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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3. 2024

나에게만 주어진 4월의 겨울을 난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35일 차, 20200421

요새 며칠 창 밖에 봄기운이 만연하다. 

4월도 10일 남짓 남으니 제법 따뜻해졌다. 

그렇게나 시간이 빨리 흐른 것이다.

난 아직도 한국에 다녀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 아빠랑 전화를 하다가 지난달 내가 한국에 지냈던 이야기가 나왔다. 

“아 엊그제 제가 드린 거요?” 엊그제는 개뿔, 이미 한 달도 지났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 안에 살고 있는 것인가. 


불만쟁이인 나는 오늘도 역시나 불만거리를 가뜩이나 찾는다. 

화상회의 때 나오는 사람들 중에 나처럼 혼자 지내는 사람이 있나 생각해 봤다. 

결혼한 사람 1. 결혼한 사람 2. 동생이랑 사는 사람 1. 부모님이랑 사는 사람 1. 

차라리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생각하면서 내 처지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어릴 때 학교에서 나온 밥을 남기거나 할 때면 꼭, 이런 밥도 못 먹는 결식아동들을 생각해라, '아프리카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라'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 친구들을 실제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나보다 못한 처지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그래, 이렇게 밥을 남기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교육의 흔적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서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 찰 때면 간혹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내 상황을 다행으로 여기려는 노력을 한다.

요즘 말로 이런 것을 정신승리라고 하나. 그래서 난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수많은 나보다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매일 정신으로 승리한다.


불치병이고 알레르기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마음의 병은 독일 와서 얻은 먼지 알레르기와 더불어 마음에 얻은 불만 알레르기다. 

오늘도 벌써 해가 진다. 봄기운 만연했던 낮 시간은 지나가고 다시 겨울과 같은 밤이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 안에 살고 있는지. 

살고 싶은 고집, 아프고 싶지 않은 고집에 발악하며 내일이면 다시 따뜻해질 바깥 햇살 가로막고 

홀로 방 안에서 수면양말, 목도리, 털모자까지 뒤집어쓰며 나에게만 주어진 4월의 겨울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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