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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Mar 26. 2019

이민 가면 행복해질까?

해가 넘어갈 무렵의 밴쿠버


이민 가서도 한국에서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대체로 이민이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보다 '어디에서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 방점을 찍는 선택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민이란 '학력과 능력에 걸맞는 일을 하면서 한국에서 사느냐'와 '좀 모양새 빠지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이민 가서 사느냐' 중에 후자를 선택하는 행위라는 이야기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함에 있어서 '자신이 하는 일', 즉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중심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문제보다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라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반면에 직업은 돈을 벌고 생활을 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며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는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디서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겠다.



- 뭐 대단한 일 하면서 살았다고?


20대와 30대 초반의 나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름의 꿈도 있었고 어쭙잖은 자존심도 있었기에 곧 죽어도 모양 빠지는 일은 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이름만 대도 주목받는 대단한 직장을 다닌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내 스스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직장을 다니고 있을 뿐이었지만, 어쨌거나 그 시절의 나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인정 욕구도 충족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회가, 특히 한국 사회가 그리 만만한가? 하루하루 일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치이며 살다 보니 자아실현이고 뭐고 일은 그냥 일일 뿐이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을 하느냐?'는 문제는 점점 중요하지 않아 졌고, 반면에 '어디서 사느냐?'는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남들이 우러러봐주는 '대단한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자신의 일에서 뚜렷한 성취를 이루어 내서 사회의 인정을 받고 그에 따른 부와 명예도 거머쥔 사람들. 이들은 자신이 이뤄낸 업적과 성취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만일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면 이민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있지는 않고 아이들과 처는 일찌감치 유학이나 이민을 보냈을 것 같다. 결국 기러기(혹은 독수리)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인정받고 잘 나간들, 가족과 떨어져서 아이들이 크는 모습도 보지 못하면서 사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



- 그래서, 이민 가면 행복해지나요?


그래, 뭐.... 대단한 일을 하면서 살지는 못했다. 근데, 그나마도 다 버리고 떠나면 행복해지나?


이민 간다고 다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론적인 답을 찾자면 '그렇다'가 더 사실에 부합하는 답이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분명하고도 객관적인 자료가 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 발전 해법 네트워크'는 2012년부터 매년 국가별 행복지수를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2018년에는 처음으로 이민자의 행복지수도 함께 조사하여 발표했다. 그런데 이 자료를 보면, 이민자의 행복지수는 그 국가의 행복지수와 뚜렷한 정비례 관계를 보이고 있다.(아래 표 참조) 이는 '어디서 사느냐?'라는 문제가 개인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꿔 말하면 '국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이민 가면 나도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별 국민의 행복지수와 이민자의 행복지수가 거의 정비례한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며, '이민 가면 무조건 행복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민 간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며, 그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을 해야만 그 나라의 국민들과 비슷한 수준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착'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고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자.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문제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인가?  전자의 경우라면 이민은 당신의 길이 아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이민이 답일 수도 있겠다.  어떤 경우에 해당하건, 다른 경우에 대한 미련은 버리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길이기도 하겠다.


누구나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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