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관점의흑백요리사리뷰
#채용의공정성과평가의수용성측면에서
#이런건ChatGPT가안해주니까
#스포있음 #긴글주의
미뤄놨던 흑백요리사를 정주행했다. 보는 내내 "HR의 채용 및 평가의 공정성과 지원자의 수용성, 그리고 리더십" 관점에서 여러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보았다.
이런 건 ChatGPT가 안 해주니까.
이 프로그램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후일담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기에, 내가 보는 관점은 해당 프로그램의 실시간 후기를 남긴 타인의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은 다른 생각을 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서로 다른 의견과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지식은 성장한다고 믿는다.
참고로 나는 최종우승자 및 심사자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 정주행을 시작했다.
모든 에피소드 시청을 다 마치고, 나는 다음의 질문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았다.
1. 기원전 콜로세움부터 시작된 욕망에 대한 자극?
2. 평가자(심사위원)에 대한 납득?
3. 블라인드 테스트는 정말로 공정한가?
4. 팀플레이 리더십에 정답이 있을 수도?
5. 실력 외에 외부 환경 및 맥락에 의한 평가?
구체적인 논의에 앞서 비즈니스의 본질 중 하나인 “욕구 충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흑백요리사는 왜 속칭 selling에 성공했을까? 내 기억 속에 “나는가수다”에서 촉발된 경쟁competition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경쟁”이라는 키워드의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양산해 왔다. “누가 이길까?”를 제3자의 관점에서 지켜보는 행위는 매우 흥미롭다. 게다가 경쟁에 참여하는 player가 유명하거나 흥미로운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잃을 것 없이 외부 시선으로 관람하는 유흥행위인 셈이다.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는 경쟁을 부각시키는 프로그램을 보면 프로그램 제작의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욕구가 느껴진다. 이를 과거로 돌이켜보면 콜로세움 경기장이 떠오른다. 검투사들의 피 튀기는 혈투를 사람들은 경기라는 이름으로 유흥을 즐겼다. 사람들의 관심은 내기와 장사를 통한 돈의 거래, 그리고 명성을 쌓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흑백요리사는 최근까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데블스플랜, 피지컬100 등과 컨셉이 비슷한,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의 접근이다. 데블스플랜이 지적유희를 즐기고, 피지컬100이 육체적이고 강인한 신체적 측면의 유희였다면, 흑백요리사는 눈과 입이 즐거운 요리라는 주제의 향연에 경쟁이라는 컨셉을 붙여버렸다. 물론 경쟁을 컨셉으로 하는 요리 프로그램은 지금껏 많았다. 근데 최현석, 에드워드 리, 여경래 등 요리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대중적으로 익숙한 사람들이 콜로세움의 검투사로 서게 되니, 초기 관심을 한껏 끌어올린다. 대중은 심사위원에 서 있어도 손색이 없을 이들이 플레이어로 직접 참여하는 것에 강한 흥미를 느껴 넷플릭스의 플레이paly 버튼을 클릭한다. 이 점에서 요리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들 외에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사람들을 플레이어로 세우는 제작진의 전략이 돋보인다. 이것은 이미 “나는가수다”에서 증명된 전략이지만, 제작진은 이를 백白과 흑黑의 소셜 클래스를 나눔으로써 “굳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아도 이미 유명하고 잘 살고 있는” 이들을 플레이어로 섭외하여 콜로세움의 검투사 갑옷을 백색으로 입혔다.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게 오히려 잃을 게 많아 보였던 사람들에 대하여는 그들의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백색 갑옷 컨셉을 만들어 소셜 클래스 개념으로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을 플레이어로 영입한 제작진에 대하여는 지혜로운 전략에 대한 인정의 박수를!
요리문외한인 나의 가장 첫 질문은 “안성재가 누구지?” 이었다. 대중지명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백종원님과는 다른 인물이어서,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이 초기 궁금증을 품었을 듯 하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대중 뿐만 아니라 경연에 참여한 100명의 흑과 백의 셰프 모두에게 납득이 될 심사자를 찾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안성재에 대한 연관 프로필을 검색하다가 납득이 되는 논리구성 한 가지를 찾았다. 대한민국에 유일한 미슐랭3star 레스토랑의 셰프라는 것. 미슐랭star가 요리 업계에서 중요한 판단 잣대인 것은 대중도 어느정도 알지만, 이것이 절대적 기준 잣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모두가 납득할 절대적 기준이 아닌 경우, 언제나 의구심과 의문이 함께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안성재의 심사위원 포지션과 최현석, 에드워드 리, 여경래 등이 플레이어 포지션에 있다는 것에 매우 주목하였다. 이들이 상호 관계적 리스크를 감안하면서 서로의 포지션을 수용하고 이 게임을 시작했다는 것에 매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잠시 관점을 돌리면, 어느 분야나 압도적인 1인이 존재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최근 “제가 HR 분야를 잘 몰라서 그런데, HR분야에서 speaker를 섭외할 때, 전세계 누구나 다 인정하고 박수칠만한, 한국에 스피커로 모시면 HR 분야의 모두가 다 같이, “와~ 대박!” 할만한, 그런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분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 반도체 분야의 압도적 1위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주식 투자쪽의 상징적 인물은 워렌 버핏이 있는데, HR에는 누구일까? 몇 명 이름이 떠오르는 HR 분야의 인물들이 있긴 했지만 HR 세부 분야로 들어가면 또 달라진다. HR에서 Dave Ulrich를 떠올릴 수 있지만, HR novice나 제너럴리스트들도 많이 알고 있을까? HR Tech 영역은 Josh Bersin이 국제적 대중 저명도가 높지만, Expert 레벨의 사람들도 동의할까? Google의 라즐로 복은 Work Rules를 통해 프랙티컬 측면에서 상징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Google 이라는 네임을 뒤에 업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HR도 조금만 세부 분야로 가지치기 하면서 들어가면 그 영역의 리딩 인물들이 다 달라진다. 분야 전체에 압도적 1인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 분야의 리딩 그룹이 leading group이 그만큼 성숙하여 발달된 분야임을 의미한다.
다시 돌아가면, 안성재의 심사위원 포지션과 최현석, 에드워드 리, 여경래 등이 플레이어 포지션으로 진행하는 것에 상호 동의하여 시작했다는 점은 이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리딩 그룹 사이에 서로 누구나 심사위원 포지션에 있을 수도 있고 플레이어 포지션에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이러한 관계십을 수용했다는 점이 가장 크다.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느꼈던 점으로, 박사 학생은 언제나 지도교수의 하위 포지션에 있는 듯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 않다. 박사를 마치고, 한 사람의 프로페셔널 연구자로서 연구 프로젝트의 리더를 하는 와중에 본인의 지도교수를 팀원 역할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그런 게 아니라 흔하다. 리더와 팀원을 하이라키컬 고정된 위계구조로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역할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지도교수가 언제나 계속해서 압도적인 실력과 위계적 포지션을 갖지 않고, 어느 시점부터는 다 같이 연구자로서 상향평준화 되어있는, 그 분야 안에서 함께 리딩leading하고 있는 동료colleague로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는 백종원, 안성재, 최현석, 에드워드 리, 여경래 외에 여러 시니어 셰프들이 이러한 성숙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이 구조를 받아들이고 진행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심사위원과 플레이어가 이 콜로세움 경쟁 장소에서 상하의 위계질서를 가진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를 역할로서 구분하여 받아드렸다는 것. 한국의 문화적 정서와 심리를 고려할 때 이러한 변화는 매우 놀랍게 보였다.
이것은 HR 사람들에게 언제나 “할많하않” 주제이다. 黑흑 레벨 셰프 20명과 백白 레벨 셰프 20명이 일대일로 경연하는 과정에서 각 플레이어가 가진 기존의 배경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한다는 점에서 매우 색다르고 흥미로운 시도로 보였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하여 공정성을 따질 게 아니라 “기준”이 공정한가부터 따져야 한다. 공정성은 흥미롭게도 100% 객관적일 수 없다. 오히려 매우 의존적인 개념이다. 공정성은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의 일대일 미션의 경우 “맛”으로만 평가한다는 기준을 먼저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배경과 경험, 경력 등 핵심 기준인 “맛”에 대한 판단과 영향에 미비한 요인들을 모두 배제한 것이고, 이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보여진다. 그런데 만약에 기준을 “맛” 만을 보는 게 아니라 다르게 설정한다면?
채용 관점에서 한 때 공기업 위주로 불었던 블라인드 채용은 역차별의 바람도 함께 일으켰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HR에서의 채용은 필요한 부품을 구매하는 단순한 기능적 행위가 아니다. 방에 불light이 나가면 전구를 새 것으로 교체해서 끼우면 된다. 그러면 작동한다. 전자기기의 배터리가 다 닳으면 배터리를 새 것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작동한다. 기능적 수행을 위한 product 구매 행위는 예외와 잠재적 불안 요소 리스크가 거의 없다. 근데 사람은 기능적으로만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관계적으로 기존에 있는 사람들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영향을 미친다. 인사담당자들이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효과적으로 채용을 하기 위해서는, 채용 후 조직의 성과와 기존 직원들과의 상호작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요인들을 통합적으로 판단하여 해야 하는데, 성별, 학력, 기타 차별적 요인을 배제하는 블라인드 채용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애초에 채용은 공급과 수요의 원칙 상,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적으로 의사결정 선택을 해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에서 해당 미션의 기준을 “only 맛”으로 먼저 정했기 때문에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방법(method)는 합리적이고 수용 가능했다.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방법론 자체가 공정한 게 아니다. 기준과 방법이 일치되기 때문에 공정한 것이다. 해당 미션은 채용에 있어서의 기준과 블라인드 테스트 라는 방법론 사이에서 공정성의 개념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에게 큰 인사이트를 준다.
흑백요리사와 비슷한 포맷인 피지컬100의 시즌2에서 김동현 선수가 리더 역할로 팀 경연을 했을 때 패배하고 나서 리더의 역할과 자신의 전략을 자책하는 모습이 기억난다. 흑백요리사에서는 100인의 평가자에 대한 서빙 미션과 레스토랑 운영 팀 미션에서 둘 다 1위를 했던 최현석 셰프가 리더 역할을 감당하는 것과 대조되어 오버랩 되었다. 흑백요리사 프로그램 내에서는 트리플스타 셰프와 조은주 셰프 등 다른 리더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하는가의 모습도 비교하여 볼 수 있었는데, 이 모든 내용은 리더십 관련된 강사가 워크샵을 한다면 워크샵을 위한 영상 학습 자료로 쓰기에 손색 없어 보인다.
“실력이 뛰어나고 경력이 많다는 것”과 “리더 역할을 잘 하는 것”이 별개라는 점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축구에서 탑 클래스로 뛰는 선수인 호날두나 메시를 감독으로 세우면 그 팀이 최고일까?를 생각해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지네딘 지단처럼 플레이어로도 최상급이었고 감독으로도 그 역량을 최고로 증명해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HR관점에서 이번 흑백요리사에서 흥미롭게 보였던 부분은, “시니어 그룹의 리더십 선정 과정”, 그리고 “리더십의 유연성flexibility” 이다. 가만 보면, 연차가 상대적으로 낮은 주니어 그룹은 나이가 많은 형/누나를, 혹은 연차가 30~40년 정도로 무척 쌓인 그룹에서는 상대적으로 한창 활발한 그룹 내 젊은 사람을 리더로 세우곤 한다. 반면 골치가 아픈 경우는, 나이도 어느정도 있고, 실력도 비슷한, 즉 그룹 내 압도적인 1인이 존재하지 않을 때 리더를 세우는 과정, 그리고 이 리더의 역할에 있다.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에서 조은주 셰프의 경우 그 팀 내에서 압도적인 1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주도적이고 지시적인 리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관계적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각 팀원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리더급 경력과 역할을 수행할만한 자질을 가진 이들이었으니까. 그렇다보니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분란이 많은 듯 보였다. 영상에서는 이를 문제problem인 듯 보여주었지만, 사실 이는 아주 당연한 과정이다. 그리고 조은주 셰프의 노련함과 지혜로움은 매쉬드 포테이토에 소스를 넣어서 만드느냐 아니냐의 갈등을, 간단한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확인하고 의사결정하는 모습에서 증명된다.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단시간에 최상의 성과를 끌어올려야 하는 이런 팀 미션에서는 팀 리더의 역할과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때에는 팀 내부에서 갈등 없이 착하고 원만하게 소통하며 결정하는 유형의 리더 보다, 강제/지시형으로 빠르게 진행하고 효과적으로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아웃풋 중심적인 리더가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특히 조은주 셰프 팀의 소통 분란을 목도한 최현석 셰프 팀이 뒤어어 요리를 진행하면서, 팀 리더의 order에 맞추어 일사분란하게 별다른 의견제시나 토를 달지 않고 하는 모습이 대조되면서 더욱 그런 듯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의문을 제기해본다. 그럼 최현석 셰프팀처럼 리더가 일사분란하게 지시형으로 리드하는 게 언제나 더 나은건가? 같은 팀에 속한 시니어 셰프들이 군말없이 팀원으로 팀장의 손발 역할을 조용히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리더는 이래야지 라는 생각보다, “보다 건강하게 아이디어와 과정이 디벨롭되는 포인트가 없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 내 다른 의견을 건강하고 지혜롭게 대응하면 디벨롭 할 수 있는 포인트이지만, 무조건적으로 반발하면 갈등이 된다. 또한 팀 내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면 일은 계속 진척되어서 배가 산으로 갈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방향이 제대로 가는 게 맞는지, 더 나은 방법이나 아웃풋에 대한 논의의 여지가 없다.
프로그램의 해당 미션에서 에드워드 리의 관자 슬라이스 개수에 대한 의문과 다른 방식의 제안은 리더인 최현석 셰프에 의해 빠르게 판단되어 원래의 목적에 맞게 결정되었다. 레스토랑 운영하는 포맷에 있어서도 최현석 셰프의 팀이 1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리더의 프로그램 상황 맥락을 고려한 메뉴 단가 책정 전략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더 나은 것에 대한 건강한 논의의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지 여부는, 영상 내용 만으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 많고, 의사소통 조율을 잘 하고, task 배분도 잘 하고, 주변 상황 맥락도 잘 파악하고, 전략적 마인드도 있고, 개인 역량도 뛰어난, 그런 리더는 세상에 몇 없다.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이상적인 리더의 덕목이나 요구사항 중 일부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흑백요리사, 혹은 이와 비슷한 포맷인 피지컬 100 시리즈의 팀 미션에서 리더의 역할은 제한된 시간과 자원과 에너지로 단시간에 최상의 효과적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리더십 중요한지,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더 나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좋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합격입니다” 혹은 “당신은 탈락입니다” 라고 할 때, 피평가자로서 나의 첫번째 반응은 결과에 대한 감정이고, 그 다음의 반응은 그 결정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감정이다. 결과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즉 수용성의 문제는 평가자의 권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리고 평가 방식이 공정했는가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앞서 2번과 3번에서 생각해 본 내용이다.
내가 흑백요리사를 보며 느꼈던 흥미로운 부분은 두 명의 평가자(심사위원)의 관점, 그 중에서도 “백종원의 관점” 이었다. 백종원 대표는 안성재 셰프와 공동 심사위원 이었지만, 전체적인 프로그램 진행 속에서 둘은 다른 시각의 기준을 보여주었다. 안성재는 엘리트 트랙으로 성장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셰프로서, 요리사의 의도와 아웃풋의 완성도에 주목한 반면, 백종원은 음식의 맛 그 자체와 전체 프로그램의 밸런스를 고려하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 포지션이 HR의 관점에서 중요한 이유는, 평가자가 평가 과정에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점 때문이다. 피지컬100이나 퀴즈프로 경연의 경우 평가자의 개입이 거의 없다. 예를들어 줄다리기로 하면 힘이 센 사람이 명확히 이기고, 1km 빠르게 달리기를 하면 기록이 좋은 사람이 명확히 이긴다. 그런데 요리의 결과물 판단은 사람이 주관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 심사위원의 관점과 기준이 매우 중요하고, 이것은 기업/조직에서 인사권자가 직원을 평가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기업에서의 인사 평가도 내부적으로는 언제나 명문화된 기준이 있지만, 결국 사람이 평가하기 때문에 평가자의 주관성이 완전히 배제되기 어렵다.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심사위원의 심사 기준 일관성인데, 흑백요리사는 이 측면을 매우 잘 유지했던 것 같다. 야구를 생각해보면 야구 심판은 각각 투수가 던진 공의 스트라이크 존을 파악하는 범위가 약간씩 다르다. 어떤 심판은 스트라이크 존을 약간 넓게 고려하는 반면, 어떤 심판은 이 존zone을 매우 비좁게 설정한다.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50% 정도 걸쳐서 포수의 미트로 들어왔을 때, 이를 스트라이크로 판단하느냐, 볼로 판단하느냐 여부에 대해 투수 및 타자는 이를 매우 민감하게 살핀다. 심판마다 그 판단 여부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판단의 일관성에 이어진다면 투수나 타자는 이를 수용한다. 흑백요리사도 매우 흡사했다.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심사위원인 백종원과 안성재는 스스로 세운 그 기준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다른 참가자(피평가자)들이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결승 에드워드 리와 나폴리 맛피아 사이의 대결에서, 최종 결정에 백종원이 고민을 하며 선택을 쉽게 내리지 못한 점은 이와 연관되어 있다. 그(백종원 대표)의 진짜 속마음은 잘 모르지만 시청자로서 몇가지 짐작을 해볼 수 있었다.
1) 첫째, 앞서 준결승에서 요리 재료 본연에 집중하기 보다는 새로운 창작적 시도에 너무 집중한 듯 보였다고 코멘트를 하면서 최현석 셰프를 탈락 시켰기 때문에, 결승에서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도에 주목한 에드워드 리의 결과물에 대하여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 했던 것으로 보였다.
2) 결승 직전 준결승에서 에드워드 리와 트리플 스타 사이의 결정을 해야 했을 때, 백종원과 안성재는 의견이 대립했는데, 두 사람의 논의 끝에 백종원 측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두부를 활용한 계속되는 도전 미션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서 시도한 에드워드 리에게 더 나은 평가를 주었다는 논리적 근거는, 일견 합당해 보이지만, 어쩌면 전체 큰 그림에 대한 적합한 기준 잣대를 역으로 근거로 제시한 것일수도 있다. 즉 결정하고 싶은 옵션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이름이 흑백요리사 인데, 이미 올라간 흑수저 요리사 외에 백수저 요리사 1명이 결승에 함께 있는 모습이 더 나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경륜의 에드워드 리와 패기의 나폴리 맛피아로 구성된 결승 그림이 더 낫다고 판단했던 것일 수 있다. 특히 워낙 심사 및 비슷한 프로그램 경험이 많은 백종원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큰그림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수 있다.
3) 결승에서 안성재가 나폴리 맛피아의 결과물에 대하여 “인생에 있어 가장 맛있었던 요리”라는 식의 발언이 백종원에게 압박이 되었다. 기존에 굉장히 타이트한 기준으로 평가하던 안성재의 저 발언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안성재의 표가 누구에게 향하는지에 대한 힌트가 되었을 것이다. 심사위원 두 사람이 모두 동일한 결과로 2:0의 판단을 했을 때 최종 결선이 마무리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준결승에서 안성재의 의견 양보는 결선에서의 백종원의 판단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프로그램의 전체 큰 그림을 보는 백종원의 입장에서 이미 엄청난 커리어와 경력을 가진 에드워드 리 보다는 새로운 다음세대 젊은 95년생에게 새로운 인생 기회를 주는 것이 요리업계 전체적으로 유익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흑백요리사의 우승 경력은 한 사람의 젊은 셰프에게 인생 전체의 커리어를 뒤바꿀 큰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이런 짐작이 합리적인 또 다른 이유는, 백종원이 그간 심사에서 한국 음식의 허들을 낮춰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른 에피소드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었기 때문이다. 그 관점 기준이 계속 유지된다면 백종원은 에드워드 리의 결과물에 vote 하는 것이, 심사 평가기준을 계속해서 일관성있게 다져가는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외부적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듯 백종원은 나폴리 맛피아에게 vote 하였다.
앞서 블라인드 테스트 때도 언급했듯이, HR에서도 채용과 평가는 “실력”만으로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실력만으로 평가하는 게 공정하다는 의견은, 실력 외의 다른 요소는 모두 개인의 노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가 절하의 시각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이는 기업의 내부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공정성”이라는 가치만을 중시하는 이상주의적 접근일 수도 있다. 지원자(피평가자)의 실력 외에도, 기업 내부에 이미 구성된 인력들의 배경과 상황 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서로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암묵적 지식과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마무리하며,
어떤 렌즈로 현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넷플릭스 play 버튼을 눌렀었기에 이론적 관점까지 deep하게 논의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HR의 관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보았고, 거기서 인간의 욕망, 평가자 및 피평가자의 관계, 평가의 공정성과 수용성, 팀플레이와 리더십, 평가에서 주변 맥락 고려의 필요성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