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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Jun 28. 2020

6개월 아기 육아 일상

고단함의 얼굴을 한 행복

오전 6시 반. 아기가 뒤척이는 소리에 하루가 시작된다. 눈을 떠보니 남편과 내가 쓰는 침대 바로 옆에 붙여 놓은 아기침대에서 아기가 혼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게 보인다. 아기는 아침이 제일 사랑스럽다.

"잘 잤니, 아기야?"

잠긴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네니 아기가 나를 보며 "응." 옹알이한다. 기막힌 타이밍이 우스워 씨익 웃음이 난다. 아기는 뭣도 모르고 활짝 따라 웃는.


6개월 원더윅스(정신적 성장 급등기=보채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기는 어젯밤에는 3시간 동안 울며 잠들지 않았다. 졸린 것 같아서 눕히면 자기를 왜 눕혔냐며 세상 서럽게 울어재꼈더랬다. 다른 아기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더윅스 기간에는, 전체적으로 찡얼거림이 깔려있긴 하지만, 보채는 굵직한 이유들이 번갈아 찾아왔다. 이유식을 안 먹겠다고 빼액 소리치는 날도 있고, 유모차에서 잠들지 않고 우는 날도 있고, 엄마가 안 보이면 무서워하는 날도 있고, 목욕하기 싫어하는 날도 있고, 어제처럼 밤잠에 쉽게 안 드는 날도 있었다. 어느새 도약 5단계인 6개월 원더윅스도 오늘로 17일째다.


'킁킁'

몇 분 정도 미적거리다가 아기 엉덩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꾸리꾸리 냄새가 난다. 모닝 똥을 쌌나 보다. 졸린 눈으로 아기 앞에 앉아 기저귀를 가는 동안 똥냄새 때문에 잠이 반쯤 달아났다. 기저귀를 간 뒤 기계적으로 일어나 분유를 타서 먹인다. 하루 4번 먹는 루틴이 잡힌 뒤로는 육아가 한결 편해졌다. 트림을 시킨 뒤 치발기를 쥐어주니 잘 갖고 논다. 혹시 이가 났나 하고 들여다보니 아직이다.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에 아기침대에 같이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는 동안 남편은 출근 준비를 마쳤다. 같이 아기침대 옆 바닥에 앉아 남편이 어제 사온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먹었다.


오전 7시 반. 남편은 출근을 하고 나는 아기에게 팔다리 기지개를 켜준다. 아기가 좋다고 께룩께룩 웃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돌돌이를 들고 간단히 청소를 고 침대에 누워 아기를 들어 올리며 노는데 아기가 예고도 없이 목 주위로 웩 토를 한다.

'아...'

토 공격은 똥오줌 공격과 함께 육아 전투력을 상실시키는 주범 중 하나다. 이불이며 방수요며 토 공격을 몇 번 당하고 나면 빨랫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아기에게 오뚝이와 딸랑이 장난감 몇 개를 준 다음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아기 옆에 앉아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개기 시작한다.  빨래를 개다 얼핏 바닥을 보니 먼지가 제법 보인다. 청소기를 돌려야 될 것 같다.

'위잉-'

청소기를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어깨랑 팔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한다. '먼지 따위 그냥 모른 척할 걸 그랬나.' 갑자기 후회가 된다. 아기는 졸린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안고 있으면 내려달라고 하고 내려놓으면 얼굴을 바닥에 대고 으엥 울었다.


오전 9시. 아기가 첫 번째 낮잠에 들어갔다. 아기를 아기침대에 살살 눕히고 나도 자야겠다 싶어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아우~" 하고  짖는 소리가 들린다.

"으으으으응..."

아기가 잠에서 깰까 봐 황급히 일어나 창문을 닫았지만 한발 늦었다. 아기가 꿈틀꿈틀 일어난다. 자다 깨서 그런지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난 그새 다크서클이 1cm 정도 내려온 것 같다. 낮잠의 평화가 30분 만에 끝났다.


오전 9시 반.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으로 간다. 아기는 부엌 옆에 있는 쏘서에 앉혀놓는다. 아기는 쏘서에서 방방 뛰며 계속 칭얼거린다. 이유식을 만드는 동안 "응~ 다했어 다했어~ 진짜 다했네~"를 연발한다. 오늘의 이유식은 '쇠고기 단호박 청경채 묽은 죽'... 요.알.못은 오늘도 이 엄청난 요리를 해낸다. 미리 다져놓은 쇠고기와 미리 쪄놓은 단호박과 미리 데쳐놓은 청경채를 꺼내 30분 동안 이유식을 만든다.


단호박의 단맛 때문인지 아기는 아기새 같은 입을 벌리며 이유식을 곧잘 받아먹었다. 이유식을 뜬 숟가락을 아기 입 앞에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아기가 먹겠다고 입을 벌리면 냉큼 넣어준다. 고개를 쉬지 않고 좌우로 돌려대는 통에 입으로 들어가려던 숟가락이 번번이 얼굴에 이유식을 묻히고 만다. 30분 정도 이유식을 먹인 다음 모자란 양을 분유로 보충해 준다. 먹이느라 주위에 어질러 놓은 것들을 치우다가 아침에 세탁기에 넣어놓은 빨래를 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차 빨랫감(삶는 빨래)도 세탁기넣어야 될 것 같다. 아직 오전인데 벌써 기력이 떨어진다.


오전 11시. 집 앞에 파는 콩국수가 먹고 싶어 진다. 싸고 맛있고 양도 많아서 한 번 먹으면 저녁까지 든든한 요즘 나의 최애 음식이다. 아기 낮잠을 다시 재워야 되나 잠시 고민하다가 콩국수만 사 오기로 하고 아기를 유모차에 태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산발인 내 머리카락이 거울에 비친다. 머리를 다시 묶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쓴다. 아기의 마스크는 유모차에 달린 레인커버다.


유모차를 끌고 콩국수를 파는 식당까지 15분 정도 걸어가는 동안 나는 한껏 예민해진다. 오늘따라 마스크를 안 쓰고 길을 활보하는 사람이 많다. 항상 마스크를 쓰지 않고 손님몰이를 하던 과일가게 아저씨는 오늘은 마스크를 한쪽 귀에만 걸쳤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지날 때마다 유모차의 레인커버를 일일이 닫아준다. 식당까지 간 김에 근처 공원을 두어 바퀴 도는데 아기가 잠이 들었다. 아... 왠지 집에 도착하면 잠에서 깨서 다시 잠들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포장한 콩국수를 유모차에 걸고 집 쪽으로 방향을 튼다.


낮 12시 반. 집에 도착해 아기를 아기침대에 살며시 눕혀본다. 잠들 것 같기도 하고 안 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일단 부엌으로 가서 콩국수를 먹는다. 후룩후룩 한입씩 넣을 때마다 떨어진 체력이 충전되는 기분이다.

"빼앵~"

 먹어갈 때쯤 애미콜이 울린다. 아기를 한  안고 마저 먹은 다음 뒷정리를 다.


잠들지 않는 아기와 잠들기를 기다리는 나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오후 2시까지 이어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낮잠이 자기 싫은 날인가 보다. 그 사이에 똥기저귀도 한 번 더 갈고 분유도 한 번 더 먹였다. 재우기를 포기하고 동요를 틀어놓고 한바탕 놀아준다. 아기는 내 얼굴을 만지고 놀기도 하고 내 머리를 잡아당기기도 한다. 아기가 꺅꺅거리며 웃는 걸 보니 또 기분이 좋아진다. 아기 컨디션이 좋을 때 삶은 빨래를 꺼내 툭툭 털어 널고 이번에는 베이비룸 놀이판 앞에서 아기와 한참을 놀아본다.


오후 4시. 아기가 드디어 두 번째 낮잠에 들어갔다. 소음 방지를 위해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원더윅스에 대해 다룬 책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를 읽어본다. 얼마 만에 읽어보는 육아서인지... 육아는 공부할수록 끝이 없는데 나는 갈수록 게을러지는 것 같다. 30분 정도 책을 읽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방에 가보니 에어컨을 틀어놨는데도 방이 조금 후덥지근하다. 창문을 열고 조금 있으니 다시 손가락을 빨면서 잠드는 아기. 다시 밖으로 나와 브런치에서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다. 브런치는 SNS와 달리 긴 호흡의 글들이 많아서 좋다. 성경 필사도 한 페이지 한다. 중간에 아기는 한 번 더 깼다가 다시 잠들었.


저녁 5시 반. 남아있는 체력을 끌어모아 아기 목욕을 시킨다. 아기가 손발을 텀벙텀벙 움직일 때마다 아기욕조에 있던 물이 방바닥으로 흘러넘친다. 로션을 발라주고, 마지막 수유를 클리어하고, 아기 재우기에 돌입한다. 재운다기보다는 아기가 지쳐서 잠들 때까지 침대에서 서로 뒤엉켜 구르는 기분이다.


어렵사리 잠든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까치발로 살금살금 방에서 나오는데, 아기가 몸을 데굴 굴리더니 '어디 가?' 하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당황한 나는 나가려던 게 아니라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 아기 앞에서 이상한 춤을 춰보지만 아기는 마음에 안 드는지 찡찡거렸다. 그래도 왠지 잠들 것 같은 찡찡이다. 아기침대 옆에 누워 아기가 잠들기를 기다린다.


저녁 7시 반. 다행히 오늘은 아기가 제시간에 잠이 들었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거실에 앉아 글을 다.


저녁 8시. 남편이 한 손에는 아기 신발 세 켤레를, 한 손에는 진로 소주를 들고 귀가했다. 직장 상사한테 받아온 아기 신발은 거의 새것 같고 너무 귀엽다. '언젠가 아기가 이 신발을 신고 걷게 될까?' 아직은 상상이 안 된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 한 병을 둘이서 나눠 마신다. 식탁에서 나누는 수다는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별로 한 것도 없는 하루가 이렇게 또 저물었다.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육아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육아가 엄마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육아라는 게 아기의 일을 해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먹는 일, 싸는 일, 자는 일을 도와주고, 춥거나 더울 때도, 심심하거나 귀찮을 때도 '울음' 혹은 '찡찡'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아기의 일을 대신해주는 거라서, 하루 종일 뭘 했는지 모르겠는 때가 많다. 하지만 아기가 건강하게 커주고 있으니, 남편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는 밤이 있으니 그걸로 충분히 오늘도 행복했다,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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