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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Nov 28. 2018

내가 본 최악의 이민 실패 케이스

밴쿠버 다운타운의 그랜빌 스트리트


이민은 '도전'이다.  '도전'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도전을 성공으로 귀결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요구된다. 철저한 계획과 준비, 부단한 노력, 그리고 어느 정도의 '운'도 필요하다. 성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심각한 불운'이 따라오는 경우에는 여전히 실패할 수 있다. 이민은 실패할 수도 있는 도전인 것이다.


이민을 준비하는 분들은 이런 실패의 가능성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본 '최악의 이민 실패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 볼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악의 이민 실패 케이스'를 보게 된 것은 캐나다 땅에 처음 발을 딛었던 때였다. 영주권 서류에 도장을 받기 위해서 '임시 랜딩'을 한 후 2주 간 한인 민박집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독립된 가족실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집 안 쪽에는 여러 명이서 방을 같이 쓰는 도미토리가 있었다. 가족 없이 혼자 남자 도미토리에서 지내는 50대 중반 정도의 남자 한 분이 계셨는데, 처음부터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분 같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그곳에서 묵는 2주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도 이 분과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귀국을 이틀 정도 남은 무렵에 이 분을 포함하여 다른 분들과 함께 민박집 뒷마당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실 계기가 생겼다. 어느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후에 이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사연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분이 캐나다에 온 것은 그 시점으로부터 5년 전의 일이었다. 가족(부인, 딸, 아들)은 이미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었고, 한국에서 일을 하며 유학비를 부쳐주던 이 분은 기러기 생활을 청산하고 캐나다로 건너와 가족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주권을 받아서 오지는 못 했고, 워크퍼밋을 받아 한국 식당의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경험 이민으로 영주권을 받을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2년 정도를 낮에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고 밤에는 영어공부(영주권 신청을 위한 영어점수를 맞추기 위해서)를 하면서 정말 열심히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마침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점수가 채워졌고, 영주권을 받을 꿈에 부풀어 한인 이주공사를 통해 영주권 신청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주 공사 직원이 신청 서류를 넣으면서 이 분의 경력 중에 한 가지를 실수로 누락시켰다고 한다. 결국 경력 부족으로 영주권 신청이 반려되었고,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또 1년 정도의 시간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시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는 시점이 될 때까지 일을 하며 기다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 분에게 정말 엄청난 불행이 찾아오고 말았다.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병세는 이미 3기 정도에 들어가 있었다. 워크퍼밋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 두 번의 뇌수술을 무료로 받은 것 까지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수술 후에도 앞으로 6개월 밖에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워크퍼밋의 만료 시점도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난 의료비의 부담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캐나다 정부가 워크퍼밋의 연장이나 영주권 신청을 받아주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명확했다. 결국 영주권의 꿈은 갑자기 찾아온 청천벽력과도 같은 병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족 중에 딸은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도 했고, 시민권자와 결혼을 하여 신분문제가 깨끗하게 해결이 되었지만, 아들의 경우에는 영주권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법적 성인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는 설사 부모가 영주권을 받더라도 아들의 영주권은 함께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들은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성인이 되었기에 병역의 의무도 져야 했다. 결국 아들은 홀로 귀국하여 입대를 했다고 한다. 부인과는 이혼을 했다. 사이가 나빠져서가 아니라, 부인이라도 자력으로 영주권 신청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부인은 캐나다에 남아 영주권을 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본인은 홀로 한국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만나고 요양을 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 가족은 이민 실패로 인해 영주권은 받지 못한 채 가족이 해체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고 만 것이다. 병이 생긴 것은 예기치 못한 불행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분은 본인의 병도 이민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이 보였고, 나 역시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분을 만나 위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벌써 5 년 전의 일이니, 아마도 지금 쯤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물론 요양에 성공해서 어딘가에서 잘 살고 계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남의 불행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맞는 일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으나, 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나 진행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어쩌면 백신과도 같은 역할을 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 남짓한 동안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이 분의 이민생활에 대한 평가를 하거나 판단을 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민이라는 도전이 이런 식으로 실패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만일 이주공사의 직원의 그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아니었다면, 이 분의 가족은 지금 캐나다에서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병마도 찾아오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계획과 준비를 철저히 하더라도 타인의 실수나 예기치 못한 병, 사고 등의 불운에 의해 망가질 수도 있는 것이 이민생활이다. 이민을 준비하고 꿈꾸는 분들은 이런 점도 마음 깊이 새기고 충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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