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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May 27. 2020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고 나서 달라진 것들 2

"성난 얼굴 찡그린 얼굴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웃는 얼굴 바~앍은 얼굴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정말 좋아요~"


봄 햇살이 거실에 가득 들어서는 시간, 이제 5개월 된 아기는 매트 위에 누워서 자기 손을 이리저리 보며 놀고 있고, 나는 그 앞에 서서 아기 손수건을 탁탁 털며 빨래를 널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마음은 바쁘다.


'이유식 먹였고, 분유도 먹였고, 이 빨래를 넌 다음에는 방에 환기를... 아, 이유식 먹인 다음에 설거지를 했던가?'


여러 가지 일들의 순서가 마음속에서 바쁘게 돌아간다. 그 와중에 아기와 놀아주기도 해야 하니 입에서는 흥얼흥얼 동요가 흘러나온다. 딱히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린 건 아니지만 부르는 사이에 기분이 좋아진다. 오히려 아기는 슈퍼맨 자세에 열중하느라 내 노래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쉬지도 않고 열심이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 가족 중에 등 근육이 제일 발달해 있을 것 같다.


"아기야아..."


아기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입 끝에서 방금 먹은 분유가 주루룩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게워내기 공격은 언제 당해도 당황스럽다. 빨래를 널다 말고 재빨리 손수건을 챙겨 아기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입 주변을 닦아준다. 요에 묻은 토도 닦아낸 후 아기 옷을 살펴보니 다행히 옷에는 묻지 않았다. 신속하게 움직인 덕분에 옷 갈아입히기 미션은 수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난 지 50일이 됐을 무렵부터 아기에게 노는 시간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먹고, 트림하고, 자고, 싸고, 울고의 반복일 뿐 노는 시간이라는 게 딱히 없었는데, 울지 않고 깨어있는 시간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 1시간, 오후 1시간 정도였다.


처음엔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라서 모빌을 틀어줬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인형을 보는 아기를 옆에서 가만히 쳐다봤다. 아기 체육관에도 눕혀놔 봤다. 꼼지락거리는 아기에게 "이거 만져봐. 저거 만져봐. 이거 봐 봐." 하다가, 혼자서 잘 놀 때는 그런 아기를 멀찍이 구경하기도 했다. 길면 20분 정도 되는 그 시간이 아까워 잽싸게 커피를 타서 마시며 여유를 부려보기도 했다.


아기랑 놀아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아기에게 들려주는 것도 놀이라는데, 왠지 오글거려서 하지 못했다(임신했을 때도 태담 태교는 해본 적이 없다). 아기띠를 하고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아기가 뭔가를 유심히 관찰하면 그 앞에 서서 기다려준 것도 놀이라면 놀이였을까? 그림책 읽어주기도 몇 번 해봤는데, 짧은 내용을 반복하다 보니 지겨워져서 그만두었다.


그렇게 놀아줄 거리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시집에 갔는데 시어머니가 동요를 틀어놓고 아기와 놀아주시는 것을 봤다. '이거다' 싶어서 다음날부터 따라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동요가 계속 나오는 영상을 검색한 다음 틀어놓고 따라 불러줬다. 아기 손이나 발을 잡고 이리저리 춤추며 놀았는데 꽤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기보다 내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아기는 시큰둥한 적도 많았다. 어쨌든 싫어하진 않으니 그냥 즐겼다.


"하얀 자동차가 삐뽀삐뽀~ 내가 먼저 가야 해요 삐뽀삐뽀~

아픈 사람 탔으니까 삐뽀삐뽀~ 병원으로 가야 해요 삐뽀삐뽀삐~"


매일 주야장천 부르다 보니 절반도 모르던 동요를 금세 외우게 되고, 아기가 옆에 없을 때도 나도 모르게 동요를 흥얼거리게 됐다. 전에는 노래가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꿀꺽 삼키기만 했었는데...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 아니라서 괜히 눈치가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처음 노래 때문에 주눅들었던 건 20대 초반에 친구들이랑 노래방을 갔을 때였다. 온 감정을 담아 열과 성을 다해 노래를 하고 스스로 만족감에 젖어있던 나에게 누군가 웃으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목석이 부르는 것 같다"라고.

'아... 내 노래가 그렇게 형편없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몇 년 전 어느 날에는 고음불가인 내가 목에 핏줄을 세우며 노래를 하자 (그때도 난 노래를 끝내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와서 "그렇게 부르면 힘들지 않아?" 하고 진지하게 물어봤다. 

꼭 그 일들 때문만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집 밖에서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게 됐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힘들게 노래 부르는 목석'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실컷 흥얼거리는 아줌마가 됐다. 물론 대부분 동요다.


자장가를 불러주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살면서 그동안 자장가라는 건 한 번도 부를 일이 없었다. 자장가는 동요 때처럼 음악을 틀어놓고 불러주는 게 아니라서 훨씬 어려웠다. "잘 자라 우리 아가"에서 "잘 자라"를 부르기 위해 입을 떼기까지 "잘 자라"라는 멜로디가 입 안에서 며칠을 맴돌았다. 아기가 잠투정을 심하게 하던 날, 난 '오늘은 기필코 자장가를 부르리라' 다짐을 했고, 목구멍에서 자꾸 막히던 "잘 자라"가 그렇게 처음으로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개미 소리만큼 작고, 볼품없이 갈라진 목소리이긴 했지만.


그 흔한 자장가인데도 막상 부르려니 가사를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새들도 뭐였지?" 하면 옆에 있던 동생이

"아가양." 하고,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달님은 뭐지?" 하면 또 옆에 있던 동생이

"영창, 영창으로." 했다.


''달님이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는 이 한밤'이라니... 자장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였나?'

안고 있는 아기의 온기를 느끼며(물론 아기는 칭얼거리고 있었다) 거실을 걸으면서 "잘 자라 우리 아가"를 처음 불렀을 때의 그 감격이란! '내가 진짜 엄마구나'란 생각에 뭉클해졌다. 옆에 있던 여동생도 "언니가 자장가를 다 부르네" 하면서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는 투로 말했다. 내 자장가를 감상한 아기는 노력이 가상하다는 듯이 거짓말처럼 스르륵 잠이 들었다.


요즘은 "잘 자라 우리 아가"랑 같이"야곱의 축복"이라는 성가를 자장가로 많이 부른다.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야곱의 축복"처럼 긍정적인 내용의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주면 좋다는 말을 어느 유튜브에서 보고 불러보기 시작했는데 썩 괜찮았다. 성가가 이렇게 괜찮은 자장가가 될 줄이야. 물론 원곡처럼 밝고 경쾌하게 부르진 않는다. 그러면 아기의 잠이 달아나버릴 테니까. 부르다가 내 눈이 감길 만큼 낮은 음으로 느리게 부른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내 자장가가 묻혀버릴 때도 많지만,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들어주는 날은 아기에게 너무 고맙다. 그동안 노래를 못 불러서 움츠러들었던 날들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질 정도다.




'잘 부르지 못하는 노래'도 엄마가 되니 제법 쓸모가 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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