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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Feb 08. 2021

아기 손톱 자를 땐 아기상어

핑크퐁 예찬


호야를 낳고서야 알았다. 아기를 키운다는 건 아기를 먹이고 재우는 것뿐만 아니라 손톱도 깎아줘야 하는 일이라는 걸. 쉬운 미션은 하나도 없었지만 '손톱 자르기' 역시 고난도의 미션이었다(아기용 손톱깎이가 가위처럼 생겨서 자꾸 '손톱을 자른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호야 손톱을 처음 잘라준 날은 생후 23일이었다. 그전까지는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잘라줬다. 그날도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잘라준 날이었는데 저녁에 보니 아기 손톱 끝이 뾰족했다. 손톱 하나에 가위가 비스듬히 한 번만 지나간 것처럼 날카로운 부분이 많았다. 손싸개를 하고 있지만 손싸개가 벗겨질지도 모르고 그러면 아기가 자기 얼굴을 긁어서 상처가 날지도 모르는데...!! 나는 누워있는 아기의 손 밑에 휴지를 깔고 비장하게 아기용 손톱 가위를 집어 들었다.


손톱깎이를 손에 쥐고 잔뜩 긴장을 했다. 아기의 손톱은 투명한 데다 내 손톱의 1/4 크기보다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 아기 손톱 앞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바늘에 실을 꿸 때처럼 눈을 한껏 가늘게 떴다.


보통 손톱을 깎을 때 들리는 딸깍 소리는 나지 않았다. 워낙 손톱이 얇고 물렁하니 잘리는 느낌도 없었다. 손톱이 점점 단정해지는 걸 보면 잘 깎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손 밑에 깔아놓은 휴지를 아무리 살펴봐도 잘린 손톱이 보이지 않았다. 손톱이 그만큼 작고 투명했다. 그래서 손톱을 자르고 나서도 내가 제대로 치우지 못한 손톱이 아기 입으로 들어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다.


딸깍 까진 아니었지만 톡 하는 소리가 처음 들린 건 82일째 날이었다. 손톱 잘리는 소리가 뭐라고 묘한 감동까지 일었다. 고 작은 것도 손톱이긴 했나 보다.



내 엄지 손가락 위에 아기의 다섯 손가락이 조로록.


한 단계 큰 손톱깎이로 바꾸던 날. 생후 139일.



돌 전에는 아기가 분유를 먹을 때 손톱을 깎았. 아기가 크면서 움직임이 많아질수록 아기가 가만히 있는 순간은 분유를 먹을 때뿐이었기 때문에, 분유를 먹는 동안 남편과 나는 분주했다. 남편이 기저귀를 재빨리 갈면 곧바로 내가 손톱을 깎았다. 아기가 분유를 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바람에 돌 무렵에는 240ml를 먹는 동안 손톱을 2~3개밖에 못 깎는 날도 많았다.


아기가 분유를 끊으면서 작은 위기가 찾아왔다. 아기의 하루에서 젖병이 사라져 버린 . 믿을 건 분유 먹는 시간뿐이었는데! 이제 어떻게 손톱을 잘라야 하지! 아기가 잘 때 할 수도 있었지만 아기가 깰지도 모른다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때 아기상어가 우리를 구원했다.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 바닷속 뚜루루뚜루 아기 상어!


꼬물꼬물 움직이는 아기상어 때문인지, 치명적인 리듬감 때문인지 호야는 영상에 눈을 고정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기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나는 아기가 언제 흥미를 잃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노래 하나가 끝나는 동안 열 손가락을 빠르게 훑었다. 


"핑크퐁에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주고 싶다."


거사를 끝낸 후 남편의 한마디. 그렇다 아기상어의 위력은 대단했다! 호야 13개월 차. 이제 핑크퐁의 고마움을 느낄 때가 왔나 보다.







2월 5일부터 30일 동안 매일 글을 발행합니다. (4/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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