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다 참 오지다"
시골집 마당에서 함께한 맛있는 한 끼
2003년의 기억 속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벌써 십 년도 넘은 꽤 오래전 이야기를 말이다.
다 같이 모인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할머니가 있는 시골집에 온 친척들이 일정을 모두 맞추어 다 함께 한 날이 있었다. 그때의 1박 2일은 아직도 참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기분 좋았던 기억으로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
2003년 여름날. 서울, 부산, 광주 등 각지에서 흩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할머니 슬하에는 7남매로 그 7남매가 결혼하여 그 슬하에 2명에서 6명의 자식을 낳았으니 정말 대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온 가족이 즐거운 일로 다 같이 모인 건 그날 이후 지금까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각각 하나둘씩 시골집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항상 우리를 안아주며 "우리 강아지들"이라 하며 반겨주었다.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방과 마당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당시 방이 4개, 부엌이 1개여서 작은 구조는 아니었으나 워낙 많은 이들이 모여 그 공간들이 좁게만 느껴졌었다.
다 모인 가족들을 보며 "오지다 너무 오지다"라며 너무 좋아했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50명이 넘는 가족들이 시골집 마당에 모여 앉아 싱싱한 해산물과 고기 파티를 하였다. 참고로 시골집은 전라남도 장흥으로 삼합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물론 할머니표 반찬도 많았다. 할머니는 항상 매생이국을 만들어 놓곤 했다. 할머니표 반찬 하면 매생이국이 생각날 정도니깐. 가끔 집에서 엄마가 매생이국을 만들어주면 할머니 생각이 나기도 한다. 매생이국은 따뜻하게 먹어도 맛있지만 시원하게 먹어도 별미다.
그날의 밤은 특별한 이야기 주제가 없었어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밤새도록 이야기 꽃이 피었으며, 어른들 허락 아래 대학생들부터는 다 함께 술도 한잔씩 기울였다. 광주파와 부산파가 나뉘어 누가 술이 센지 내기도 했었다.
여름밤이고 시골이라 모기와 나방이 정말 많았다. 모기들에게 헌혈을 해주면서도 뭐가 그리 좋았던지 새벽이 다되도록 잠을 다 이루지 못했었다. 잠 잘 사람은 자고, 놀 사람은 놀며 그 밤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꼬마 녀석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었던 사촌들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대가족에서 더 대가족이 되었다.
그날의 추억은 두고두고 이야기되고, 또 그렇게 다 모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날 다 같이 시골집 마당에서 먹은 맛있는 한 끼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하룻밤 자고 다음날 오전부터 각자 자신의 집이 있는 지역으로 하나둘 다시 떠나기 시작하였다. 가족들로 넘쳐나다 다 떠나고 난 뒤 할머니는 참 허전했었을 것 같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 중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분은 딱 두 분이다.
바로 할머니와 큰아빠다. 할머니와 큰아빠가 하늘나라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를 보며 "오지다 참 오지다"라고 흐뭇해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 날의 추억은 사진으로 남아 거실 화장대에 꽂혀 있다. 그 날 우리들은 모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다 같이 단체 사진을 찍지 않은 게 안타까움으로 남아있지만 각 사진들 속에 우리들의 표정은 환했다.
시골 마당에서 함께한 맛있는 한 끼
할머니가 있었고, 큰아빠가 있었고
우리가 다 함께였기 때문에
더 맛있는 한 끼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