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다면

베틀을 짜는 마음으로

때때로 마음속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일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타이핑을 시작하면 써 내려가는 속도보다 삭제버튼을 누르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일쑤.

이 표현은 너무 식상해.

이건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야.

재미가 없어.

이런 고민은 꼭 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남편 역시도 '그리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 사이에서 매번 갈등한다.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나 이미 있는 곡을 연주하는 것과는 달리 '창작'이 필요한 영역으로 들어서면 사람은 누구나 망설인다. 동기는 내 생각과 마음이지만 욕구는 인정과 공감을 받는 것이어서 그런 듯하다.

그래서 나도 일관성이 있는 주제로 시리즈를 엮어 브런치북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었다. 때문에 오랫동안 어떤 글도 완결하지 못했다. '작가의 서랍'에는 쓰다만 글들이 흐트러져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가 글 쓰고 싶은 마음을 풀어놓을 공간이 필요해서였는데, 왜 자꾸 사람들이 흥미 있어할 만한 글감만 고민하며 정작 내 마음은 숨겨두어야 할까? 그동안 브런치에 발행한 내 글들에는 가족에 대한 애정과 관심, 내 주변에 대한 고찰이 들어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몽글몽글한 마음 말고도 울퉁불퉁한 마음도 있다. 남편과 심하게 다투었을 때, 엄마와 아빠에게 서운할 때, 내 자신이 한심할 때. 그런 주제는 내 브런치의 다른 글들과 상충된다고 생각해 꼭꼭 접어두었다. 그러다 보니 그 해소되지 않은 마음이 점점 뾰족해져 행복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은 순간들까지 방해했다. 누구나 일상에는 두 가지 색채가 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좋아 보이는 것만 보여주고 싶은 허영심이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를 잊게 만들었다. 

글쓰기는 단어와 단어를 그럴듯한 문장으로 직조하는 일이다. 처음 실꼬리를 잡고 한 줄을 엮어가기까지가 가장 오래 걸린다. 어떤 크기와 패턴으로 짜임을 구성할까 가 정해지면 그 뒤로는 철컹철컹 비슷한 색감의 실들로 짜 나가면 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시작하기까지가 어렵지 쓰기 시작하면 술술 풀리는 편이다. 이렇게 말하자 남편이 말했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그래.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슥슥 그리냐고 하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냥 그리면 되거든."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사람 하나를 그리려고 해도 얼굴 동그라미만 수십 번 그렸다 지웠다 결국 몸통은 그리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진다. 반면 남편의 입장에서는 글을 매끄럽게 써 내려가는 게 신기한 일이다.

물론 글을 쓰다 보면 베틀을 짜는 것처럼 잡사가 섞이기도 한다. 매끄럽지 않고 고집스러운 부분이 올이 뭉친 것처럼 턱턱 걸리기도 한다.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면서 참 마음에 드는 표현이 있어 내 글에 끼워 넣어 보려 하다가 도무지 안기지가 않아 아쉽게 떨궈낸 적도 많다. 하지만 문장을 만들고 그 뒤에 또 다른 문장을 잇고, 단락을 이루고 흐름을 만들 줄 안다면 글을 쓸 줄 아는 것이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에 만족하면서 좀 더 용기를 내어, 시간을 내어 그렇게 내 브런치 공간을 채워나가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한 편의 글을 발행한 다른 이들의 글도 고마운 마음으로 대해야겠다.

하루하루 경험하고 느낀 것들로 충실히 날실과 들길을 교차시키며 엮어낸 탄탄한 글들은 조금 엉성하더라도 수제의 느낌으로 충분히 멋스러운 카페트처럼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발로 디디고 섰을 때 폭신한 마음의 완충지가 되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