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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3. 2024

얼마나 더 잃어야 알게 될는지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36일 차, 20200422

지난 주말은 어머니 생신이었다. 무심코 보냈다. 

생전에도 음력으로 생일을 보내서 매 년 계산을 따로 하곤 했다. 핑계다.

불효자식은 지 불만만 마음속에 가득 채워 놓느라 이틀이 지나서야 생신인 것을 안다.

잃은 후에야 소중함을 안다고 하는데, 난 잃고 나서도 모르나 보다. 얼마나 더 잃어야 알게 될는지.


4월은 벚꽃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휠체어를 끌고 병원 복도 산책을 나간다. 복도에 나가는 것은 컨디션이 좋은 날에 허락되는, 그런 감사한 일이다. 

시간을 마음에 새겨 넣듯 한 발 한 발 천천히 휠체어를 끈다. 

복도 끝 창에 다다라 4월의 한적함을 엿본다. 창 너머 이름 모르는 익숙한 동산에 희끗 희끗 벚꽃이 피었다. 


“엄마, 엄마 다 나으면 엄마 좋아하는 벚꽃놀이 가자. 저기 산에 엄마 좋아하는 벚꽃 피었네! 이쁘지?”

무심한 아들은 건강했던 때 제쳐두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엄마에게 벚꽃놀이를 가자고 한다.

엄마는 대답이 없다.


4년이 흐른 후 4월에 문득 생각한다. 

앉아 계신 어머니 눈에도 그 벚꽃이 보였을까.


키 큰 내 아들 손 잡고 일어나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잠시라도 일어나 창 밖 벚꽃이라도 볼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벚꽃인 것을 들키고 싶지도 않아, 일어설 수 없는 것도 들키고 싶지 않아.

그렇게 조용히 앉아만 계셨던가.


지 생각밖에 안 하는 이 이기적인 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이렇게 늦게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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