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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Jan 23. 2024

매일매일이 조건부 삶이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37일 차, 20200423

남과 비교하고, 나약한 마음을 탓하고, 불만인 상황을 끊임없이 찾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고, 매일 아침 괜찮은 척하고. 

괜찮지 않다고 외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함. 모두 다 포기해버리고 싶다가도 결국 포기할 용기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 좌절한다.

그냥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겁쟁이에 비겁자의 자세다. 


기쁠 조건. 감사할 조건. 행복할 조건. 사랑할 조건. 기분 좋을 조건. 열정 넘칠 조건. 배려 깊을 조건. 이런 조건 저런 조건. 

화날 조건. 짜증 날 조건. 우울할 조건. 서러울 조건. 기분 나쁠 조건. 의욕 없을 조건. 이기적일 조건. 이런 조건 저런 조건. 

조건부 삶이다. 매일매일이 조건부 삶이다. 


어제는 애지중지 키우는 다육식물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흙을 사서 통을 채우고 줄기를 잘라 새 흙에 심었다. 약 7개쯤 되는 잎사귀에서 뿌리가 내려지고 새로운 잎들일 나면 번식에 성공한 것이다. 약 2-3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기간에는 식물을 들척이거나 물을 주거나 하면 안 된다. 아무리 궁금하고 잘하고 있나 의문이 들어도 일단은 잎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빠르면 2-3주 이기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시간을 인내하지 못하고 잎을 들척이거나 물을 주거나 하게 되면 잘 진행되어 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일에는 때가 있다. 인간의 일도 그렇고 자연의 일도 그렇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근심이 생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부럽다. 

한 유명한 시인이 말하길 성격이 운명임을 기억하라고 한다. 

난 근심할 운명으로 태어난 것인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순응.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패배자, 겁쟁이의 자세는 아닌지. 

때를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 아닌 때를 뒤바꿔서 맞는 때로 바꾸는 것. 어느 것이 옳은 자세일까. 


새 집에 이사 온 지도 일 주가 넘어간다. 썩어가는 근육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팔 굽혀 펴기를 한다. 

본래도 얇은 팔이 어느 때보다 얇아 보인다. 더욱이나 쓸 일 없는 종아리는 툭 치면 부러질 듯하다. 

조금의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한다. 아무리 씻어도 꺼칠한 피부를 만지며 나이 탓을 한다. 어쩔 수 없다고 나도 이제.

내 역량 밖으로 문제의 원인을 넘긴다. 원래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고.

아무도 내 상황에 도움이 안 되어도 원래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수 없이 불만 갖고 지내는 노예 같은 내 모습도 원래 그렇다고, 어쩔 수 없다고. 

성격이 운명임을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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