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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Mar 24. 2021

특명! 아기와 미용실 가기


호야는 머리가 잘 자라는 편이다. 뱃속에 있을 때도 정작 얼굴은 손으로 가리고 있어 보지 못하는 날도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은 초음파 사진으로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또래들에 비해 개월 수는 가장 적은데 머리카락 길이는 제일 형님이다.


돌이 되기 전에 벌써 머리카락을 네 번 잘라줬다. 직접 잘라준 엄마표 이발이 두 번이고 미용실에 가서 자른 게 두 번이다.

내가 직접 잘라준 건 생후 4개월 때랑 8개월 때다. 두 번 다 아기용 손톱 가위로 잘라줬다. 4개월 때는 이제 막 목만 가눌 때라 비교적 손쉽게 잘랐고, 8개월 때는 움직임이 제법 많을 때라 과자로 꼬셔서 눕힌 다음 살금살금 잘랐다.


생후 3일째 머리숱.
생후 4개월과 8개월. 엄마표 이발.



미용실에 처음 간 건 생후 5개월 때였다. 호야를 봐주시던 시아버님이 호야의 머리카락이 답답해 보이셨는지 예고도 없이 미용실에 데려가 시원하게 빡빡 밀어 버리셨다. 그때는 느닷없는 삭발 소식을 듣고 눈물이 쏙 빠지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미용실은 돌 직전에 머리를 다듬으러 갔다. 어린이 전용 미용실이었는데,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명씩 예약을 받고 있어 안심이 됐고 평도 좋았다. 이번에는 남편이랑 셋이 갔다. 


어린이 전용 미용실이란 말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미용실에 들어선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진으로 미리 보고 오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별천지였다. 미용의자는 자동차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장난감이 놓여있는 거울 앞에는 만화가 나오는 TV 화면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기실에도 온갖 장난감즐비했. 미용실이 아니라 잘 꾸며놓은 베이비카페 같았다.


우리는 호야를 자동차 모양 의자에 살살 앉히고 재밌어 보이는 장난감을 골라 앞에 놔줬다. 호야가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는 사이 미용 가운을 덮는 순간, 울먹이기 시작한 호야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동차 의자에서 꺼내 내가 안은 채로 머리 자르기를 시도해도, 요란한 불빛이 들어오는 현란한 장난감들을 보여줘도, 미용실이 떠나가라 울어 젖힐 뿐이었다. 호야를 달래려고 말을 걸었지만 울음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아기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미용사의 손은 더 바빠졌다. 호야는 곧 경기라도 일으킬 것처럼 울었고 5분도 안 걸린 이발 시간 동안 그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랐. 정신없이 움직이는 장난감들, 바리깡 소리, 분주한 미용사의 손길. 전쟁 같았던 그날 이후로 한동안 미용실을  엄두를 못 냈다. 


그 사이 3개월 동안 호야의 머리카락은 쑥쑥 자라 앞머리는 이마를 폭 덮고 옆머리는 귀를 덮었다. 우린 더 미룰 수 없어서 큰맘 먹고 미용실을 또 찾아갔다. 이번에는 남편 머리도 자를 겸 남편이 다니던 일반 미용실로 가기로 했다. 주스를 담은 빨대컵과 아기과자 등 아기 달래기용 먹을거리를 챙겨 비장하게 집을 나섰다.


미용실에는 손님이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호야가 울면 피해를 받을 손님이 몇몇 있어서 더 긴장이 됐다. 남편이 먼저 머리를 잘랐고, 그동안 머리 자르는 모습을 호야에게 보여줬다. 호야는 아빠가 머리를 자르는 내내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듯 그 모습을 집중해서 봤다.


드디어 호야 차례. 미용사가 호야에게 "안녕" 말을 건네며 빗으로 앞머리를 빗어주자 호야는 웬 장난감인가 싶어 빗을 낚아챘다. 그렇게 빗 하나를 내주고 이발이 시작됐다.


내가 안은 채로 이발을 해야 해서 미용 가운은 나랑 호야 둘 다 둘렀다. 나는 팔을 껴서 입는 가운을 등 부분이 앞으로 가게 팔을 껴서 입고, 호야는 목에 두르는 가운을 걸쳤다.


내 무릎에 앉은 호야의 어깨 위로 미용 가운이 둘러지면서, 미용사의 나직한 혼잣말이 들렸다.

"이거 두를 때도 많이 울던데"

지난 기억이 생각나 나도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목 부분의 찍찍이까지 붙이고 난 후 미용사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호야를 지켜봤다. 1초, 2초, 3초. 호야는 울지 않았다. 그때부터 소리 없이 빠른 가위질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바리깡은 쓰지 않았다.


가위가 닿을 때마다 호야는 고개를 휙휙 돌렸다. 그때마다 미용사의 가위는 움찔하며 잠시 떨어졌다 다시 돌아왔다. 나는 호야가 옆머리를 자르는 동안 양쪽 무릎에 번갈아가며 호야를 앉히고, 뒷머리를 자를 때는 호야의 머리가 어깨 위로 올라오게 안았다. 남편은 옆에서 호야에게 과자와 주스를 대령하며, 한 손으로는 아기상어 영상을 보여줬다. 그렇게 한동안 미용실에는 아기상어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발은 순식간에 끝났다. "아기가 미용실에서 울지 않은 기억이 남아야 다음에도 울지 않는다"는 미용사의 말에 우리는 잘린 머리카락을 털어낼 새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가위가 한 번밖에 지나가지 못해 머리가 삐뚤빼뚤했지만 울지 않고 거사를 치른 것만도 대성공이다. 시원한 이마가 드러나니 가지런하지 않은 앞머리마저 귀엽다.


아기 덕분에 미용실에 가는 것조차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되었. 나중에는 이렇게 허둥지둥하는 시간도 그리운 추억이 되겠지. 정신이 없어 미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미용실의 추억을 글로 남긴다.


15개월 호야. 이발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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