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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Nov 08. 2022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21일 차, 20200407

영화처럼

벌써 20회가 넘어가는 이 일기를 누군가가 오늘 처음 본다면 1회부터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이 현실이다. 

기분 좋게 시작한 아침이 기분 좋게 마무리되는 저녁으로 끝나는 일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 또한 현실이다.

다짐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알차고 기분 좋게 보람차게 보내야지. 오전 근무가 끝나고 찾아오는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서 

다양한 발악을 시도하지만 어김없이 오후 5시쯤 찾아오는 허무함은 보이지 않는 서쪽 하늘의 붉은 노을빛을 내 마음속에 적셔놓는다.

매일매일 써 올리는 이 일기의 의미를 의문에 붙이고 의문은 곧 회의로 뒤바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생각과 감정 안에서 마냥 부러운 것은

영화배우의 삶뿐만 아니라 그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책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시간의 흐름에 무뎌진다. 자막 하나로 몇 년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몇 초만 흘렀을 뿐이고, 시간의 변화가 없는 내용에서도 

긴 시간을 보내며 감정이나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준비를 한 후에 한 번에 결전의 날로 넘어가서 대략 열심히 준비한 내용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준비 과정에서의 고된 감정과 생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자유로운 시간 흐름의 조절이 부럽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영화나 책을 통해 느끼는 감정에 사로잡힐 때면 스스로를 다잡거나 새로운 마음을 불어넣곤 한다. 영화에서는 보면

그렇게 다잡은 마음이나 새로운 동기부여가 몇 날 며칠이 이어가서 원하는 결과를 보여주거나, 혹은 전혀 그러한 부분을 다루지 않은 채로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데,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든 순간, 모든 초, 분, 시 그리고 날을 살아간다. 우리에게는 시간을 멈추거나 뛰어넘거나 되돌리는 것 따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다만 영화나 책에 빠진 망각만 존재할뿐. 일상의 평범함이 주는 거리감은 시간 안에서의 무기력함이다.  

한국을 떠난 지 오늘로 한 달이 된다. 코로나가 가득 찼던 나의 한 달. 자가격리의 한 달. 수많은 희망이 꺾여버린 한 달. 사무치게 아쉬움만 늘려놓은 한 달. 많은 이들과 이별한 한 달.

영화나 책의 전개에서는 그냥 한 두줄로 넘겨버리고 싶은 이 한 달. 그만큼 자세하게 알고 싶지도 않고, 자세히 보아야 괴로운 한 달, 겨우 이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기에 지금 누군가가 이 글을 처음 읽는다면 다시 1부터 다시 보는 일은 없는 것이다. 일기이기 때문에. 이 글에는 영화나 소설 같은 극적 시간의 완급이 없기 때문에.

지극한 나의 현실이고 일상이다. 그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한 달의 일상인 것이다. 부쩍 일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나의 일상은 버티는 것이다.

당신의 일상이 궁금하다. 분명 나만큼 징징거리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큰 고민 없이 살아가고 있을 것인지. 또, 나 같은 사람을 동정하며 마음으로 어루만져 줄 것인지. 아니면 어쭙잖은 투정으로 받아들이며 비웃을 것인지. 당신의 일상은 나의 일상보다 성대 쓸 일과 신발 신을 일이 많이 주어지는지. 


앞으로의 한 달도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아침의 당찬 포부가 6시간도 채 못 버티고 매일 꺾일지라도, 지쳐가는 마음 붙들고 

침대 위에서 한 없이 뒹굴기라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마주할 희망 따위 품는 일은 영화에서 주는 망상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하루하루가 있고, 매 분 매 초가 있을 뿐이다. 방구석의 스탠드 조명이 보이지 않는 붉은 석양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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