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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Dec 04. 2021

[2-3] 음식, 그 고달픈 녀석.

아티스트 웨이, 마이웨이 2기. 2nd.


"얼른 먹어"

"빨리 좀 먹으라고"

"하~~아"

이제는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기도 힘들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일어서서 소파에 가서 앉거나, 방에 와서 책상에 앉는다.  아이가 먹을 만한 반찬을 아이 앞에 두거나, 아이 밥그릇에 잔뜩 올려놓은 채로. 작은 아이는 거의 모든 행동이 느리다. 하라고 해도 어깃장 부리거나 딴짓하거나 한다. 그중에 압권은 밥 먹는 것. 재촉하지 않으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시리얼 한 그릇을 먹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리니. 처음에는 아이가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점점 지친다. 점점 기다려주는 시간이 짧아지다가, 지금은 밥을 다 먹으면 혼자 일어서 버린다. 그게 좋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지만, 혼자 남아 밥을 먹는 막내의 기분이 어떨까 생각도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너무 싫다. 막연히 앉아서 기다리면서 아이에게 빨리 먹으면서 재촉하고, 재촉하다가 제풀에 못 이겨 화를 내느니, 그냥 혼자 알아서 먹도록 남겨두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냥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몇 시간씩 가고,  또 몇 시간씩 줄 서서 먹는 것을 난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아무거나 먹고 말지. 전에는 "관심 없다"가 전부였다면 지금은 "치를 떤다"는 수준으로 심각해졌다. 이렇게 심각해진 것은 육아휴직을 시작하고서부터이다. 청소나 빨래는 그냥 하면 되는데, 요리는 다른 문제였다. 내가 한 요리를 다른 사람이 먹는다는 사실은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내가 요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고,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째 문제였으며, 큰 맘먹고 용기를 내서 요리를 해도 맛이 없다는 것이 세 번째 문제였고, 이것이 계속 악순환이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마트에 가서 식자재 코너 앞에 서면 숨이 탁 막힌다. 대체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겠고, 왜 이 많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이 많은 것들 중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가 이해가  안 된다. 눈앞이 어질어질해지기도 하고, 바라는 것은 빨리 나가는 것뿐이다. 가끔 요리를 정하고서 그것에 필요한 것을 사러 가는 날은 그런 증상이 덜하다. "감자, 당근, 버섯, 닭고기 이것만 사고 오자" 하면 그것만 보면 된다. 근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난 감자 1개, 당근 1개만 필요한데. 감자 1 봉지, 당근 1 봉지를 사야 한다. 내게는 정말 큰 맘먹고 요리를 하는 것인데 요리를 하고 나면 남은 재료가 더 많다. 그 재료를 가지고 다른 요리를 한다는 것은 내겐 불가능한 일이다. 그 재료들을 보면 또 숨이 턱 막힌다. 그 재료들은 냉장고에 보관되다가 어느 날 썩기 일보 직전에 버리게 된다.


하나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선 몇 날에 걸친 다짐과 고뇌를 거친다. 그리고 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 간다. 마트에서 필요한 것보다 많은 재료를 산다. 집에 와서 요리를 한다. 요리를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한다. "아빠, 그냥 사주면 안 돼?"라고 큰 아이가 말한다. 작은애는 먹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사온 반찬을 먹고, 난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고 나면 요리를 할 의욕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먹여야 한다."는 사실은 내겐 정말 큰 곤욕이다. 퇴근 시간만 되면 '오늘 뭐 먹이지?' 하는 생각에 숨이 턱 막힌다. 호흡곤란이 온 적도 있다.


에세이 필사를 할 때, 여러 가지 주제 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주제 역시 음식이었다. 여행이나 영화를 주제로 하는 글도 힘들었는데 계속 참여하다 보니 여행의 의미, 영화 소개글 등을 쓰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되기도 했지만, 음식에 대한 글은 그게 안된다. "안도현의 발견"을 가지고 에세이 필사를 할 땐, 처음엔 잘 참여하다가 주제가 음식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 음식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라고 할 텐데, 그것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 음식을 주제로 한 글은 읽기도 쓰기도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내가 요리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내가 요리를 잘하거나, 아이들이 잘 먹거나 어느 하나라도 된다면 괜찮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요리에 관심이 없고, 요리를 못하고, 잘 먹지 않는 아이들과의 3년은 나를 요리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갖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소용돌이처럼 점점 커져서 끝 모를 크기가 되어 버렸다. 식사시간만 되면 느끼는 이 엄청난 스트레스는 이제 아내도 어쩌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인다. 전에는 "요리가 원래 그런 거야", "그래도 애들 먹이려면 노력해야지"라고 말을 하다가, 이제는 포기해버렸다. 그런 말이 내게 아무런 소용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식사 준비는 거의 아내가 하고 있다. 난 설거지와 밥하기를 주로 한다. 반찬을 주문하는 것도 아내가 한다. 무수한 반찬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 자체가 나에겐 곤욕이기 때문이다.


에세이 필사를 할 때도 그랬다. 열심히 참여를 하다가도 음식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가면 그때부터 사고가 정지된다. 참여를 거부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갖가지 에피소드를 올리는데, 난 그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때로는 그런 글이 올라오는 것 자체가 싫어서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음식에 대한 이야깃거리들이 있건만, 지금은 그런 것 다 귀찮다. 음식에 대한 글은 읽기도 쓰기도 생각하기도 싫다. 심지어 하루 3끼 밥을 먹는 것도 귀찮다. 그냥 먹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먹는 낙으로 산다고 하는데, 난 음 전혀 아니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선두(한 알만 먹으면 10일 치를 먹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신선이 기른 콩)라던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껌(한번 씹으면 한 끼 코스요리를 먹은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 껌)이 나오길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고대하고 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이 느껴진다. 대게 글을 쓰다 보면 좀 개운해지기 마련인데, 이건 웬걸 더 심해진다. "내가 요리에 대해 이런 거부감을 갖게 된 상황을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써야 되는데, 오히려 나를 이해 못 하면 어쩌지?"뭐 이런 걱정만 들뿐이다. 요리, 음식에 대한 이 막연한 거부감, 숨쉬기 곤란할 정도의 이 부담감. 이것을 바꾸고 싶은데,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답답하다. 더 쓰다간 미쳐버리겠다. 그만 써야겠다. 뭔가 해소해보려고 글을 썼다가 더 심해졌다. 젠장이다.


#요리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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