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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딸기아빠 Nov 06. 2018

이민 가면 뭐하고 놀지?

밴쿠버의 다운타운의 False Creek에서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

 '이민 가면 할 게 없다'는 말에 대해, 이전 글에서는 '일', 즉 '생업'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이어서 이번에는 '놀기', 즉 '여가'의 측면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한다. '지루한 천국', 살기는 좋지만 놀거리가 없어서 너무나 심심한 곳. '이민 가면 할 게 없다'라는 말은 '여가'의 측면에서 볼 때 과연 사실일까?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민 가면 할 거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반문해 보고 싶다. '그럼 한국에선 사람들 만나서 먹고 마시는 것 거 말고 뭐 할 게 있나요?' 'OO가 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음주가무 외의 활동들은 사실 캐나다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며, 오히려 캐나다가 훨씬 더 하기 좋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여가는 기본적으로 '회복'과 '즐거움'을 위한 시간이다. 그런데 한국의 여가 문화는 능동적으로 뭔가의 활동을 하기보다는 술이나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피동적인 방식이 지배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일'과 '인간관계'이다. 일 뿐만 아니라 여가에서도 일과 인간관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캐나다에 오면 이 두 가지에서 모두 해방이 된다. 한국 식의 피동적인 여가 문화에 아직 젖어있는데, 우리의 삶을 지배하던 '일'과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지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민과 동시에 찾아오는 이런 급격한 부조화는 사실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러니 '할 게 없다' 혹은 '심심하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부조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도 역시 '캐나다식 마인드의 탑재'이다.


  그렇다면 여가에 대한 캐나다식 마인드는 무엇인가? 바로 가족중심주의와 개인주의이다. 여가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캐나다의 방식이며, 개인의 시간에 대해서는 직장도 직장에서 맺어진 인간관계도 침범해 넘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이런 캐나다식 마인드를 탑재하고 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은 뭘까? 사람마다 취향과 선호가 다르니, 일률적으로 어떤 활동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각자가 자신에 맞는 여가활동을 찾을 수 있도록 일반적인 원칙은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원칙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한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로 여가를 보내면 된다.


  한국에 있을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운동 좀 해야 되는데 통 시간이 없어'. '책 좀 읽어야 되는데 통 시간이 없어'. '애들이랑 좀 놀아줘야 되는데 시간이 없어'. 맞는 말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살다 온 지  몇 년 안 되었으니 모를 리가 없다. 일단 일에 치여 사느라 시간이 없었다. 야근은 기본에 출퇴근에 왕복 2시간을 길바닥에서 버리니 남는 시간이 있을 수가 없다. 그나마 남는 시간에는 사람들 만나서 부어라 마셔라 해야 했고, 주말에는 불금에 들이부은 술도 깨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야 하니 이래저래 약에 쓸래도 없는 게 '여가'였다.


  하지만 이제 우린 캐나다에 있다. 한국에선 없던 여가가 드디어 생긴 것이다. 그럼 이 남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면 될까? 바로 한국에서 시간이 없어서 못하던 일들을 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런 활동들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삶을 위해 캐나다에 온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을 열심히 하는 것이 이민의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우선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자. 멀뚱멀뚱 집에만 있지 말고 가능한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자.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가지고 싶어 캐나다에 왔으니, '할 거 없다'는 불평은 집어치우고 아이들과 놀면 되는 거다. 다음으로는 나 자신만을 위한 활동을 해 보자. 건강을 회복하는 '운동'과 내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독서', 그리고 그 외에 다양하게 추구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한국에서 하고 싶었는데 시간 부족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있었다면, 능동적으로 그런 활동들을 하는 것으로 여가를 채워보자.


 이런 모든 활동들은 모두 능동적인 액션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피동적인 한국식 여가 마인드를 벗어버리지 못하면 시간이 남아돌아도 이런 활동으로 채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능동적인 자세로 이런 활동들을 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즐길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할 게 없어서 시간이 남아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여가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될 것이다.   


  둘째, 캐나다에서만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여가를 채우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캐나다가 가진 천혜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활동들이 있을 것이다. 지역마다 자연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할 수 있는 활동들도 다르겠지만, 어느 지역이 되었건 캐나다는 한국과는 비교하면 월등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지역과 계절에 맞게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활동 들을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노스 밴쿠버 지역은 등산과 스키(혹은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차로 30분 거리 내에 스키장이 세 곳이나 있으며, 울창한 숲길 사이로 잘 조성된 등산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국에서는 차로 몇 시간을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었던 계곡도 20분 거리 내에 무수히 많이 있다. 이런 자연을 즐기는 활동으로 여가를 채우는 것. 사실 그것이 내가 캐나다에 온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회 체육을 즐길 수 있는 환경도 한국과는 비교하기 힘들게 잘 갖추어져 있다. 골프는 물론이고 테니스와 같은 운동도 즐길 수 있는 기반 시설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갖추어져 있다. 이런 스포츠들을 즐기면서 여가를 채워나가다 보면 '할 일 없다'는 말이 쑥 들어갈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갖가지 별미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는 재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삶의 낙이라고까지 생각하며 살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그런 자리를 갖지 못하면 허전하고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었다.  그래서 캐나다에 와서 처음 얼마간은 그런 술자리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에서 예를 든 활동들로 여가를 채워나가기 시작하면서 술자리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지워졌다. 여전히 좋은데 그리움이 옅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해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생각이 변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술이 줄었고, 운동으로 몸이 건강해졌으며, 독서를 통해 내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은 뿌듯함도 느낀다. 그리고 취미로 이렇게 글도 쓰면서 내 삶의 질이 확연히 높아졌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이제 '할 게 없다'는 불평은 그만 두자. 한국에서 하지 못 했던 일, 그리고 캐나다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로 여가시간을 채우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여 보자. 이런 식의 여가 활동이 몸에 익고 나면, 이민 생활의 전반적인 만족도까지도 크게 높아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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