히 46권을 골랐었다. 어찌나 흥미진진하고 재밌던지, 찜질방에서 매트 펴고 누워 46권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그날 이후로, 찜질방에 갈 때마다 도서 대여점에서 주야장천 《명탐정 코난》을 빌려 읽었다. 도서 대여점, 아니, 만화방이라고 더 자주 불렸던 그곳은 가히 천국과 다름없었다. 엄마께선 필요할 때마다 용돈을 하사하시는 스타일이었으나, 엄마가 생각하시기에 만화책은 필요의 영역에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만화책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거부당할 때마다 언젠간 《명탐정 코난》 만화책 전권을 사 모으는 어른이 되겠다며 다짐하곤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만화책 한 권에 오백 원이면 빌릴 수 있는 도서 대여점이 있었으니까. 오천 원이면 열 권을 빌릴 수 있었다. 대여 기간은 보통 하루. 열 권을 빌린 날에는 만 24시간 이내에 그걸 다 읽어야 했다. 반납이 하루씩 지연될 때마다 한 권당 백 원의 연체료가 붙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무리하게 열 권의 만화책을 빌렸고, 연체료를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찜질방에서 소년 탐정의 추리 생활에 몰두했다. 짜릿하게 행복한 탐독의 시간이었다. 시간은 흘러 《명탐정 코난》 만화책은 어느새 101권까지 발행되었고, 나는 정말로 만화책을 사 모으는 어른이 되었다. 아직 전권을 다 모으진 못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출시된 단행본은 전부 구매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나의 페이버릿은 만화책이라고 썼다. 《명탐정 코난》을 시작으로 다른 만화책에도 관심을 붙였으니까. 그런데 어느새 ‘코난' 예찬만 잔뜩 늘어놓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성찰 끝에 만화책 읽기는 그저 취미고, 예찬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는 건 《명탐정 코난》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만화책을 읽는 사람에 대한 어린 시절의 동경, 첫 만화책 대여의 기억, 연체료를 내지 않기 위해 어느 때보다 만화책에 빠져들었던 순간들이 내 안에서 마구 중첩되어 하나의 긍정적인 덩어리로 남았다. 《명탐정 코난》을 읽는 게 재밌기도 하지만, 만화책을 빌리는 것도, 사는 것도, 다음 편을 기다리는 것도, 완결을 응원하는 것도 모두 좋다. 무엇보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명탐정 코난》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내가 좋다. 기약 없는 연재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일지 알기에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조심스럽게 《명탐정 코난》 작가님께서 앞으로 딱 50년만 더 연재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본다.


힘들 땐 좋아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럼 내 안에서 행복의 동그라미가 두둥실 떠오르는 게 느껴져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손가락을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는데, 좋아하는 것의 기원과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와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적고 나니 비로소 힘이 난다. 다가오는 일주일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보단 나를 웃음 짓게 하는 것 사이에 파묻힐 수 있도록, 그렇게 살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0만 원짜리 전동 스쿠터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