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정반대인 사람과
친해졌을까?

9화. 우리의 우정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이유

by 방자까

나에겐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친구가 있다. 성격, 취향, 가치관, 인생관, 대인관계까지 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는 친구다. 맞지 않는 위치에 욱여넣은 직소 퍼즐 조각,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톱니바퀴가 바로 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우정 톱니바퀴는 6년째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다르냐고? 우리는 자기소개서에서 제일 처음 묻는 성장 과정부터 극과 극이다. 나는 외동아이로 태어나 핵가족 중의 핵가족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부모님조차 형제가 많지 않으셔서 명절날에도 고작해야 네다섯 명 모이는 게 전부다. 반면, B(친구의 이니셜을 따서 B라고 지칭하겠다)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7인 대가족의 일원이다. 무려 3명의 동생과 조모님을 모시고 생활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 탓인지, 평생 반찬 싸움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모든 면에서 행동이 굼뜨고 조금은 이기적인 편이나, 맛있는 반찬이 동날세라 허겁지겁 식사를 해치우는 게 일상이었다는 B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성격을 가졌다. 반찬을 양보하는 맏이로서의 습관이 몸에 밴 이타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또 우리 가족은 종교가 없지만, B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모태 신앙인이다. 함께 기독교 대학을 다닌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기독교 학교의 채플 수업 강요 문제로 자주 싸운다(아무래도 '강요'라는 단어를 썼다고 B가 화낼 것 같다).


취향도 완전히 다르다. 나는 전자기기나 필기구에 관심이 많고, B는 패션에 관심이 많다. 나는 밖에 입고 나갈 수 있는 옷이면 뭐든 장땡이라고 생각하지만(쇼핑이 귀찮아서 그마저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안 입는다고 준 옷이 대부분이다), B는 옷의 소재, 브랜드, 조합을 고려해 때와 장소에 맞춰 자신만의 스타일로 옷을 입는다. 새롭고 흥미로운 전자기기가 출시되면 눈이 돌아가는 나와는 달리, B는 전자기기에 돈 쓰는 걸 무엇보다 아까워한다(전자기기를 살 돈이면 옷을 한 벌 더 산다나. 옷에 왜 그렇게 큰돈을 써야 하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안 맞는 게 취향뿐이겠는가, 성향도 정반대다. B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즉흥적인 인간이고, 나는 계획 없인 못 사는 통제적인 인간이다. 나는 계획을 지켜야 행복해지고, B는 마음을 따라야 행복해진다. 또 나는 정리에 집착하는데, B는 위생에 집착한다. 나는 물건을 깔끔하게 정렬해두어야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B는 물건을 소독제로 청결하게 닦아두어야만 마음이 편안해진단다. 정리와 위생은 얼핏 다를 바 없어 보이나, 둘은 전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나는 위생에는 큰 관심이 없고, B는 물건 어지르기 장인이기 때문이다. 함께 식당을 방문하면 나는 식기류를 일렬종대로 가지런히 놓아두고, B는 내가 내려놓은 식기류를 굳이 다시 집어 들어 휴지로 하나하나 깨끗하게 닦는다. 우린 쓸데없이 예민하다면서 서로에게 눈을 흘기곤 한다.


성격은 어떨까? 나는 모든 일은 다 흘러간다는 생각으로 산다. 불을 붙이려고 노력해도 쉬이 점화하지 않는 젖은 나뭇가지와 같다. 웬만한 일에 크게 요동하지 않아 감정의 연기가 옅게 피어오르고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큰일들을 무던히 넘기다가도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마는 단점이 있다. 반면, 감정에 불이 화르륵 붙는 B는 모든 일에 언제나 마음을 다한다. 기쁜 일에는 누구보다 기뻐하고, 슬픈 일에는 누구보다 슬퍼하고, 화나는 일에는 누구보다 분노하며, 즐거운 일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즐길 줄 안다. 감정 기복이 큰 편이지만, 그렇기에 어떤 감정이든 금세 털어버린다는 게 장점이다.


시시때때로 티격태격하는 건 기본이고, 서로를 이해해주자며 악수하고 돌아서서 또 다투는 우리 사이. 하지만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어언 6년째다. 견원지간이 따로 없는 나와 내 친구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차이 때문이다. 항상 서로를 못마땅해하지만, 그것이 곧 재미이자 즐거움이다. B의 이야기는 라디오 사연처럼 신기하고 흥미롭다. 때때로 다툼이 벌어져도 늘 서로를 향한 이해와 사고의 확장으로 끝맺음한다. 나는 B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대가족의 집은 조용할 틈 없이 시끌벅적하다거나 냉장고에 넣어둔 간식은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싱거운 이야기부터 삶을 대하는 종교인의 자세와 태도, 사람의 품위를 결정하는 패션의 힘, 마음을 따르는 즉흥적인 결정의 가져다주는 행복,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감정을 딛고 더 빠르게 일어설 수 있다는 것까지. 통 안에 든 화약처럼 작고 단편적이었던 내 세상은 B라는 불씨를 만나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만큼 확장했다. 우리의 우정의 조건은 합이 아니었다. 우리는 달랐기에 친해질 수 있었다.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면서 불편함을 드러내는 일도 쉬워졌다. 그래서인지 자신과 조금만 달라도 틀리거나 잘못되었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소셜 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된, 특정 MBTI 성격유형을 가진 사람은 지원받지 않겠다는 어떤 회사의 채용공고는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에 통탄스러움을 느끼던 차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내 친구가 떠올랐다. 잘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를 억지로 회전시키면 어쩔 수 없는 마모가 생길 수 있다. 그렇더라도 시작부터 다름을 거부하지는 말자. 마모의 결말이 언제나 고장은 아니다. 바람과 돌의 마찰은 언젠가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낸다.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라도 조금씩 깎이면 결국엔 매끄럽게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완벽하게 맞물린 상태에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매력적인 모양의 톱니바퀴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나와 B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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