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이민자(refugee/migrant) 채용에 관하여
*본 원고는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2년 7월호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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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써 만 4개월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단기 과제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난민/이민자(refugee/migrant) 채용에 관한 것이다. 먼저 ‘난민’이라는 단어는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매우 친숙하지 않은 단어이다. 지난 2018년에 예멘 내전을 피해 국내로 입국한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국내 난민 정책의 한계와 대안들이 여러가지로 논의되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본질적인 고민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장 맞닥뜨린 급한 불이 아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즉,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난민 발생 이슈가 국내에 크게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한국은 이 이슈로부터 자유로운 혹은 별개의 국가일까?
전쟁으로 인한 난민 이슈는 잠시 내려놓고 이민자 이슈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이민 이슈에 직격탄을 맞기 직전에 있는 나라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급격한 인구절벽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2022년 2월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0.84명 수준의 출산율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노동(생산)가능인구의 현격한 감소는 당장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서 많은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기업에 원활하고 충분한 인력 수급이 이뤄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예상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가속화와 MZ 이후 세대의 부족한 숫자로 인해 기업들이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은 당연한 수순이며, 고령화 이슈로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은 우리나라의 미래 단면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의 이민 장벽을 낮추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인력수급 대안일 수 있다.
난민(refugee)이란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가? 난민은 본국에서 전쟁,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또는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갈등이나 박해를 당하고 본국을 떠나는 사람들을 일컬으며, 1951년 유엔 협약에 따라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면 영국의 경우 5년간 체류할 수 있는 적법한 자격이 발생한다. 또한 해당 기간 이후에도 난민 발생 원인이 되는 조치가 해결되지 않으면 무기한 체류를 신청할 수도 있다. 난민은 기본적으로 국제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이들을 함부로 추방하거나 생명과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를 해서도 안된다. 해당 법에서는 난민에 대한 기본적 안전을 보장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망명 절차를 제공하는 등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난민(refugee)은 망명 신청자(asylum seeker)와는 구별된다. 영국의 경우 망명 신청자는 난민 협약 혹은 유럽 인권 협약 2조에 의거하여 보호 신청서를 제출한 개인을 의미한다. 즉, 망명 신청자는 아직 신분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임시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신청 결과에 따라 난민 비자를 발급받아 난민과 동등한 법적 보호 지위를 갖게 되며, 장기 또는 무기한 체류할 수 있는 허가가 이루어진다. 또한 영국 행정부는 이들에 대한 정착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UNHCR에 의해서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와 같은 국가에서 이들이 망명을 신청하는데, Vulnerable Persons Resettlement Scheme은 영국에 있는 시리아 난민의 재정착을 돕기 위해 설립된 프로그램이다.
난민과 관련된 국제적 기구로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곳이 유엔난민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라면, 이 기구와 같은 성격으로 1951년 난민 협약에 기초하여 세워진 영국의 기관은 영국난민위원회(Refugee Council UK)이다. 해당 기구는 망명을 신청할 권리가 국제적 인권이며 난민 위원회는 이들의 보호를 위해 영국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기존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원칙으로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영국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장벽을 낮추고 이들이 영국의 기업에서 원활히 일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난민 고용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실행하기 위해 HR 전문가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는 아일랜드의 “RRI (Recruit Refugees Ireland)”, 호주의 “Humans Like Us“와 같은 곳이 있다.
영국 난민에 대한 수치는 2017년 말 기준으로 약 12만명으로 추산된다. 다만 이 추정치는 망명에 성공한 사람들을 기존으로 하고 있고, 과거 10년간 망명자의 법적 지위로 있던 사람은 10년 후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게 때문에 수치는 부정확할 수 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 즉 런던, 글라스고, 맨체스터, 리버풀 등에 몰려있다. 특히 런던에 30%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국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 뿐만 아니라 난민(refugee)에 대한 채용에 관심있는 기업들을 위해 구체적인 고용/채용관련 매뉴얼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제 1차, 2차 세계대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도 외국인들에 의한 침략 및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외국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배타적이는 않다. 특히 난민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의미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영국의 경제 성장에 본질적으로 큰 유익이 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조직 및 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논의가 있는 게 사실이다. NHS(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 국민건강보험공단), IKEA(이케아), ServiceNow와 같은 많은 조직들은 난민 고용을 통해 (1)다양성, (2)인재유지율, (3)기업 브랜드 및 평판 등에서 효과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불법 이주자를 고용하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리스크와 두려움, 특히 이들에 대한 신분이 안전라고 적법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른 많은 기업에 있어서 난민/이민자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HR부서가 난민 고용과 관련된 지식과 체계가 부족한 점이 가장 큰 실무적인 어려움으로 꼽힌다.
이러한 난민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난민의 경우 모니터링 되는 상황과 시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가 잦기 때문에 정확한 추산이 어렵지만, 대략 이들의 실업률은 7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들 난민에 대하여 법적으로 다음과 같은 복지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 소득 지원: 영국 체류 1년 미만의 경우, 취업을 위해 영어학습기회 제공(최소 15주)
• 구직자 수당: 구직 중임을 입증할 수 있는 경우.
• 고용 및 지원 수당: 정신적 또는 신체적 장애로 인해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경우.
• 연금 혜택: 일할 수 있는 성인 연령 이상인 경우
• 난민통합대출: 임대료 보증금, 가정 용품, 교육 및 훈련비용 지원
1. 다양성 (Diversity)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다양성이다. 직장에서 다양성, 그리고 직원들의 여러 다양한 경험이 비즈니스 성과 등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많은 연구들을 통해 이미 밝혀져 있으며, 점차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성은 필수적인 전략적 고려 사항으로 여겨지고 있다. 맥킨지McKinsey에서 366곳의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상위 25%의 회사는 그렇지 않은 하위 25% 회사보다 해당 산업의 평균 이상 수익을 낼 가능성이 35%가 더 높다고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난민 직원을 포함한 직원의 다양한 경험, 지식 및 기술을 활용하면 혁신, 더 나은 의사 결정 및 리더십, 긍정적인 조직 문화 변화, 궁극적으로 비즈니스 성장을 주도할 수 있다.
2. 인재유지 (Talent Retention)
기업의 입장에서는 난민들의 낮은 이직의도도 긍정적인 측면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장기간의 고용과 경력을 염두에 두고 일자리를 찾는다. 실제로 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난민들의 이직율이 낮은 것이 분석되었고, 고용주의 73%가 이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몇몇 기업들은 난민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고용 기관과 구체적으로 협력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이케아(IKEA)의 경우, 난민 고용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현격하게 입증되었다고 한다. 난민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자선 기부라고 생각한다는 이케아의 People & Communities 리더 힐러리 젠킨스(Hiliary Jenkins)가 한 인터뷰에서 남긴 다음의 생각은 이케아라는 기업이 난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난민 고용을 적극 장려하는 기관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그들을 고용하는 것은 비즈니스 비용 절감에 큰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난민에게 적절한 일자지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기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선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3. 직원 성과몰입도 및 만족도 (Employee Engagement and Satisfaction)
Breaking Barriers, Tent.org와 같이 난민 고용을 지원하는 기관들의 연구에 따르면, 난민 고용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직원 성과몰입도 및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기존 직원들이 난민의 지위로 입사한 새로운 직원들에 대하여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적응과 삶을 위해 돕는 태도를 견지하게 되면서 직원들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조직 전체적으로도 긍정적인 시너지가 날 수 있다. 영국의 난민지원 기관인 Breaking Barriers에 따르면 기존 직원들 뿐만 아니라 새롭게 일자리를 얻게 된 난민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열심히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이 기존 다른 동료들에게도 연쇄적인 긍정 효과를 미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매번 반복적으로 하는 일에 대하여 불만이나 불평을 가지고 있다가, 난민 지위에 있는 사람이 새로 입사하여 그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삶과 배경을 듣게 되면, 자연스레 스스로 겸손해하고 매일 일하는 태도 역시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려는 자세의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체적 사례를 통해 난민/이민자 고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며, HR관점에서 생각해 볼 메시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필자는 학술회의 참석차 이탈리아에 있는 프라토(Prato)라 불리는 도시에 머물고 있다. 프라토는 인구 약 20만 명의 도시로서 유럽지역에서 직물(textile) 공업으로 가장 크고 유명한 도시이고, 7,000여 개가 넘은 패션회사들에 대한 물품 공급/제작 지역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직물 공업도시 프라토(Prato)는 밀라노(Milan)에 이어 중국인 이민/유입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왜 중국인들이 많을까? 이들의 이동은 1990년대 초부터 프랑스 파리에 있는 차이나타운과 중국 윈저우에서 많이 왔는데, 대부분 의류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당시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부족한 노동력 확보가 중요했기에, 값 싼 중국인들의 프라토로 향한 이동은 반가운 일이었다. 2010년 들어 중국인 불법노동자가 급증하면서 낮은 임금과 인권, 차별과 같은 여러 사회적 문제가 불거졌지만, 중국인 노동력 덕분에 이 지역의 실업률은 당시 7%도 채 되지 않았고 (당시 이탈리아 국가 평균 실업률 11%), 프라토의 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Andrea Cavicchi는 이러한 중국인들의 직물산업에 대한 기여 덕분에 프라토의 경제 수준이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좋다고 한 바 있다.
프라토에 중국인들이 모여들은 이유는 이탈리아측 관점과는 사뭇 다르다. 직물/패션 사업에 종사했던 중국인들이 먼 타국인 이탈리아로 이동해 온 핵심 이유는, 이 도시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옷에 'made in Italy'를 새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제작된 제품은 중국을 포함한 다른 외국 지역에 높은 값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동일한 사람(중국인)이 동일한 직물로 동일한 제품을 제작하는데 중국 지역이 아닌 이탈리아 지역에서 제작함으로써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사실을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프라토에 유입하기 시작한 중국인들은 점차 일급을 받던 노동자에서 사업가 및 공장주로 번창해 나갔고, 십수년이 지나면서 태어난 중국인 2세들은 외모는 중국인이지만 국적은 이탈리아이고 언어도 이탈리어 원어민과 같은 수준을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당장 주변에서 전쟁을 겪는 것은 아니니 난민이 큰 이슈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인구 수가 급감할 것은 자명하다보니 이민자를 받아드리는 정책은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적합한 인력의 충분한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기업들이 점차 많아질 것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앞서 살펴본 이탈리아 프라토(Prato) 도시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가 실제로 겪게 될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민자 노동력 확보 이슈는 정부의 정책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기업에서도, 특히 HR측면에서 더 적극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난민, 이민자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 채용의 핵심은 일단 받아들이고 확산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 대한 현행 정책 및 문화적 적응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이 선행 혹은 적어도 병행되어야 하며, 이는 기업, HR에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