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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Sep 09. 2022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20일 차, 20200406

욕망과 합일

재택근무가 시작되었을 당시, 하루를 무슨 일을 하고 보낼지는 그 하루의 제일 큰 일 중 하나였다.


주어진 현재의 시간에 감사하자는 자세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우고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자 하지만

나약한 정신은 너무나도 손쉽게 나를 게으름의 나락으로 다시 이끌어서

하루의 마지막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라는 느낌을 가득 품은 채 하루를 마감하게 한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욕망이다.


17세기 유명 철학자 중 스피노자라는 네덜란드 사람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인간은 욕망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

어찌 된 이유인지 나는 그의 욕망론을 참으로 좋아했다.

그 사상의 감정적 솔직함 때문일까.


주말 동안 생명을 가득 받고 돌아와서 다시 새로운 계획 혹은 마음을 다시 붙드는 동기부여가 생겼었다.

하나 그 계획이나 동기부여에 나의 나약함은 고려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나.

이유 모르게 피곤하고 알레르기 반응도 좀 나오면서 머리도 조금 아픈 듯하다.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름 가지고 있는 영양제나 비타민 등을 챙겨 먹으면서

다시 기운을 차리려고 하는데도

오후가 지나기까지 기운이 없다. 계속 나오는 콧물. 간헐적인 재채기. 혹시나 코로나는 아닐까.


이렇게 저렇게 하루를 보내야지 생각했던 나의 계획은

육체의 나약함에 2차적 중요성으로 떨어지면서 1차적 중요성은 휴식이 차지해버렸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계획의 실천보다도 휴식을 원했던 것이다.

난 휴식을 욕망한다.

분명 머리로는 계획을 실천했을 상황에서의 만족감이 상상되고 이해가 가지만,

휴식을 향한 강렬한 욕망이 계획 실천으로 인한 만족감을 밀어내고 있다.

그래서 그냥 강렬하게 휴식을 취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다가 저녁 21시가 조금 지나 잠을 청했다.


시간이 많이 허락된 하루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나와의 싸움이다.

주어진 자유에서 탓할 존재는 나 밖에 없다. 그래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어려운 것이다.

남들과 뒤엉켜 시간을 보낼 때는 혼자 보낼 시간을 누구보다 강하게 갈망한다.

내가 저 회사만 안 다녀도, 내가 혼자 살 공간만 생겨도, 방해 없이 며칠만 보낼 수 있어도, 내가 온전히 내 시간을 쓸 수 있다면, 친구들도 좋지만 정말 나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렇게 갈망하던 시간이 주어지고서 즉시로 느껴지는 해방감과 기쁨은 잠시, 곧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이 튀어나오곤 한다.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 나에게 필요했던 사람들의 중요성,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를 때 나도 모르는 채 나의 시간을 이끌어주던 그 소중한 사람들. 그 부재로 인한 우울함 혹은 그리움. 그리고 그러한 모든 감정의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중압감이 주는 압박과 그 압박으로 인한 자책. 자책이 다시 이끌어가는 초라함과 우울함. 결국 떠오르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


책에서만 읽었던 몇 가지 논리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내 안에는 나 이외에 나를 이끄는 다른 강력한 욕망이 있다는 것, 인간 사랑의 근본은 합일 (Oneness)에 있다는 것,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강력한 욕망이라는 것 등.


합일을 강력하게 욕망하지만 내 마음속에 나 이외에 나를 이끄는 한 존재와의 싸움으로 그 욕망이 시시때때로 바뀐다는 것.


나약함과 부여된 동기 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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