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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Sep 27. 2021

바빠졌는데 게을러진 기분

생후 21개월 때의 기록


9월 초에 복직하고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지나가는 동안 집은 조금씩 점점 더 착실하게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거실과 주방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장난감들은 오랫동안 치워본 적이 없어서 이제는 마치 그곳들이 제자리인 것 같다.


평일 아침에는 등원과 출근 준비로 정신이 쏙 빠지고 집에 돌아오면 호야를 재우다 같이 잠들기 일쑤다. 주말엔 그동안 호야랑 보내지 못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놀아주느라 바쁘고 호야가 잠든 시간엔 드러누워 쉬기 바쁘다. 그럼 집안일은 언제 하냐고? 당연히 못하고 있다. 미처 개지 못해 방 한쪽에 쌓여 있는 옷더미 위를, 호야가 산을 넘듯 오르내리는 광경을 씁쓸하게 바라볼 뿐이다.


오늘 저녁에도 아기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보니 호야 태풍이 휩쓸고 간 거실 꼴이 말이 아니다. 미끄럼틀은 뒤집어져 있고 박스에 담겨 있던 책은 몽땅 꺼내져 있고 자잘한 장난감들은 마치 길 위에 들러붙은 검은 껌 자국처럼 늘어져 있다. 남편은 그 한가운데 홀로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아기 매트 위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벌렁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벌써 일요일 밤이라니,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한다니, 믿을 수 없다며 현실을 잊기 위해 유튜브 삼매경에 빠졌다.


요즘은 내 시간이 있어도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일이 부쩍 늘었다. 어수선한 집에 한몫 더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이런저런 영상들만 줄기차게 보고 있으니 전보다 바빠졌는데도 게을러진 기분이 든다. 이렇게 마음에 부정적인 신호가 잡히면 되도록 작은 변화라도 줘야 한다. 대체로 생각에 그칠 때가 많지만 오늘은 다행히 이렇게 조금이라도 글을 썼다. 자기 전에는 1분이라도 집을 좀 치울 예정이다. 티가 나지 않는, 나만 알고 있는 노력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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