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가로막는 벽이 되어버린 삼성전자의 조직문화
삼성전자 9조 1억 원, SK하이닉스 약 7조 원.
얼마 전 발표한 2024년 3분기 영업 이익 수치입니다.
이 수치만으로는 삼성전자가 여전히 높은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등 여러 사업 부문으로 구성된 반면,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인 DS 부문만 따로 떼어 살펴보면,
영업 이익은 약 3조 8천억 원으로 SK하이닉스 영업 이익의 반토막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주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습니다.
삼성전자는 RAM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해왔고,
후발 주자인 SK하이닉스와 세계 DRAM 시장 1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HBM(High Bandwidth Memory) 수요가 커지면서,
이에 대한 경쟁 결과가 기업의 향후 먹거리를 좌우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삼성전자는 일찍부터 HBM 개발에 착수했으나,
초기 상용화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해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010년부터 꾸준히 기술을 발전시켜 지금의 성공을 이뤄냈습니다.
그 결과 명실상부 반도체 왕이었던 삼성전자가
시장 선점에 어려움을 겪으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삼성전자가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 원인으로는
많은전문가들이 삼성전자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꼽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조직문화는 2017년 권오현 부회장이 사임하면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권오현 부회장 재임 시절,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은 높은 성과를 기록했고,
당시 삼성전자는 “스마트하게 일한다(work smart)”는 슬로건 아래
유연한 근무와 성과 중심의 시스템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성과가 중요한 만큼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이 가정과 직장 생활의 균형을 맞출 것을 권장했고,
근무 관리에 중점을 두어 조직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내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따라서 권 부회장은 ‘덕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권 부회장 사임 후 삼성전자의 조직문화는
근태와 보고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유연한 근로 제도는 줄어들고, 엄격한 보고 체계가 자리 잡았습니다.
부서 간 협력이 중요한 반도체 분야에서조차 각 부서 간 경쟁이 부추겨졌으며,
각 부서가 서로의 성과를 검증하고 비교하는 구조가 정착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접근보다는 안전하고 소극적인 선택을 택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한 부서에서 개발된 기술이 다른 부서의 협력을 통해 완성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부서 이기주의의 팽배는 제품 개발의 속도와 품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서 간 장벽이 형성되며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이 어려워졌고,
이는 삼성전자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삼성전자의 핵심 의사결정 구조인 ‘사업지원TF’ 조직도
직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사업지원TF는 과거의 미래전략실의 후속 형태로,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재편성된 조직입니다.
그러나 이 조직은 과도한 권한과 엄격한 형식적 보고 절차의 강조로 인해
본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일의 본질보다는 보고서 작성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했고,
이러한 경직된 구조로 인해 사업지원TF는
실제 조직 지원보다는 보고서 검토에 더 치중하는 것으로 보이며,
직원들의 창의적 발상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삼성전자는 9조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음에도
반도체 부분의 실적 악화에 크게 반성하며
조직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내부 소통과 협력 문화 회복을 다짐한 이 사과문은
삼성전자가 현재 위기를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늘 위기를 강조해 왔지만,
진정한 위기는 ‘위기감’을 잃었을 때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앞으로 삼성전자는 정확한 문제 진단을 통해
다시 한 번 조직문화의 혁신과 함께 다음 세대 신성장 동력을 마련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