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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Oct 25. 2018

미래를 위한 선택, 이민

밴쿠버의 랜드마크인 스탠리 파크와 다운타운의 모습


사람마다 이민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는 다를 테니, 나를 포함한 모든 이민자들의 이민 동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내가 이민을 결심하고 실행하게 된 이유'에 대한 글이 될 것 같다. 주관적인 이유가 되겠지만, 결코 주관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40대 가장의 한 사람으로서 하던 고민들이 이민을 결심한 이유가 되었고, 그 고민들은 내 또래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민'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생각이라도 해 본 것은 1998년 호주 Brisbane의 University of Queensland에 교환학생으로 1년 간 가있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해외 생활의 경험이 없었던 내게 호주에서의 1년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온 것과도 같은 충격적 경험이었다. 호주는 단순히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 정도가 아닌, 크나큰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우선 호주의 대학이 가지고 있는 선진적인 시스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나름 한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학의 최고 인기학과를 다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이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교수진, 충실한 교육과정, 학생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최적화된 학교의 시스템 등, 한국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우물 안 개구리였기에 후진적이라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던 한국의 대학이 사실 얼마나 후진적이었는지를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심지어 '미래에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절대로 한국에서 대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학교에서 느꼈던 이런 충격은 호주 사회 전반에 대한 것으로 점차 확대되어 갔다. 경험하면 할수록 호주라는 나라가 가진 선진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 당시 한국의 비합리적이고 후진적인 그것과 크게 대비됨을 느꼈다.


'한국 말고 여기서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희미하게라도 해 본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이민'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아직 꿈 많은 20대 청년이었던 나에게는 '어디서 사는가'라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면서 사는가'라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해 가는 동안 많은 것들이 깨어지고 많은 것들과 타협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학창 시절에 가졌던 '꿈'은 어느새 '현실'의 그늘 아래로 가려졌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눈 앞에 닥친 일에 쫓겨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인'이 되는 것이다. '일'과 '직장'은 '자아실현'의 장이 되기보다는 생활과 돈을 벌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무엇을 하면서 사는가'라는 문제의 중요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반대로 '어디서 사는가'라는 문제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게 된다. 어학연수나 유학 등으로 해외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 '이민'을 더 많이 꿈꾸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나와 아내의 노후를 위한 선택


나에게 있어 이민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 이는 바꾸어 이야기하면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라고 판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OECD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진 나라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이 50%가 넘으며, 이는 OECD 평균인 13%의 네 배가 넘는 수치이다. 이런 수치를 보며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아~ 한국 노인들 참 불쌍해!', '우리 부모님은 괜찮으셔서 다행이야!'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다. 남 걱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인 빈곤'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당신(우리 모두)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사업이나 로또로 대박을 맞았다면 예외다.)


현재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50%이상이라는 사실은 특히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다. 이들은 고속성장의 산업화 시대를 살아오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기회를 가졌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종신고용을 보장받았으며,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재산증식도 가장 쉽게 이룰 수 있었던 세대가 바로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기회를 가졌던 세대의 빈곤율이 50%가 넘는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30~40대인 이들의 미래는 지금의 노인 세대보다 나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종신고용의 시대도 끝났고, 부동산을 통한 재산증식의 시대도 끝났다. 수입 중 자녀의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비율은 크게 높아졌으며, 반면 저축률은 크게 떨어졌다. 그러니 어떻게 이들의 노후가 현재의 노인세대보다 나을 수 있겠는가?  당장 발등 위에 불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이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좀 더 피부에 와 닿도록 생각을 해 보자. 



'나는 중산층'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나와 내 친구들의 예를 들어보겠다. 대한민국에서 수도권의 소위 '명문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서 일하면 40대 초반에 대략 '6~7천만 원' 내외의 연봉을 받게 된다. 이 정도 연봉을 받는 친구들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서울 시내의 아파트를 대출 끼고 소유하고 있거나 전세로 살고 있고, 국산 중형차를 굴린다. 돈을 물쓰듯 쓰지는 않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여행도 가고, 여가와 소비도 어느 정도는 즐긴다. 사교육비 지출도 상당하다. 대출상환을 제외하면 저축은 거의 못하지만, '대출상환이 저축이다', '중산층이니까 이 정도는 해도 된다'라고 생각하며, 또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그 소비수준을 정당화한다.


이들은 6~7천 내외의 연봉을 받으면서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개인 소득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 상위 10%이다.(부부가 같이 이 정도 벌면 가구소득은 1억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수입의 대부분은 '근로소득'이며, 현재의 소비 생활은 현재의 소득이 계속 유지된다는 것을 은연중에 전제하면서 하고 있다. 만일 이 '근로소득'이 정리해고나 명퇴로 사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소위 '중산층'에서 탈락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서울 시내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도 대출의 비중이 큰 경우가 많으며, 순 자산을 계산해 보면 기껏해야 3~4억이나 될까 말까 한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자녀의 대학교육과 출가 후에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대한민국 상위 10%인 사람들이 처해 있는 현실인 것이다. 


심지어 대기업 임원까지 하고 퇴직했음에도 노후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 직장인의 '별'이라는 '임원' 타이틀을 달고 수억 원의 연봉을 받았지만, 자녀의 유학비용으로 그 수입의 대부분을 써버렸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노후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나 역시도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사실 나는 친구 그룹 중에서는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십수 년간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소득기준으로 친구들의 평균보다 상당히 더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을 벗어날 정도는 되지 못했고, 결국 '대한민국에서 내 미래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 문제는 '어디로 이민을 가느냐?'라는 것이었는데, 답은 자명했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나라', '일하면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나라',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는 나라', 그리고 '이민을 받아 주는 나라'.  이런 기준으로 필터링을 하고 나면, 사실 남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그중의 하나가 '캐나다'였으며, 다행히도 나와 가족들을 받아주었기에 캐나다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한 선택


대한민국에서 미래가 없는 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 자체부터가 고난의 시작이다. 사교육과 입시라는 제로섬 게임의 희생양으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설령 그 대가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업한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소위 '중산층'에 편입하게 될 것이고, 그 이후에는 또다시 위에서 언급한 부모세대의 전철을 밟게 될 뿐인 것이다. 세대를 대물림하며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아이들의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성장과정에서의 행복, 그리고 어른이 된 다음의 행복. 행복은 주관적인 가치이다. 그리고 명문대나 대기업이 그런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만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운 행복을 누리며 성장할 수 있는 곳. 학교 교육의 목표가 입시가 아닌 인성과 지적 호기심의 자극에 맞춰져 있는 곳. 좋은 대학을 못 나오고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만 살면 가난해지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곳. 답은 아이들을 이런 환경으로 옮겨다 놓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런 곳들은 나와 아내의 안정된 노후를 그려볼 수 있는 곳들과 일치했다.



이것이 내가 이민을 오게 된 이유이다. 나와 내 아내의 노후를 위해서, 그리고 내 아이들의 교육과 장래를 위해서 이민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동시에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믿고 있다. 



'그럼 이민 못가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죽으란 말인가?', '한국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냐?', '당신 말대로면 한국은 생지옥인데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합당한 반응이고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에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온 사람으로서, 나는 한국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한국에 대한 사실들은 엄연한 현실이며, 그 현실을 기반으로 그려본 한국에서의 나와 내 아이들의 미래가 매우 타당한 가설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확률이 높다고 본다. 떠날 수 없다면,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따라나서는 우'라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노후에 대해 심각하고 고민하고 착실히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 자녀의 사교육에 올인하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다. 이미 공부 잘해 봤자 별 볼일 없는 세상이 왔고, 이 현상은 앞으로 더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떠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떠난 다음에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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