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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진 Nov 15. 2024

네덜란드와 영국의 산학협력

산학협력 효과성 평가 분석 연구 소개

들어가며 – 박사과정 인터뷰에 기업 채용 담당자가 면접관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금용 회사인 ING (Internationale Nederlanden Groep)에서 People Analytics팀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Lucie는 네덜란드 University of Twente에서 People Analytics 분야로 박사과정 학업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Lucie는 ING에서 일하기 이전에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려던 대학원생이었다. Lucie가 트웬티 대학의 박사과정 인터뷰를 하던 당시, 해당 인터뷰에 참석했던 면접관 중에는 대학 교수 외에 기업 소속 직원들도 함께 있었다. 당시 ING측에서 면접관으로 참여한 사람은 ING의 채용 담당자와 ING에서 People Analytics 부서를 이끄는 매니저였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과정 공부를 하려는 Lucie의 면접에 왜 기업의 채용 담당자와 매니저가 면접관으로 함께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실용적 학문 기풍이 강한 네덜란드의 대학들은 기업과의 산학협력이 매우 긴밀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앞선 예시와 같이 대학에서 People Analytics와 같은 비즈니스 실용 학문의 박사과정을 설계할 때, 단순히 학문적 내용에 기초한 커리큘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고 활용되는지 여부를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박사과정 학생이 “의무적으로” 해당 분야의 부서가 있는 기업에서 일을 병행하게끔 커리큘럼을 구성한다. Lucie의 경우 40% FTE (full time의 40%에 해당하는 시간)을 ING의 People Analytics 부서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60%의 시간을 박사과정 학업에 임해야 한다. 이것이 그녀가 지원한 University of Twente 대학원 People Analytics 박사과정의 커리큘럼이다. Lucie는 나중에 박사과정에 합격하여 학업과 동시에 ING People Analytics 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경우 Lucie는 ING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을 급여로 받는다.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Lucie에게 별도의 학비 지원도 해준다. 왜냐하면 ING에서 박사과정 레벨의 좋은 인재를 직접 채용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대신, 그 반대급부로 대학에 연구 지원 기금을 일부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대학, 그리고 학생까지 서로 Win-Win이다. 




대학과 기업이 협력한다는 것의 의미


우리 대부분은 커리어의 전부를 둘 중 어느 한 영역, 즉 산업계 혹은 학계에서 평생을 보낸다.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원 학업을 이어간 후 학계로 커리어를 전환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학계에서 계속 커리어를 쌓다가 산업계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Scholarly-Practitioner로 표현되는, 이 상이한 두 영역을 고루 경험한 사람들의 주요 관심은 산업계에서 경험한 현장 지식을 학계에 어떻게 녹여내느냐 혹은 그 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학계든 산업계이든 평생 어느 한 분야만 파더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범위하고 깊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이 두 영역을 고루 경험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한 영역만 경험한 이들이 보지 못하는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산업계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학계에서 이론을 발전시킨다. 


개인 뿐만 아니라 조직에서도 학계와 산업계의 상이한 관점은 서로 협력할 수 있는가 아니면 아예 너무 달라서 협업이 어려운가의 산학협력에 대한 관점 논의로 이어진다. 이는 분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HR을 아우르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산학협력은 특히 중요하다. 수학, 물리, 화학, 철학 등 기초학문의 경우 학계에서의 학습이 산업계에서 “비즈니스 문제 해결”로 직접 이어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런 분야의 경우 연구를 통해서 혹은 그 저변의 생각 폭을 확산하는 과정을 통해 산업계에서의 지식 활용의 기초를 마련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비즈니스의 경우 학문의 태동이 비즈니스 산업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학계의 학습과 배경의 대부분이 산업계의 현장 지식과 많은 경우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산업계의 기업들과 학계의 대학들이 서로 협업하여 지식과 가치 창출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게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대학과 기업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산학협력의 장점과 한계


대학 입장에서 산학협력은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비즈니스 분야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기업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연구 과제를 통해 학문적 지식을 실용적으로 적용하고, 학계의 연구 방향성을 산업 요구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기업으로부터 받는 연구비 지원을 통해 대학의 연구 인프라 확충과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학 입장에서 학생들의 취업율은 중요한 성과 지표 중 하나인데, 이것 역시 높일 수 있다. 산학협력을 통해 인턴십이나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학생들의 취업 가능성을 고취시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대학 교수진과 학생들이 산업계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고, 최신 산업 기술과 요구를 반영한 커리큘럼 개발 및 실무 중심의 교육 제공이 가능하다. 해당 대학의 학풍이 실용성을 중시한다면 더욱 말할 것 없다.


반면 제한적인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한계는 연구의 자유도를 침해한다는 점이다. 대학 연구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이 될 법한 주제”가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의미 있는 주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그것을 연구한다는 점인데, 기업의 투자를 받을 경우 해당 기업이 요구하는 특정 연구 주제를 우선시 해야 하기 때문에 학문적 자유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의 비즈니스는 일반적으로 학계의 대학보다 호흡이 빠르고 짧기 때문에, 장기적 성과보다 단기적 요구에 집중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대학의 장기적인 학문 발전 목표에 상충될 수 있다. 때로 산학협력이 과도하게 기업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대학의 본질적인 교육 역할이 축소될 위험도 존재한다. 게다가 대학과 기업간에 사전에 연구 결과물에 대한 지식 소유권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연구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 문제로 기업과의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업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장점과 한계가 공존한다. 기업 측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최신 학문적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의 전문성을 통해 최신 학문적 지식과 기술을 기업의 실무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것은 기업의 세일즈, 마케팅, R&D 등 여러 분야에 긍정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특히 연구R&D가 중요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일수록, 자체적인 R&D 역량과 조직을 처음부터 구축하고 갖추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대학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초기 비용을 절감하고 지속적인 인재 수급을 기대할 수 있다. HR 측면에서 보면 좋은 인재를 선점하고 확보하는 것 역시 주요한 장점이다. 특히 산학협력을 통해 기업 문화와 비즈니스를 사전에 이해한 상태에서 향후 기업체에 입사할 경우, 향후 인재유지율talent retention을 높일 수 있다. 사회적 시선으로 볼 때,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고 기여하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평판 및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긍정적이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망설여지는 측면은 아무래도 산학협력 결과의 불확실성이다. 애초에 서로 다른 특성과 문화를 가진 두 영역이 협력하는 만큼, 시너지가 날 수도 있지만, 항상 기대하는 성과가 난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이 경우, 투자 대비 효과가 낮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학협력 초기에 대학과 기업 간의 목표 및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앞서 대학 입장에서 바라볼 때의 경우에서도 언급했듯, 협력으로 인한 산출물의 지적 재산권 소유권 문제가 불분명 할 경우, 협력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산학협력의 장기적 성과가 불확실할 경우 단기적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와 충돌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며, R&D 중심의 기업일 경우, 기업의 핵심 기술이나 전략 정보가 연구 과정에서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여러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분야에서 산학협력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산학협력의 효과를 실제로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영국 기업-대학 간 산학협력 효과성 평가 분석 연구


비즈니스 스쿨을 운영하는 대학 입장에서 기업과의 산학협력은 언제나 매력적인 주제이다. 향후 학업을 마친 학생들이 졸업 후 대부분 산업계 기업에서 일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대학과 입장이 좀 다르다. 투자에 대한 기대 수익이 언제나 명확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산학협력의 가치는 가시적으로 측정하거나 예상하기 어렵다. 


학계의 학자들은 꽤 오래 전부터 산학협력의 효과성을 실증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여러가지 연구를 수행해왔다. 그 중, 가장 최근 2024년에 발표된, 영국 대학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실증분석 연구를 수행한 내용을 좀 소개해보고자 한다. 해당 연구는 대학과 기업간의 산학협력이 실제로 조직 및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이를 위해 영국 대학들과 기업 사이에서 2년 이상 장기간 지속된 13개의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연구 조사를 시행하였다. 연구에서 분석한 데이터는 13개의 프로젝트 각각에 대하여 프로젝트 시작 전, 진행 중, 종료 후의 세 가지 시점에 대하여 문서화된 내용을 취합하였다. 분석은 마케팅에서 자주 활용하는 기법인 Ansoff matrix를 기반으로 한 “지식 흐름 및 영향 매트릭스 프레임워크”를 연구자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각 산학협력 프로젝트의 조직 역량과 자원 기반의 변화를 평가하였다. (*연구출처: Bamford, D. et al. (2024) An empirical investigation into UK university-industry collaboration: The development of an impact framework)


예를들어 다음의 그림1과 그림2는 각각 제조업 및 의료건강 분야 기업들 과의 산학협력에 대한 분석 결과 일부를 보여준다. 영국 대학들과 제조업 분야의 기업 간에 행해진 7가지 서로 다른 산학협력 프로젝트에서 (C1~C7) 대부분 매트릭스의 우상향으로 지식 이전을 통한 역량의 증강이 발생했으며, 의료계 기업들과의 (C8~C13) 산학협력 결과를 분석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기업들의 역량이 우상향으로 대폭 증가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기업보다 의료업계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그 증가 폭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의료 분야에서의 산학협력 효과성이 제조업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로 산학협력에 따른 효과를 심플하게 기업의 투자 대비 얼마의 비즈니스 금전적인 수익을 거두었다고 명료하게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비즈니스 성과에 긍정적으로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직원들의 역량 개선에 산학협력이 얼마만큼 영향을 주었는지 여부를 검증하므로써, 그 실증 가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림1] 제조업(Manufacturing) 분야와의 산학협력에 따른 지식 이전의 차별적 효과


[그림2] 의료건강(Healthcare) 분야와의 산학협력에 따른 지식 이전의 차별적 효과


마치며 – 영국의 1,000년 역사를 가진 대학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살피며


영국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은 1096년에 세워진 옥스포드 대학으로, 약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조선왕조 역사가 500년인데, 이보다 더 오래된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대학만 영국 내 10여 곳이 있다. 대학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그저 오랜 역사적 전통의 프리미엄을 갖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대학들이 지역사회에 함께 존재해 왔기 때문에, 영국인들에게 대학은 취업을 하기 위한 관문이라기 보다, 일상에 함께 존재하는 커뮤니티의 일부로 여겨지는 듯 하다.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고, 지적 산출물을 공유하고, 생각을 토론하는 커뮤니티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인들에게 대학은 다음 커리어를 위해 단계별로 거쳐 나가는 스텝step의 개념이 아니라, 삶에 함께 공존하는co-exist 기관이다. 일상 생활에 세탁소, 베이커리, 마켓, 의회, 법률사무소 등이 있는 것처럼, 대학을 일상에 공존하는 또 다른 커뮤니티 기관으로 여긴다면, 그런 관점이 분명 사회 속에서 대학과 기업간의 산학협력 문턱을 낮추지 않나 생각해 본다. 


*Reference

Bamford, D. et al. (2024) An empirical investigation into UK university-industry collaboration: The development of an impact framework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4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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