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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Apr 09. 2019

이민병이 치유되면 향수병이 찾아온다.

다운타운 중심가의 고층 건물에서 내려다본 밴쿠버 다운타운


이민 후 4~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향수병이라는 과히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지, 캐나다로 영구 이주한 지 만 4년을 넘기고 나니, 이 '향수병'이라는 녀석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다행한 것은 증세가 심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지, 그냥 이 정도 수준에서 지병처럼 달고 살게 될지, 아니면 어느 순간 깜쪽같이 완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로 봐서는 중증은 아니다. 막연하게 한국이 좀 그립고, 한국에서 자주 먹었던 맛난 음식들이 생각나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다. 이런 여러 가지 그리움들이 가슴 한 켠에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은 것 같다.

  향수병에 걸린 것은 분명 처음이다. 그런데 뭔가 이 느낌이 낯설지가 않았다. 왜일까? 대체 이 향수병이라는 녀석의 정체는 뭘까? 내 마음을 한 번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언제 이런 느낌을 갖고 살았던 지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바로 '이민병'에 걸려서 살 때의 마음이 늘 이랬던 것이다.

  그렇다. 이민병과 향수병은 한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 지간이었던 것이다. 얼핏 생각하기엔 완전히 다를 것 같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닮은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아니, 거의 쌍둥이 수준이다.

  일단 좀 막연하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그 원인이 분석되지 않는다.  또한, 저지르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는다는 점도 닮아 있다. 이민병은 이민을 가야 치유가 되고, 향수병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치유가 되는 것이다.

  좀 더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이민병과 향수병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닮아 있다. 바로 아래의 두 가지이다.


  1. 결핍에 대한 갈망


   이민자들이 태평양을 건널 결심을 한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그 제각각인 이유들로부터 공통점을 뽑아내자면, 그것은 아마도 '한국에서는 충족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 '비인간적 경쟁이 없는 교육환경', '청정한 환경' 등등, 한국에서는 결핍되어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누릴(가질) 수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한 갈망이 바로 '이민병'의 발병 원인일 것이다.

  향수병의 발병 원인도 마찬가지로  '결핍에 대한 갈망'이다. 다만, 한국에 없고 캐나다에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이 아닌, 캐나다에 없고 한국에는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이 그 원인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민 초기에는 한국에서 결핍되었던 것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서 만족감을 느끼게 되고, 그런 것들이 결핍되었던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하며 '이민오 길 잘했다'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에만 있는 것들에 대한 결핍(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 맛있는 한국 음식,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익숙한 문화 등)을 점점 크게 느끼게 되고, 이런 결핍에 대한 누적된 갈망이 결국 '향수병'으로 발병하게 되는 것이다.


  2.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한 무감각

  '물'과 '공기'는 인간이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중요한 것들이지만, 풍족하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다.(미세먼지가 심각해진 한국에서는 이제 '맑은 공기'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긴 하지만)  '물'과 '공기' 말고도 풍족하기에 그 소중함을 못 느끼는 것들은 많다. 우리는 문명과 문화와 관계 속에 살면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도움을 받지만, 정작 그런 것들의 소중함은 잘 느끼지 못한다. 늘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 언제나 사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 내 모국어가 통용되는 사회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렇다. 결핍된 것들에 대한 갈망은 크지만, 정작 물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은 실감하지 못하기에 '이민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민병은 이민으로만 치유가 된다. 하지만 이민병이 치유되고 나면 어느새 향수병에 걸리게 된다. 향수병은 '귀국' 혹은 '역이민'을 해야만 치유된다.  결국 이민병에 걸린 사람은 이민병이든 향수병이든 둘 중 하나는 지병으로 달고 살아야 하는 불치의 병에 걸리는 셈이 된다.


  이민병이나 향수병이 본질적으로 같은 원인으로부터 발병하는 것이며,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가 치유되면 다른 하나가 찾아오기 때문에 '이민' 혹은 '역이민'이라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논리를 펼 생각은 전혀 없다.  '결핍'과 '무감각하게 누리는 것들'의 무게는 계량할 수도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개개인별로 그 무게는 모두 차별적일 것이다.

  그저 지금 앓고 있는 병이 '이민병'이 되었던 '향수병'이 되었던, '이민'이나 '역이민'을 저지르기 전에 먼저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한번 더 잘 따져보자는 이야기다.

  같은 맥락에서 이민이 너무 가고 싶지만 방법이 안 보이는 분들은 너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민을 실행하는 순간 향수병이 예약된다. 다 버리고 떠나기보다는 지금 선 곳에서 더 뿌리를 잘 내리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아보는 것이 먼저다. 낯선 땅에 새로 뿌리내리는 것이 이미 박혀 있는 뿌리를 더 깊이 뻗어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어렵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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