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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인간? 행동하는 인간!

[인지과학연습] 4E 인지과학이 바꾸는 사고의 패러다임

by Kay Mar 24. 2025

AI와 공존하는 일상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 있을까? 반복적 사고나 계산은 인공지능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시대에 오히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이란 정말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현대 인지과학은 사고의 본질이 단순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몸과 환경, 그리고 행동 속에서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사고력은 결국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과 상호작용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4E 인지과학이다. 인간의 인지를 체화(몸을 통한 경험), 착근(환경 속 맥락), 행화(행동을 통한 인식), 확장(도구를 통한 사고)이라는 네 가지 틀로 바라보는 이 이론은 사고의 범위를 머릿속에 국한하지 않고 몸과 환경, 도구, 사회적 관계까지 확장시킨다. 그중 가장 최근 주목받는 '행화 된 인지'는 생각이란 '머릿속 계산'이 아니라 '행동하고 경험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결국 인간의 사고력은 움직임과 환경, 사람들과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온전히 발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체화된 인지 관점은 조직 설계와 인재 개발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더 이상 '자리에 앉아서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고 부딪히며 배우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의적 환경 설계, 실험과 실패를 허용하는 구조, 함께 사고하고 움직이는 조직 문화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실질적인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다. 결국 AI시대에 진짜 필요한 '인간다운’ 사고는 책상 위가 아니라 행동하는 현장 속에서 키워져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Chapter 2. 체화된 인지의 변형 (Variations on Embodied Cognition)


Gallagher, Shaun, 'Variations on Embodied Cognition', Enactivist Interventions: Rethinking the Mind (Oxford, 2017; online edn, Oxford Academic, 24 Aug. 2017)


본 장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EC)가 하나의 단일 이론이 아니라 다양한 이론적 접근과 논쟁이 뒤섞인 복합적 연구 영역임을 전제로 출발한다. EC에는 고전적 인지과학과 유사한 보수적 모델부터, 뇌와 마음에 대한 기존 가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적 모델까지 존재한다.

저자는 Larry Shapiro(2014a)의 문제 제기를 소개한다. Shapiro는 EC가 무엇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지, 핵심 개념은 무엇인지, 기존 패러다임보다 왜 우월한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는 EC를 생물학이나 화학처럼 통일된 자연과학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인지과학 내 철학적 프레임워크이자 연구 프로그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EC가 학제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 강조된다. 인공지능, 인지신경과학, 철학, 인지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EC가 논의되기 때문에, 당연히 각기 다른 답변과 시각이 존재하며 이는 오히려 논쟁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이후 저자는 EC 내부에서 주요한 틀로 자리 잡은 ‘4E’ 모델을 소개한다. EC를 설명하는 네 가지 핵심 개념은 다음과 같다.  

Embodied (체화): 인지는 몸을 통해 형성된다.  

Embedded (착근): 인지는 환경적 맥락 안에 자리 잡는다.  

Enactive (행화): 인지는 행동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  

Extended (확장): 인지는 신체 바깥으로 확장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이 모델은 Ecological (생태적)Empathic (공감적)Affective (정서적) 같은 요소들을 추가로 포함하기도 한다.



2.1 약한 체화된 인지와 B-형식 표상 (Weak EC and B-formats)


약한 체화된 인지(Weak Embodied Cognition)는 체화된 인지의 가장 축소된 형태로, 인지 과정에서 신체의 역할을 뇌 안의 신체 관련 표상으로 한정하는 입장이다. 이 접근은 신체적 요소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거의 배제하고, 뇌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몸 관련 표상’만을 체화의 핵심으로 본다.

Alsmith와 Vignemont(2012)은 약한 체화된 인지를 비신경적 신체의 역할을 부정하고, 뇌 내부의 ‘몸-형식 표상(B-formatted representations, B-formats)’만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약한 체화된 인지가 신체를 ‘뇌를 제외한 물리적 신체’로 좁게 정의하며, 결과적으로 체화의 핵심 개념이 무력화된다고 본다.


Goldman과 Vignemont(2009)는 인간 인지의 대부분이 뇌 안에서 발생한다고 전제하고, 체화된 인지의 논의에서 뇌 자체를 ‘신체’로 포함하면 체화 주장이 공허해진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신체가 환경과 맺는 관계조차 배제하고, 인지적 중요성은 오로지 ‘뇌 안에서 작동하는 정제된(sanitized) 몸-형식 표상’에만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핵심 개념이 되는 것이 B-형식 표상이다. 이는 명제적이거나 개념적인 구조가 아닌, 신체 상태와 행동 목표를 표상하는 비개념적 구조로 정의된다. B-형식 표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적 신체 정보가 포함된다.  

통증, 온도, 가려움  

근육 및 내장 감각  

허기와 갈증 등 생리적 상태  

중요한 점은 이런 신체적 정보가 말초에서 생성되더라도, B-형식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뇌의 특정 영역에서 재표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Goldman은 B-형식 표상의 개념을 확장하고자 Michael Anderson(2010)의 ‘신경 재사용 가설(massive redeployment hypothesis)’을 도입한다. 이는 특정 뇌 회로가 원래의 신체적 기능을 넘어서, 새로운 인지적 기능으로 재사용된다는 이론이다. 대표적 사례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있다. 원래 운동 제어에 관여하던 뉴런이,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사회적 인지 기능으로 전이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신경 재사용의 사례는 언어 이해에서도 발견된다. Pulvermüller(2005)의 연구에 따르면, ‘lick’, ‘pick’, ‘kick’과 같은 동작과 관련된 단어를 들으면 혀, 손, 발과 관련된 감각운동 영역이 활성화된다. Goldman은 이를 통해 언어적 사고조차 신체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Lakoff와 Johnson의 은유 이론도 약한 체화된 인지의 사례로 연결된다. 이들은 추상적 사고가 신체적 경험에서 비롯된 이미지 스키마(image schema)를 기반으로 형성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앞-뒤’, ‘위-아래’, ‘안과 밖’ 같은 기본 신체 경험이 ‘진보’, ‘미래’, ‘정의’ 같은 추상 개념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한 체화된 인지 이론은 뚜렷한 한계를 드러낸다. 실제로 신체를 뇌 속 표상으로만 환원해 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고전적 계산주의 모델과 거의 차별성이 없는 구조로 귀결된다. Alsmith와 Vignemont 역시 이 지점을 지적하며, “신경 중심주의적 관점과 불과 한 뼘 차이”라고 평가한다.


Goldman과 Vignemont은 체화된 인지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 다음과 같은 핵심 질문들에 명확히 답해야 한다고 정리한다.  

어떤 체화 해석이 문제인가?  

인지의 어떤 영역이, 어느 정도까지 체화되는가?  

구체적 실증적 증거는 무엇인가?  

고전적 계산주의와 어떻게 실질적으로 구별되는가?  

이 이론에서 '표상'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결국 약한 체화된 인지는 체화라는 명칭과 달리 실질적으로 신체와 환경의 역할을 배제하고 뇌 내부에서만 인지 과정을 설명하려는 한계를 가진다.



2.2 기능주의적 체화와 확장된 마음 (Functionalist EC and the Extended Mind)


기능주의적 체화된 인지(Functionalist Embodied Cognition)는 체화된 인지의 물리적 요소보다는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 접근은 ‘기능만 같다면 물리적 구현은 중요하지 않다’는 전통적 기능주의의 핵심 전제를 기반으로 하며, 체화라는 개념조차 '기능적 도구'로서만 받아들인다.

이 논의에서 Andy Clark는 대표적으로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을 통해 ‘확장된 인지(Extended Cognition)’ 모델을 정립한다. Clark는 신체와 환경이 인지 과정에 포함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도, 이들의 역할을 뇌의 기능적 연장선으로 바라본다.

Clark는 한편으로는 ‘단순한 체화(simple embodiment)’ 개념을 수용한다. 이 관점에서 인지 과정에서의 해부학적 구조나 의미론적 특성은 ‘사소하고 흥미롭지 않은 요소(trivial and uninteresting)’로 평가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신체와 환경이 인지의 외연적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며, ‘확장된 인지’의 핵심 사례로 발전시킨다.


그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인지적 시스템은 뇌에서 시작하지만, 신체와 환경을 포함해 하나의 ‘확장된 메커니즘 기반(mechanistic supervenience base)’을 이룬다.  

특정 조건에서 신체와 환경은 뇌와 유사한 인지적 기능을 수행한다.  


Clark는 이를 Ballard et al.(1997)의 실험을 통해 구체화한다. 실험에서 사람은 특정 과제를 수행할 때 다음 두 가지 전략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정보를 외부 환경에 남겨두고 필요할 때 눈이나 신체로 직접 확인한다.  

이 실험은 Rob Wilson(1994)의 ‘착취적 표상(exploitative representation)’과 ‘넓은 계산(wide computing)’ 개념과 연결된다. 인간은 환경을 반복적으로 참조함으로써, 신체와 환경이 ‘외부적 인지 매개체(external vehicle for cognition)’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결국 Clark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 확장된 인지(Extended Cognition) 모델을 정립한다. 인지의 일부 과정이 뇌가 아닌 신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실현될 수 있으며, 특히 복잡한 과업일수록 이러한 확장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Clark는 고차원적 인지 과정에서는 강한 표상주의(representationalism)가, 행동 수준에서는 최소한의 표상(minimal representation)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지 과정 전반에서 외부 세계의 정보가 신체와 환경을 통해 지속적으로 활용된다는 관점이다.


한편, 기능주의적 체화에서 나오는 또 다른 논의는 현상적 의식(phenomenal consciousness)의 문제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물질적 신체가 인지 과정에는 핵심적이지 않더라도, 현상적 의식에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절충적 입장을 제시한다. 즉, 동일한 기능적 상태라 해도 인간과 개구리는 서로 다른 신체 구조로 인해 서로 다른 의식적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Clark는 이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는 인지 시스템이 ‘보상적 하위 조정(compensatory downstream adjustments)’을 통해 신체적 차이를 상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한 경험적 반례로 프리즘 안경(prism goggles) 실험을 소개한다.

프리즘 안경을 쓰면 시야가 왜곡되고, 처음엔 행동이 혼란스러워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행동은 적응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각적 경험 자체는 변하지 않고, 오직 운동 제어만 수정될 뿐이다. 이는 신체적 변화가 단순히 보상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경험으로 남는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결국, Clark의 확장된 인지(Extended Cognition) 모델은 신체와 환경이 인지 과정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지만, 저자는 이 모델이 신체의 생물학적·물질적 기여까지 충분히 설명하진 못한다고 평가한다.



2.3 생물학적 체화 모델 (A Biological Model of EC)


생물학적 체화 모델(Biological Model of EC)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의 핵심 사례로, 신체의 구조와 생리적 조건이 인지 과정에서 본질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입장이다. 이 모델은 약한 체화된 인지나 확장된 인지가 여전히 뇌 중심적 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신체 자체가 인지적 기능을 구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관점에서 신체적 구조와 생리적 조건은 단순히 정보 처리의 도구가 아니라, 인지적 경험과 능력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두 눈이 특정한 위치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양안 시차(binocular disparity)가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상대적 깊이를 지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양쪽 귀의 위치 덕분에 우리는 소리의 방향을 식별할 수 있다. 이처럼 지각 과정은 신체 구조 그 자체에 깊이 의존한다.

Shapiro(2004)는 이러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각 과정이 단순히 신체 구조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각 과정 자체가 신체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 

생물학적 체화 모델에서 신체는 지각과 인지의 구성적 요소로 기능한다. 이는 특히 운동과 감각의 통합적 역할에서 잘 드러난다. 머리나 신체의 움직임이 지각적 경험을 변화시키는 ‘운동 시차(motion parallax)’ 현상, 근육과 힘줄의 구조와 긴장도가 지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과정 등이 그 예시이다.

이 모델은 또한 고전적 인지과학의 ‘중심 처리(central processing)’ 개념에 도전한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신체가 수집한 정보를 뇌가 상위에서 처리한다고 보지만, 생물학적 체화 모델에서는 신체 구조가 이미 인지 과정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이 모델은 전통적 계산주의(computational cognitivism)의 한계를 지적한다. 특히 생리적·화학적 상태가 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면서, 인지와 생명 유지 기능(homeostasis)이 불가분 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Damasio(1994)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체 조절, 생존, 그리고 마음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체 상태의 변화는 뇌의 기능 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예를 들어, 저혈당(hypoglycemia) 상태가 되면 뇌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거나 심하면 정지에 이르게 되며, 이는 신체의 화학적 변화가 인지 능력을 물리적으로 변화시키는 직접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전통적 인지과학의 ‘통 속에 담긴 뇌(brain-in-a-vat)’ 사고 실험을 강하게 비판한다. 단순히 뇌에 적절한 입력만 제공하면 인간과 같은 인지와 경험이 가능하다는 전통적 입장은 신체의 생물학적·화학적 기여를 완전히 간과한다는 것이다.


Damasio의 주장처럼, 인간과 같은 인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완전한 신체 대체물(body surrogate)이 필요하며, 이는 체화된 입력(body-type inputs)의 필연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이 된다.

결국 생물학적 체화 모델은 체화된 인지의 핵심적 전개로서, 인지 과정이 뇌 중심적으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신체적 구조와 생리적 조건이 인지의 본질적 구성 요소임을 강조한다.



2.4 행화주의적 체화 인지와 급진적 체화 (Enactivist EC and Radical Embodiment)


행화 된 인지(Enacted Cognition)는 생물학적 체화된 인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층 더 나아가, 지각과 인지의 본질이 신체와 환경의 실시간 상호작용에서 생성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접근은 인지 시스템이 뇌 안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적 상호작용을 통해 인지적 세계가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관점은 Varela, Thompson, Rosch(1991)를 시작으로, Hutto와 Myin(2013)Gallagher와 Varela(2003)Thompson(2007) 등의 연구를 통해 심화되어 왔다. 이들은 기존 인지과학이 전제해 온 표상(representation)과 계산(calculation) 중심의 설명 방식을 비판하며,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Thompson과 Varela(2001)는 행화 된 인지의 핵심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뇌, 몸, 세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선형 동역학 시스템 이론(non-linear dynamical systems theory)이 필요하다.  

둘째, 전통적 의미의 표상과 계산 개념은 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이를 대체해야 한다.  

셋째, 인지 시스템을 내부의 기능적 모듈로 나누는 방식(boxology)은 오류이며, 뇌-몸-환경의 통합적 역동성을 고려해야 한다.  

행화 된 인지는 특히 ‘지각은 행동을 위한 것이다(perception is for action)’라는 명제를 중심에 둔다. 지각과 인지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구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이며, 이는 단순한 정보 처리나 입력-출력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화 된 인지는 다음 세 가지 층위에서 인지 과정을 설명한다.  

생물학적 체화: 생명체로서의 신체가 생존과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과 상호작용한다.  

감각운동적 체화: 지각과 운동이 분리되지 않고, 신체적 탐색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지각이 구성된다. 

사회적·상호주관적 체화: 인지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며, 이는 단순히 타인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난다.  

감각운동적 층위에서는 O’Regan과 Noë(2001)의 감각-운동 조건 이론(sensorimotor contingencies theory)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각은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신체의 움직임과 감각의 상호작용을 통해 능동적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정서적 상태와 생리적 조건 역시 인지 과정의 핵심적 요소로 작용한다. 피로, 고통, 공포와 같은 생리적·정서적 변화는 단순히 신경적 표상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인지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는 비표상적 상태(non-representational states)로 기능한다. Gallagher(2005a)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인지 과정과 분리될 수 없는 핵심 구조임을 강조한다.


행화 된 인지는 또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제도적 환경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인간의 인지적 능력은 개인의 뇌와 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며,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깊이 의존한다.

Gallagher는 이를 ‘1차 상호주관성(primary intersubjectivity)’과 ‘2차 상호주관성(secondary intersubjectivity)’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1차 상호주관성: 생후 초기부터 형성되는 얼굴 표정, 몸짓, 눈 맞춤 등 비언어적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가 형성된다.  

2차 상호주관성: 약 9~12개월 이후 사회적 규범과 맥락이 개입되는 상호작용으로 확장된다.  

행화 된 인지는 거울 뉴런 시스템(mirror neuron system)의 역할 역시 다르게 해석한다. 전통적으로는 거울 뉴런이 타인의 행동을 뇌 내에서 표상한다고 보지만, 행화 된 인지는 이를 타인과의 실질적 상호작용을 준비하고 구성하는 과정의 일부로 본다.


결국 행화 된 인지는 인지와 지각, 의식이 생물학적, 감각운동적, 사회적 상호작용의 총합적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는 Husserl의 ‘나는 할 수 있다(I can)’Heidegger의 ‘준비된 존재성(ready-to-hand)’Merleau-Ponty의 신체적 지각 이론과 맞닿아 있으며, Gibson의 ‘어포던스(affordance)’ 이론과도 연결된다.

나아가 이 입장은 Malafouris(2013)의 ‘물질적 관여 이론(Material Engagement Theory)’으로 확장되며, 인간의 사고와 인지가 도구, 건축, 사회적 실천 등 환경과의 물질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는 관점으로 발전한다.

결국, 행화 된 인지와 급진적 체화는 인지 과정에서 신체와 환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지의 구성 요소로 작동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2.5 네 가지 체화 모델에 대한 종합적 논의 (Getting Down on All 4Es)


이 절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체화 모델—약한 체화된 인지, 확장된 인지, 생물학적 체화된 인지, 행화 된 인지—를 바탕으로 4E 인지과학의 전체 지형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먼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를 4E 모델의 핵심으로 놓고, 이를 중심으로 다른 세 축인 착근된 인지(Embedded Cognition)행화 된 인지(Enacted Cognition)확장된 인지(Extended Cognition)의 의미와 상호 관계를 설명한다.


체화된 인지 (Embodied Cognition)

체화된 인지는 인지 과정이 신체의 구조적·생리적 특성에 의해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는 입장이다. 신체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지적 내용과 과정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이 관점에서 인지는 항상 생물학적·물리적 몸을 전제로 하며, 몸의 상태 변화는 곧 인지 과정의 변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체화된 인지는 고전적 인지과학의 계산주의 모델과 가장 선명하게 대비된다.


착근된 인지 (Embedded Cognition)

착근된 인지는 인지가 환경적·상황적 맥락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지 시스템은 환경 속에서 그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며, 환경적 단서와 제약이 인지 과정의 구조와 내용을 규정한다.

이 관점에서 환경은 단순한 외부 요인이 아니라, 인지 과정의 실질적 일부로 작용하며 인지 시스템의 효율성과 방향성에 깊이 관여한다. 그러나 착근된 인지는 여전히 환경을 ‘배경’ 정도로 보는 한계가 있고, 행화 된 인지나 확장된 인지보다는 덜 급진적이다.


행화 된 인지 (Enacted Cognition)

행화 된 인지는 인지와 지각이 신체와 환경의 실시간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지는 뇌 안에서 미리 준비된 결과물이 아니라, 세계와의 행위적 관계를 통해 매 순간 구성되는 과정이다.

이 입장은 특히 정서적·생리적 상태, 사회적·상호주관적 상호작용까지 포괄하면서, 인지와 환경, 사회가 긴밀히 얽혀 있는 복합적 시스템으로 이해한다. 행화 된 인지는 급진적 체화의 핵심적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확장된 인지 (Extended Cognition)

확장된 인지는 인지적 과정이 신체 바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인간의 인지는 뇌와 몸에 국한되지 않고, 외부의 도구, 기술, 사회적·문화적 환경까지 포괄하는 확장된 시스템의 일부로 구성된다.

대표적 사례로 Clark와 Chalmers(1998)의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논의가 있다. 노트, 컴퓨터, 지도 등은 특정 조건에서 인간의 인지적 과정의 일부로 작동하며, 환경적 요소들이 뇌의 기능적 연장선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정리된 4E 모델은 인지과학 내에서 서로 다른 이론적 입장과 수준을 포괄하는 틀로 기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네 가지 모델이 단순히 조화롭게 결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특히 약한 체화된 인지나 확장된 인지의 기능주의적 모델과, 생물학적·행화 된 인지의 급진적 모델 사이에는 철학적·이론적 긴장이 존재한다. 결국 4E 모델은 ‘체화’라는 공통된 개념을 공유하지만, 그 해석과 적용 방식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며, 단순히 하나의 이론적 입장으로 환원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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