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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3. 2024

나는 다만 이 정도 그릇인 것이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34일 차, 20200420

상쾌하게 시작하려고 했던 월요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기력함이 아침부터 나를 사로잡아서 1시간 반 밖에 되지 않는 근무 시간이 마치 한나절이 넘는 듯이 느껴지고 

밤마다 빠지는 마리아나 해구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잠을 자면 허리만 아플 뿐 제대로 피로가 풀리지 않는 듯하다. 

안 그래도 삶에 불만을 조목조목 찾아내는 나에게 지금의 삶은 한 마디로 “불만”이다. 


제일 큰 문제를 따지자면 역시나 집이다. 마음속으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지난 집보다 지금이 낫다고 외치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점도 많이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나만의 온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7년 이래로 독일에 지내는 동안 임시거처가 아닌, 독일에서 일상적으로 집을 계약하는 방법인 무기한 거주 계약으로 한 공간에 머무른 적이 없다. 

아직도 부족한 내 독일어 실력 때문인지, 독일 정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 이메일을 똑바로 쓰지 못하는 까닭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내가 마냥 한국인이기 때문인지. 정말 그냥 운이 나빠서인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다. 돈이라도 겁나 많으면 쉬웠을까. 


H33D를 처음 시작할 때 올린 내용이 집을 찾는 방법이었다. 

나름 집을 찾는 방법을 알고 또 인맥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크나 큰 오산이었다.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집 찾는 여정은 아직도 임시거처를 전전긍긍하며 끝나지 않고 있다. 

그러한 내용의 정보 글을 올린 당사자가 이렇게나 집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 글을 읽는 사람은 얼마나 도움을 받고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지, 혹시나 내가 운이 없어서 그 글을 읽고 집을 찾는 사람은 정말 내 조언대로 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말 그대로 내가 운이 안 좋을 수 있으니까. 


지키지도 못할 계획 마음속에 가득 세운 하루는 저녁 9시가 못되어 침대로 나를 이끈다.

느지막하게 뉘엿뉘엿 지는 해처럼 느릿느릿 침대로 기어들어가 마리아나 해구에 푹 빠져 원피스 만화영화를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있다. 열려있는 노트북을 정리하고 대충 바닥에 내려놓은 후 다시 잠을 청한다. 

불만인 하루를 괜찮은 척 보내는 것도 신물이 난다. 그렇다고 괜찮지 않은 티를 낸다면 무엇을 할 수 있으려나. 

모두에게는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 나는 다만 이 정도 그릇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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