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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Jan 06. 2021

처음으로 진정서를 써봤다

정인아 미안해


며칠 전 이사를 하고, 어제 인터넷을 설치한 날 육퇴 후에 제일 먼저 찾아본 건 2일 밤에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1244회였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정인이에 대한 이야기는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진정서를 쓰기 전에 방송을 제대로 한번 보고 싶었다. 물론 끔찍한 사건이라 봐야겠다고 마음먹기 힘들었다. 내가 안 본다고 그 사건이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인이는 생후 8일째부터 위탁모가 키우다 7개월 입양되었고 16개월에 양부모의 폭행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양부모와 같이 산 기간은 8개월 남짓이다. 최초 아동학대 신고가 입양 4달이 좀 되기 전이니 적어도 5개월 가까이 학대를 당한 셈이다.


< 정인이 관련 기록 >
2019.6.10 출생
2020.2.3 입양
2020.4.29 강서구에서 양천구로 이사
2020.5.25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신고
2020.6.29 정인이가 혼자 차에 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주민이 아동학대 신고
2020.9.23 병원에서 아동학대 신고
2020.10.13 사망



성인도 그렇지만 아기에게 5개월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가뜩이나 그 시기의 아기는 하루하루 새롭게 보이는 세계에 적응하느라 불안할 때가 많다. 그 가운데 정인이는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학대를 당했으며, 귀에는 잡아당긴 흔적으로 피멍이 들었고, 제대로 먹지 못해 심각한 발달부진을 보였다. 사망 시에는 아기의 몸에서 7군데 골절과 췌장 절단이 확인됐다. 내장 출혈로 뱃속은 피로 가득 차 있었고 장에서는 공기가 빠져나와 있었다.


사망 하루 전에 어린이집 CCTV에 찍힌 정인이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나를 슬픔에 빠트렸다. 오랜 기간 폭행을 당해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아기는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가만히 안겨 있을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라는 사실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맞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양부에게 걸어가는 작고 무력한 정인이의 모습이 가장 아팠다. 가지 말라고 안아주고 싶지만 이미 아기가 죽은 지 3달이나 지났다.


양육자는 아기의 우주다. 아기의 온 세계다. 신체적 정신적 성장발달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불안감을 느낄 때는 엄마한테 매달려 울고 보채며 정서적 안정감을 갖기 위해 애쓴다. 아기의 가장 큰 욕구는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며 따라서 아기에게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갖춰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인이는 위탁모와 양부모를 거치며 이미 두 번의 우주가 바뀌었다. 그러면서 심한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양부모의 학대는 온 우주가 자신을 학대하는 것과 맞먹는 정서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부모는 아기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아기의 우주였다. 그 사실이 가슴을 치게 한다. 그곳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을,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아기는 알지 못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개인적으로 입양을 하고 싶은 바람을 결혼 전에 갖고 있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너무 가여웠고, 이왕이면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당시 내 경제력이 그다지 좋지 못했고, 무엇보다 아기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입양을 한다고 해도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기가 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모를까, 가능하다면 내 자식을 키워본 후에(내 양육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에) 그 경험으로 입양을 하고 싶었다.


입양에 대한 내 생각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이제 12개월 된 호야를 키우면서 육아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오히려 입양에 대한 관심이 한 풀 꺾인 것도 사실이다(동시에 아기를 입양해서 정상적으로 키우고 있는 모든 양부모를 존경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 정인이 사건을 보고 입양에 대한 마음이 더 커졌다. 물론 지금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호야가 어느 정도 큰 후에 남편과 호야가 둘 다 괜찮다고 하면 입양을 하고 싶다.


굳이 개인적인 바람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일로 해서 입양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나온 말이지만 "아동학대 가해자의 공통점은 없다"라고 한다. 양부모라서 학대를 한 것이 아니다. 학대는 친부모 밑에서도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2019년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통계에 의하면 피해아동의 가족 유형 중 친부모 가족이 57.7%, 한부모 가정과 재혼가정 등 친부모 가족 외 형태가 33.8%, 입양가정과 시설보호 등 대리양육 형태가 1.2%로 나타났다.


정인이 사건은 입양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가져야 하는 사건이 아니라 입양이 너무나 중요하고 입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신호로 읽혀야 한다. 2019년에 입양된 우리나라 아동 700명 중 절반이 국외로 입양되었다. 양천의 경찰들과 정인이의 양부모에게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입양도 한 번쯤 고려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정인이도 기뻐할 것 같다.


물론 양부모가 죄에 합당한 벌을 받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어젯밤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찾아보며, 나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아기 냄새가 폴폴 날 것 같은 그 사랑스러운 아기를 그렇게 학대했음에도 뻔뻔하게 인터뷰에 응하며 "원래 아기가 몽고반점과 아토피가 심했다"라고 말하는 양부도 소름 끼쳤다. 내가 가장 경악했던 장면은, 아기의 사망 원인 중 하나였던 췌장 절단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충격이 가해져야 하는지를 실험한 부분이었다. 양모인 56kg 여자 기준으로, 소파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누워 있는 아기를 밟는 정도의 충격이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 정도의 충격을 받고 사망한 아기의 양모에게 아동학대치사 혐의만 묻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의아했던 것은 이웃들의 진술이었다. 아기가 사망하던 날, 양모의 소리 지르는 소리와 지진이 난 것처럼 물건 집어던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부부싸움을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어째서 아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던 걸까? 걷다가 넘어져 이마에 멍이 들어도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 젖히는 게 정상인데, 왜 아무도 아기가 학대당하고 있는 줄 몰랐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무섭다.


양부도 아주 치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도, 정인이가 원래 몽고반점이 심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정인이의 학대 전 몽고반점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정말로 몽고반점이 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양부는 그것을 이용해 처음에는 몽고반점이라고 둘러댈 만큼만 학대를 가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동이 뼈가 부러지거나 어디가 찢어지지 않는 이상 경찰이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정인이가 사망하기 직전 병원으로 가기 전에도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소통했던 치밀함이다. 학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그가 취한 행동들이 정상적인 수준을 넘었다고 본다.






아기의 낮잠 시간에, 정인이 양부모의 죄를 무겁게 처벌해 달라는 진정서를 썼다. 오후에는 호야를 유모차에 태우고 왕복 40분 거리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서 등기로 보냈다. 호야가 몇 달째 유모차 거부를 종종 보이고 있어서, 20분 이상 유모차를 타고 외출하는 건 꽤 오래간만이었다. 날씨가 추워서 유모차를 잡은 손이 금세 꽁꽁 얼었다. 다행히 집에 도착하기 10분 전쯤에 호야가 칭얼거려서 뜀박질은 오래 하지 않아도 됐다.


아기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보니 창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정인이 나무에도 눈이 쌓였을까. 정인이는 죽으면서 억울하다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것이 부당한 폭력임을 몰랐을 거다. 그게 너무 슬프다. 지금 하늘에서도, 우리가 왜 이렇게 분노하는지 모르겠지. 그곳에서는 몸도 마음도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예전의 예쁜 웃음을 되찾았기를 기도한다. 정인이가 죽은 10월 13일은, 4월 16일과 함께 아픈 날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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