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회원들이 신상카드를 작성하는데, 질문 중에 '캐나다에 오게 된 동기'를 적는 란이 있었다. 여기에 회원 중 한 분이 매우 간결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답을 적었다.
"망해서"
한국에서 하던 일이 잘 안 되어서(망해서) 짐 싸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리고 이런 분들 중에 보란 듯이 성공해서 잘 사는 분들도 있다. 위에 예를 든 분도 지금은 이민 후에 벌인 비즈니스가 잘 되어 좋은 동네에 집도 새로 짓고 아주 잘 사시고 있는 것 같다.
그럼 한국에서 망하면 이민 가라는 이야기냐? 아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위의 사례와 적확하게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급한 이유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2nd chance, 즉 두 번째 기회가 이번 글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다. 캐나다에 와서 한국과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느낀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나라에는 Second Chance(두 번째 기회)가 있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는 두 번째 기회가 있다'라는 명제에는 두 가지 반박이 가능하다. '그럼 한국에는 두 번째 기회가 없다는 말인가?'가 우선 한 가지이고, '그럼 캐나다에서는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인가?'가 두 번째이다. 이 두 가지 반박에 대한 답을 먼저 하고 넘어가자면 둘 다 '아니다'이다. 한국에도 7전 8기의 성공을 이루는 분들이 있고, 캐나다에서도 나름대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양극화와 불평등, 젊은 세대가 겪는 상대적 불이익과 좌절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일반론적 관점에서 두 번째 기회가 구조적으로 훨씬 더 잘 보장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먼저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일단 한국은 출신 대학에 의해 이후의 미래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그 이후의 삶은 고달플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문대 진학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2nd chance 역시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사실상 거의 희박하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업한다고 해서 그 후의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종신고용의 시대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이며, 사오정(사십오 세 정년), 오륙도(오십육 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놈)라는 말이 대변하듯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 한 십 중 팔구의 회사원들은 차가운 길거리로 내던져지고, 그 후로는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퇴직자들은 '자영업'이라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를 강요당하고 그 결과로 많은 이들이 망하고 만다. 자영업의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임원 승진에 실패한 직장인들에게도 2nd chance는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비교했을 때 캐나다는 어떠한가? 우선 캐나다는 출신 대학에 의해 이후의 진로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출신 대학에 상관없이 대학에서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졸업 후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퇴직하거나 정리해고당한 직장인들의 재취업도 한국에 비해서는 용이한 편이다. 같은 분야의 다른 회사로 갈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 새롭게 도전해 보는 것도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용이하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비교해 2nd chance가 훨씬 잘 보장되어 있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퇴직자가 새로운 분야에 대한 교육을 마친 후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 더 쉽다는 점이 한국과 비교하면 가장 크게 대비되는 부분인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에선 힘든 것이 왜 캐나다에서는 가능한 것일까? 나는 두 사회가 가진 서로 다른 구조적, 문화적인 특성이 이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첫째, 캐나다의 높은 최저임금과 블루칼라의 전문성에 대한 인정이다.
한국 퇴직자들 중 상당수가 그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자영업 창업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재취업을 할 만한 취업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재교육 자체도 쉽지 않지만, 설사 재교육을 받더라도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을 유지할 만큼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찾기 힘든 것이다. 한 분야에서 퇴직을 하고 다른 분야로 취업을 할 때는 대부분의 경우 보수의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일만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수입 하락은 누구라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때의 이야기다. 일단 최저시급이 너무 낮기 때문에 그 부근의 급여를 주는 직장에는 취업해도 생활이 불가능하다. 대안으로 재교육을 통해 전문기술직 직업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텐데, 엔지니어가 아닌 테크니션 레벨의 기술직들이 이런 직업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블루칼라 기술직의 전문성에 대한 보상에 매우 인색하다. 나이 먹고 이런 직업시장으로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역시 보수는 충분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 자영업이라는 악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반면 캐나다는 최저시급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블루칼라 기술직에 대한 대우는 더욱 좋다. 목수, 전기, 배관, 용접, 자동차 정비 등의 분야에서 자격증을 가진 기술자들은 한국 대기업 간부급 직원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급여를 받을 뿐만 아니라, 경력을 쌓은 후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해 상당한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퇴직 후에 최저시급을 주는 직장에 재취업을 하더라도 먹고살 수는 있고, 일정 기간 직업교육을 받은 후 테크니션으로 직업 시장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면 그 이상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퇴직자들이 자영업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재취업을 통한 2nd chance를 찾게 되는 경향이 큰 것이다.
둘째, 캐나다에는 유교문화권 특유의 장유유서와 사농공상 문화가 없다.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은 아름다운 문화이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문화가 직업시장에서는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을 직급상 아래로 받는 것을 껄끄러워하고 나이 어린 사람을 상사로 모시는 것 역시 부끄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이것이 퇴직자들의 재취업을 어렵게 만드는 역효과를 내는 것이다. 쉬운 설명을 위해 내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다. 나는 캐나다에 온 지 6개월이 채 안 되었던 시점에 월마트에 Part timer로 취직해서 일을 했다. 이때 나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동료들 중 상당 수가 아르바이트로 하는 대학생들이었다. 20대 중반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살 짜리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새파란 아이들도 나름 선임이랍시고 나이가 두 배 이상인 나에게 업무지시를 하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처음엔 직급상 상사도 아니면서 새파란 것들이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빴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여기는 나이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존중해 주지 않는 캐나다이니 캐나다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만일 어린 동료들이 한국처럼 나이 때문에 나를 불편해하고 일 시키는 것을 어려워했더라면, 내가 그 자리에 취업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재취업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유교문화의 잔재는 바로 '사농공상'이다. 이제 '선비'라는 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은 화이트 칼라를 높게 보고 블루칼라를 낮추어보는 좋지 않은 문화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이것이 퇴직자들이 과감히 블루칼라로 전업하지 못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반면에 캐나다는 이런 전문성을 가진 블루칼라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고 처우 또한 좋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이쪽 시장으로 바로 뛰어드는 비율도 한국보다 훨씬 높지만, 여하한 이유로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처럼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한 분야에서 조기 퇴직한 후 이런 분야에서의 새 출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이 2nd chance가 있다는 것은, 이민 1세대뿐만 아니라 2세대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 사회에 2nd chance가 없다는 것은 사회로 진출하려는 신세대에게 안정지향의 평균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을 만든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꿈'을 좋다가 실패하면 그나마 평균치의 삶도 따라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에게 그 꿈이 무엇이 되었든 '최선을 다해 꿈을 좋아 보라'라고 말해 줄 수 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운이 없어서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다른 평범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물론 모든 이민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재교육과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능력이 필수적이며, Trade라고 통칭하는 블루칼라 전문직 분야에 대한 교육은 영주권자 이상의 신분이 아니면 접근 자체가 거의 힘들다. 그러니 이런 선결 조건들이 해결되지 못한 이민자들에게 지금까지 이야기한 2nd chance는 그림의 떡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을 갖춘 준비된(?) 이민자들에게는 캐나다가 '두 번째 기회의 땅'임이 분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캐나다에 대한 비교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일 뿐, 한국은 절대적으로 기회가 없고 캐나다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기회가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한번 더 명확히 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