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외동의 삶, 그렇게 나쁘지 않다
“형제 관계가 어떻게 돼요?”
“저는 외동이에요.”
“전혀 몰랐어요. 외동 같지 않은 외동이네요.”
친밀감을 쌓는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질문. 형제 관계를 묻는 말에 ‘외동’이라 답하면, 열에 아홉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며칠 전, 새로운 모임에서도 외동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다들 칭찬의 의도를 담아 건네는 말일 테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그리 달갑지 않다. 이 말이 칭찬이라는 건, 외둥이를 향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아이, 형제가 없어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 이것이 외둥이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들이다. 가끔은 “역시, 외동일 줄 알았어요.”라는 반응을 맞닥뜨리기도 하는데, 외둥이를 향한 편견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이것은 이것대로 좋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제 외동 같다는 말도, 외동 같지 않다는 말도 듣기 싫다. 이제 형제자매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보다 혼자 자라는 아이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그런데 그 모든 외둥이가 정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배려심과 사회성이 부족할까? 가족 형태의 새로운 표준으로 재정립될 외둥이 가족을 둘러싼 부정적 편견에 약간의 금을 내보아야겠다. 이십 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외동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외둥이 삶의 이점을 한 번 풀어보겠다. (참고: 후술할 내용에는 외둥이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뒤집기 위해 나의 장점을 여럿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자랑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또 과학적 근거보다는 주관적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하다 보니, 조금은 억지스러운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외둥이 편견을 상쇄하기 위함이니, 부디 약간의 뽐내기와 억지를 이해해주기를 간청해본다.)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차지하는 외둥이, 정말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아주 작은 표본에 불과하나, 외둥이로 자란 주변 지인 중에 이런 부정적 성향을 띠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먼저 나는 내 잇속만 철저히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얼마 전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음료를 주문하려고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기다리다가 내 순서가 되어 계산대 앞에 섰다. 그런데 카드 리더기에 주인 잃은 신용카드가 덩그러니 꽂혀 있는 게 아닌가(요즘은 손님이 앞에 놓인 카드 리더기에 직접 카드의 IC칩을 꽂아 결제해야 하는 곳이 많다). 나는 무의식 속에 흐릿하게 남은 앞 손님의 인상착의를 떠올리며, 3층짜리 카페 안을 수색했다. 다행히 바로 앞 손님을 찾았고, 카드를 무사히 돌려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내 잇속만 챙기는 사람이었다면, 앞 손님이 두고 간 카드쯤은 대수롭지 않게 무시했을 것이다.
고작 이 일화만을 가지고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속에 이기심의 불씨가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카드 리더기에 꽂혀 있는 카드를 보는 순간, ‘귀찮고 번거로운데 주인을 찾아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나 역시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의 스펙트럼 어딘가에서 이타심 쪽으로 치우친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튀어 오른 이기심의 불씨는 단 몇 초 만에 사라졌다. 만약 모종의 이유로 카드의 주인을 찾아주지 못했다면 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을 것이다.
나는 특별히 자기중심적인 사람도 아니다. 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하고, 더 고유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나는 아직 능력이 발현되지 않은 요정이나 마법사일지 몰라.’,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있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 사람이 내가 아닐까?’를 고민하는 것만 빼면 말이다(이건 자기중심적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덕후 기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아이를 자만하게 하는 과장된 칭찬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사회적으로 대우 받는 직업을 갖기를 강요하지도 않으셨다. 나는 외동이지만, 자만보다는 겸손이, 대우보다는 자기 만족이 중요하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둥이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건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부모의 사랑을 독점하는 것과 이기심 또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발현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이의 나쁜 성향을 강화하는 건 형제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부모의 양육 방식이나 타고난 기질이다. 부모가 사랑을 담뿍 주었다고 해서 아이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이기적인 인간이나 대우를 당연시하는 자기중심적 인간으로 자란다면, 어느 누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겠는가?
그럼 형제가 없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편견은 어떨까?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 내향형 같지 않은 내향형 인간으로 불린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나의 사회적인 모습을 보고 외향형인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내향형과 외향형을 나누는 기준이 사회성의 유무는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사회성과 사교성을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하기에 이를 근거로 들었다.) 외둥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사회적인 인간으로 자란다. 형제가 없으니 어려서부터 또래와 교류하는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또래 관계를 맺는다. 또 부모와의 친밀한 교류가 부족한 또래와의 교류를 채워주기도 한다. 형제가 없다고 해서 외둥이가 온종일 아무 말도 안 할 것이라 생각했는가? 외동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편견의 근거를 한 번만 깊이 생각해봤더라면, 그 편견은 지금보다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외둥이도 형제가 있는 다른 아이들처럼 사람들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게다가 형제가 없는 건 단점이 아니다. 자신하건대, 외동의 유년 시절이 형제가 있는 아이의 유년 시절보다 훨씬 더 평온하고 안정적일 것이다. 형제와 쓸데없는 다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더 나은 형제에게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비교의 감정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형제 관계에서의 비교 없이 성장한 건 외동으로서 누린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형제가 있는 독자가 내가 풀어놓은 외둥이의 이점에 적잖은 부러움을 느꼈다면, 편견 속에 살아온 외둥이로서의 지난 설움이 조금은 풀릴 것도 같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듯이, 외동의 삶에도 피할 수 없는 어둠은 분명 존재한다.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할 때면 같이 웃고 떠들 형제가 없어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봤고,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집을 비워 혼자 집을 지킬 때면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으려 항상 텔레비전을 켜놓곤 했다. 그러다 때때로 부모님이 싸우실 때면, 외동의 삶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방구석에서 부모님이 화해하시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많이 다투시지도 않았는데, 외둥이의 단점 하면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견뎠던 몇몇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러나 외동의 삶의 가장 최악의 단점은 따로 있다. 바로 먼 훗날 필시 혼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지만, 내가 탈 없이 이생을 살아낸다면 언젠가는 부모님께서 작고하시는 순간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이 생각에만 사로잡히면 덜컥 겁이 난다. 이럴 때 함께 의논하고, 함께 슬퍼할 형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 외동의 삶이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틀림없이 좋은 면도 있다. 누군가에게 ‘OO 같지 않은 OO’이라는 말을 칭찬 삼아 건네왔다면, 이제는 자제해보자. 정체성을 부정하며 건네는 칭찬은 무의식에 녹아있는 편견을 강화하는 표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