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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처럼 Apr 24. 2021

"나만 못써 병"에 대한 고찰

글쓰기에 대해 쓰다 #1

밤 10시 13분.
글쓰기 마감까지 남은 시간 1시간 47분
여러 글감이 떠올라 글의 날개를 펼쳐보지만, 얼마 날지 못하고 추락하고 만다.
그냥 쓰면 되는데 왠지 머뭇거린다. ‘왜 머뭇거릴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이런 이런, 또 병이 도졌다. 이름하여 “나만 못써”병

병명 : 나만 못써

증상 : 다른 사람 글을 읽을 때면 심각한 자괴감에 빠진다. 다른 사람의 글은 다 좋게 느껴지고, 그 느낌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글 더욱 형편없다고 여기게 된다. 심할 경우 글을 쓰는 것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오늘은 쓸 기분이 아냐’라고 생각하며 글쓰기를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는 보고가 있다. 글이 잔뜩 힘이 들어가 있어서 때론 읽는 사람이 버거울 때 있다.

원인 : 글을 잘 쓰려는 강박관념, 작가가 되고자 하는 욕심, 자기 검열,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시기와 질투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병한다. 또한,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이 병에 걸릴 가능성이 많다는 통설이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치료법 : 다른 사람의 글과 자신의 글을 비교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글은 그 사람의 삶이 묻어 있는 법이라,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료방법이다. 삶의 결이 다른 만큼 글의 결도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발견자 : 박현수 작가

발견 시기 : 2017년 6월~ 2019년 9월

최초 보고 : 2019년 9월

최초 발표 장소 : 대추골 도서관

경과 보고서 : 박현수 작가는 2017년 5월부터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글쓰기 강좌를 듣게 되었다. 강좌를 들으면서 숙제로 글쓰기가 주어지고 다음 주에 와서 발표를 하는 과정이 있었다. 작가는 그때 수강생들이 모두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만 못 쓰는것 같았고, 자신이 쓴 글을 감추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때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다들 잘 쓰는데 저만 못 쓴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의아해했으며 처음으로 그것을 인식했다고 기술한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되돌아보니 그때부터 인식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 후로도 여러 글쓰기 강좌에 참여를 했는데, 자신이 글을 발표하면 다들 “너무 잘 쓰세요.”라고 자신을 칭찬했다고 한다. 정작  자신은 다른 사람이 쓴 글들이 더 좋고, 자신의 글은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고 회상한다. 글쓰기 모임을 갈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 백이면 백이 “저만 빼고 다들 잘 쓰시네요. 그래서 창피합니다.”라고 말하는 그 현상을 발견하고, “왜 그럴까?”하고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작가는 한 도서관에서 진행된 “읽고 보고 쓰니 내가 되었다-필사하고 서평 쓰기” 강좌에 참여하면서 같은 현상을 다시 한번 발견했다.

그 강좌는 카카오톡 단톡 방에 매일 올라오는 리드문을 필사하고, 필사 작문을 올려야 했다. 올라오는 필사 작문은 모두 명문장이라 싶을 정도로 뛰어났고, 그만큼 자신의 것이 형편없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필사 작문을 올리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어서 올렸는데, 사람들의 칭찬이 쏟아졌다고 기술한다. “뭘까? 난 ‘나만 못써’라고 생각이 드는데, 왜 사람들은 나한테 잘 쓴다고 할까?” 그것이 그는 궁금했다고 한다. 또한 “나만 빼고 다들 잘 쓰시네요.”라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그가 발견한 병이 “나만 못써”병이다. 그것을 발견한 그는 강사님께 허락을 구한 후, 도서관에서 발표를 하며 자신의 발견에 대한 확인을 했다고 한다.

<30명이 같이 글쓰기를 한다고 할 때, 한 명도 빠짐없이 “다들 잘 쓰는 것 같아. 나만 못써”라고 생각을 한다. 그것을 바꿔 말하면 30명 중에 30명이 모두 자신이 글을 못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그 말은 30명 중에 나를 뺀 29명이 나에게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가?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겪은 경험이 다르다. 같은 장소에 있다 하더라도 그 경험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깊이가 다르게 마련이다. 즉 삶의 결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은 내가 절대 쓸 수 없는 글이다. 내가 쓸 수 없는 글은 좋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자신은 못쓴다고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글은 잘 썼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글을 비교 대상으로 삼지 말고, 모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비교 대상은 오로지 자신의 글뿐이다. 매일 글을 쓰는 것만이 ‘나만 못써’ 병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현수 작가의 회고록 중에서 요약 발췌-

향후 추이 : 박현수 작가의 보고 이전부터 여러 사람에게서 발견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술적(의학적)으로 명명한 것은 처음이다.(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경향이 있고, 심각한 질병이라기보다는 통과의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학계는 판단하고 있다. 자신의 글을 쓰고, 꾸준히 쓰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치료법인만큼, 자신의 글과 경험에 자신을 가지고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같이 글 쓰는 동료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윤리라고 여겨진다.

원고지 : 1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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