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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Apr 22. 2019

이민에 왕도는 없다


좀 냄새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내 인생의 좌우명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은 아니고, 나름 스스로 깨우친(?) 개똥철학이라고나 할까?

"신발에 묻히지 않고 쇠똥을 치우는 방법은 없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시절 첫 농활 때. 유복한 가정에서 귀하게 자란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지만, 그래도 나름 도시내기였고 대학 들어간 지도 기껏 1년 반 밖에 안 된 내가 언제 농사일을 경험이나 해 보았겠는가? 처음으로 노동의 쓴 맛을 절절히 보며 지내던 중, 하루는 축사에서 일을 하도록 배정을 받게 되었다. 축사 안에 소들이 질펀하게 싸지른 똥들을 삽으로 퍼날라 한 쪽으로 치우는 일이었다. 

냄새도 냄새였거니와, 그 어마어마한 쇠똥의 양에 압도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overwhelmed가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하지만 못하겠다고 나자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정신을 수습하여 삽을 들고 조심조심 쇠똥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쇠똥을 삽으로 푸면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신발과 옷에 쇠똥이 묻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똥 묻은 신발과 옷이라니, 어디 포시라운 도시내기에게 상상조차 할 수 있던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새참으로 걸친 막걸리 두어 잔과 냄새나는 축사에서의 몇 시간 노동이 더해진 후,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 신발에 묻히지 않고 쇠똥을 치우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거였어."

그 후로는 쇠똥이 묻거나 말거나 과히 개의치 않으면서 일을 하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개(쇠)똥철학에 불과하고 냄새나는 표현이지만, 이 날 이후로 나는 이 말을 은연중에 어떤 깨달음처럼 가슴에 새기고 살아온 것 같다. 무언가 목적한 바가 있을 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있다면, 과감히 치르던가 아니면 목적 자체를 포기해야만 한다. "나보고 그런 일을 하라고?",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해?", "그런 건 절대 못 해" 같은 자세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것들을 이루면서 살아온 인생은 절대 아니지만)

나의 냄새나는 쇠똥철학을 감히 역사적 명언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비슷한 맥락의 유명한 말이 있다.

"기하학에 왕도는 없습니다"

프톨레마이우스가 "기하학을 배우는 좀 더 쉬운 방법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유클리드가 대답한 말이다. 응당히 치러야 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혹은 거쳐야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의미에서 나의 '쇠똥' 좌우명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웬 쇠똥철학에 유클리드 타령인가? 세상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민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민에 왕도는 없다"

이민이란 생면부지의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그것도 '묘목'이 아닌, 이식하기 훨씬 어려운 다 자란 나무를 옮겨 심어 그 땅에 튼튼히 뿌리내리게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왕도'는 없다.  옷과 신발에 더러워지는 것이 두려워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어느새 뿌리째 뽑아 온 나무는 말라죽고 만다.

한국에서 나름대로 서울 한켠에 뿌리내리고 살던 '우리 가족'이라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 캐나다 밴쿠버로 옮겨온 지 이제 만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현재의 내 상황을 살펴보자면, 아직까지 이 땅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위치까지는 온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트랙을 따라 성실히만 달려가면 부귀영화는 못 누리더라도 큰 경제적 어려움은 없이(어쩌면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약간의 즐거움도 누리면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정도나마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것은 신발과 옷에 묻는 것을 개의치 않으며 열심히 내 앞에 놓인 '쇠똥'을 치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쇠똥은 아직도 치우고 있고, 앞으로도 최소 20년은 더 치워야 한다. 

일생을 화이트 칼라로 키보드 두들기며 살아온 내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만리타향에서 나보다 스무 살 넘게 어린애들 틈에 끼어 새로운 기술을 배웠고, 매일 땀 흘리고 먼지 뒤집어쓰면서 블루칼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관절이 아프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가 없을 만큼 피곤한 날도 많지만, 그래도 이것에 내 눈 앞에 놓인 쇠똥이고, 누구도 나 대신 치워주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치울 수밖에.

그러니 쇠똥 치울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이들이여, 감히 이민을 꿈꾸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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