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손들고 질문하지 못했다

11화. 나는 소심한 사람일까?

by 방자까

얼마 전, 한 영화의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했다. 관객이 직접 감독과 배우에게 영화에 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여기저기서 번쩍 손을 들었다. 영화 관계자가 손을 든 관객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문답을 듣다 보니 내 머릿속에도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궁금증이 생긴 순간, 내 심장이 제 위치를 벗어나 엉뚱한 곳에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실은 심장 박동이 너무 격해진 나머지, 목구멍에서 심장이 뛰고 있다고 느껴졌던 것이지만. 누군가 물어봐 주지 않을까? 다음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할지 모르니까 일단 기다려보자. 그러나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았다. 손을 들어볼까? 내가 손들었을 때 하필 여러 명이 동시에 손들면 어쩌지. 혹시 말이라도 꼬이면? 나의 질문이 너무 가볍고 별 볼 일 없으면? 마이크를 통해 내 목소리가 너무 크게 나오면 부끄러울 것 같은데. 1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에서 나는 결국 손 한 번을 들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질문은 물론, 질문 앞뒤로 덧붙일 찬사와 감사의 말까지 생각해 두었는데도 말이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할까?


그런데 내가 정말 소심한 사람일까? 대단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어린 나이에 프리랜서의 길에 용감히 뛰어들었고, 기업 관계자를 인터뷰하는 일도 직업으로 삼고 있다. 팀을 이끄는 리더의 자리나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군중 속에서 손들고 질문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고 해서 나를 소심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판단이 쉽지 않을 때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이 있다. 맥락으로 이해하고 사용해 온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보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단어의 의미를 좇다 보면 판단에 도움을 주는 근거가 생긴다. ‘소심하다’는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많다는 뜻이다. ‘대담하다’는 담력이 크다는 뜻이고, ‘담력’은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을 의미한다. ‘조심성’은 무슨 일에나 조심하는 성질이라는 뜻이며, ‘조심’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과 행동에 마음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소심한 사람은 ‘겁이 많고, 용감하지 않으며,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무슨 일에나 말과 행동을 신경 쓰는 사람’이다. 그럼 내가 정말 소심한 사람인지,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첫 번째. 나는 겁이 많은가?


보자, 내가 무서워하는 게 있던가? 음, 꺼리는 건 있다. 어릴 적 귀신 때문에 밤잠 못 이루곤 했었지. 그럴 때면 엄마께서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워지는 나이가 곧 올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나이깨나 먹은 지금도 귀신은 여전히 싫다. 귀신은 자기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 앞에만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귀신이 우리 곁에 머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귀신이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귀신이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아서, 그것도 그것대로 신경 쓰인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을 때는 아무리 눈에 물이 들어가도 항상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눈을 감으면 귀신이 자기 머리를 가져다 댄다는 미신이 있다), 이불은 꼭 발끝이 안 보이도록 완전히 덮고 잔다(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그곳을 통해 귀신이 들어올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꽤 피곤하게 살고 있다.


아, 귀신만큼 꺼리는 것이 또 있다. 비행기, 정확히 말하면, 비행이 싫다. 하늘에 떠 있는 동안은 내 목숨을 기장과 승무원에게 온전히 맡겨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이 주는 공포감을 견디기가 어렵다. 몇 년 전, 베트남 다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콩닥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옥의 5시간이었다. 모든 승객이 잠을 청하는 밤 비행기에서 나 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밤, 비행기, 혼자. 세 가지 상황의 콤비네이션에 귀신 생각까지 스멀스멀 피어올라 두 배, 아니 네 배로 무서웠다.


아아, 애써 부정해보려 했으나 불가능이다. 되지도 않는 센 척은 집어치우자. 그렇다, 나는 겁이 많다. 무서워하는 것도 많고, 두려워하는 것도 많다. 귀신과 비행 외에도 바퀴벌레, 바닥이 투명한 고층 빌딩의 바닥, 부실 공사, 자동차 교통사고, 침몰, 자연재해, 죽음, 지구 멸망, 사람들의 평가, 거절당하는 일 따위가 무섭고 두렵다. 소심이 1차 테스트, 프리패스다.


두 번째. 나는 용감한가?


겁쟁이냐는 질문엔 괜한 허세를 부려봤지만, 이 질문에는 비교적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 두려워하는 것은 많아도, 나는 꽤 씩씩하고 기운찬 편이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금방 극복해낸다. 힘든 일일수록 더 기운 내서 기꺼이 해낸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일 하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지낸다. 대한민국에서 여자 혼자 10년 가까이 혼자 살아냈으면 그것만으로 용감함을 입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소심이 2차 테스트는 기분 좋게 탈락이다.


세 번째. 나는 조심성이 많은가?


안타깝게도 소심이 3차 테스트 문항은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이 통과다. 나는 자타공인 조심성이 아주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과 행동에 마음을 아주 많이 쓴다.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를까 봐 으레 해야 하는 말조차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게다가 직구도 제대로 못 날리는 주제에 기껏 던지는 커브볼도 늘 아웃되는 형편이다. 언젠가 제때 일을 마치지 않은 동료에게 마음 굳게 먹고 한 소리를 건넨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영 마음이 쓰여 지나치게 강한 어조로 말한 건 아닌지 검토해달라며 친구에게 내가 보낸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친구는 코웃음을 쳤다. 이걸 보고 기분 나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오히려 내 말이 수고했다는 격려로 들린다고 했다.


‘소심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깊이 있게 고찰해본 결과, 나는 66% 정도는 소심한 사람이다. 돌아보면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손을 들지 못한 것도 겁과 조심성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질문을 평가할까 두려워서, 행여나 사회자가 내가 손든 걸 보지 못해 행사가 끝날 때까지 간택당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손들지 못했다. 내 질문이 감독이나 배우, 관객들에게 불편을 야기할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모두가 듣기 좋은 완벽한 질문을 하고 싶어서 고작 한 문장짜리 질문을 머릿속으로 계속 윤문했다. 질문조차 하지 못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나에게는 33%의 대담함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현장에서는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을 감독의 소셜 미디어 다이렉트 메시지(DM)를 통해 전달했고, 감사하게도 답을 얻었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비슷한 작은 용기를 냈었다.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소심함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 장문의 메일을 써서 발송했다. 전무님부터 인턴까지 모두 포함된 팀의 그룹 메일을 ‘받는 사람’으로 지정하고서. 소심하더라도 포기하진 않는다. 그게 소심한 용자인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대담’의 디귿은 앞에서 세 번째 글자이고, ‘소심’의 시옷은 앞에서 일곱 번째 글자이다. 중간까진 가야 보이는 글자, 시옷. 나도 그렇다. 곧바로 용감하게 행동하지는 못해도 여섯 번 정도 망설이고 고민한 뒤, 일곱 번째에는 비로소 용기를 내는 사람. 끝에서 두 번째 글자인 ‘포기’의 피읖이 나를 대표하는 글자가 아닌 것만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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