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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Nov 25. 2018

이민, 아이들에게 꿈꿀 자유를 주다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공통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아이들을 위해서' 일 것이다. 이민을 통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은 무엇일까?  입시에 올인하는 한국 교육 환경에서의 탈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경쟁이 적은 학교 생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아이다운 삶, 자연스러운 영어의 습득,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등, 캐나다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보다 많은 장점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이런 많은 장점들 중에 가장 좋은 것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내 생각에 그것은 '꿈을 꿀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싶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할 수 있는 자유'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꿈을 꾸기만 하는 것이야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디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꿈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도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러 현실적 여건들이 최선을 다해 꿈을 향한 도전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물론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면 세계 어디에서 살든 꾸고 싶은 꿈 마음대로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순실 아주머니 딸 유라 양처럼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내 아이들의 입에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내가 이민을 선택했나 보다.)


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전력투구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패는 왜 두려운가? 한국 사회에서 꿈을 좋다가 실패했을 경우에 맞게 되는 결과는 인생에서의 완전한 낙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실패한 자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 같은 것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일반론이다. 한국에도 7전 8기로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간혹, 아주 간혹 있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의 투자와 처절한 자기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큰 것이 '꿈'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꿈을 이루는 데 성공하는 사람보다는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새로운 꿈을 찾아 다시 도전하든, 아니면 평범한 소시민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든, 어떤 형태로든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기회, 혹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가도 인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이 마음껏 꿈을 꾸고 그에 도전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꿈을 이루는 데 성공한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면서 그 사회도 발전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그런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들이 한 눈 팔지 말고 학업을 통한 일률적인 경쟁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를 바라며,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사회의 주류 계층에 편입하기를 원한다.


특화된 분야에서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다 보면, 일반적인 부분에서는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좋은 예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판검사의 꿈을 꾸던 젊은이가 고시에 실패하고 나면 일반기업에 들어가기도 힘들어진다. 고시에 올인하느라 이미 나이는 많이 먹었고, 대기업 입사를 위한 준비(스펙쌓기와 대기업 입사시험에 맞춘 공부 등)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나 연예인은 요즘 아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꿈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면으로 꿈을 이루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까지 가기는 극단적으로 어렵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아마도 1만 명이 도전하면 그중 한 두 명이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이 예체능 분야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런 꿈을 좋으며 청춘을 불 살랐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이런 이들은 대개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영구 낙오하고 만다. 한 줄기 외길 만을 따라왔는데 그 끝에서 막다른 절벽을 만났을 때 느낄 절망감이 어떨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2~30대의 사망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이 '자살'이다. 청년 자살률 역시 OECD에서 최상위 권이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나는 꿈꾸기도 힘들고, 꿈을 향해 전력투구 했다가 이루지 못하면 영원한 낙오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이 사회의 시스템에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이 고착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저평가와 나이에 따라 사람을 줄 세우는 장유유서의 문화에 그 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인들이 '새 출발'을 어렵게 하며,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한 젊은이들이 더욱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와 비교하여 캐나다는 어떤가? 캐나다라고 해서 더 많은 꿈을 가질 수 있다거나, 꿈을 이루기가 더 쉬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나이가 몇 살이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물론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을 필요로 하기는 하다.) 쉽게 말해, 꿈을 좋아 전력투구를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다시 적당한 기술을 배워 직업전선에 뛰어들면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평균치의 삶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낙오하여 남들보다 좀 뒤처질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 경기 전체에서 낙오하는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며, 설사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납득할 때까지는 꿈을 이루기 위한 전력투구를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은 아름답다.  목적이 있는 삶.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삶. 그런 노력 끝에 꿈이 이루어진다면 인생에서 그보다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꿈을 이룬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더라도 도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일생을 가슴속에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을 갖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해 도전했음에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에 승복하고 그 미련을 털어버리고 가는 인생이 훨씬 행복할 것이라고 본다.


나 역시도 성장하면서 이런저런 여러 가지 꿈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한 전력투구는 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도 여러 현실적 제약들 앞에서 주저앉았고, 결국 타협하여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길을 택하고 말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전력을 다해 노력해 볼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다. 어떤 꿈이라도 상관없다. 제 아무리 황당하고 성공확률이 낮은 꿈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보라고 독려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 중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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