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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Aug 22. 2022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16일 차, 20200402

친구 로트

밤이 되면 언제나 그 친구가 찾아온다.

아직 정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친구는 특히나 혼자 있는 밤이면 종종 찾아와서 자꾸 같이 놀자고 괴롭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귀에 속삭이면서 잠들기를 괴롭히며 나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는 그 녀석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생각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생각만을 나에게 불어넣는 것 같기에 오늘 밤 그 녀석 이름을 지어주었다.

로트. 영어로 하면 Lot이다.


생각해보면 로트는 나의 20대를 함께 보냈고 이제 독일까지 따라와서 나의 30대에 함께하고 있다.

나는 그 친구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20대를 보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결정적인 재미의 순간마다

로트가 함께 와서 즐긴 듯하다. 나는 초대한 적도 없는데 왜 지 마음대로 와서 나보다 더욱 내 파티를 즐기고 있었는지

로트가 그동안 나와 함께 해온 시간은 상당히 길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10년 넘게 내 곁에서 나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는데 난 왜 이제야 그 친구가 눈에 들어오는지.


같이 보낸 시간은 길었어도 그 존재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로트. 양아치 같이 생긴 외모에 즐겨 듣는 음악은 테크노.

술도 잘 못하는데 잘하고 싶어서 10년 넘게 술 내성을 길러왔다. 파티를 좋아하고 머릿속에는 온갖 더러운 생각이 가득하다.

보이는 것에 집착해서 돈이나 외모나 학벌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인간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온갖 부정적인 사고를 머릿속에 가득 채워놓고 지내면서 나에게 자주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나는…

참으로 진솔하다면 진솔하지만 더러운 놈이다.


그런 로트를 이제야 알아본 것은 신기한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하는 그 새끼를 어떻게 서든 좀 좇아내고 싶은데

그 방법을 알겠는데도 실천이 쉽지 않다.


오늘 밤에도 로트가 귓가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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