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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Oct 31. 2021

호야의 늦잠이 선물해준 미라클모닝


새벽에 일어나 자기계발을 하는 것을 미라클모닝이라고 하지만, 엄마인 나의 미라클모닝 조건은 조금 다르다. 아침이든 밤이든 호야가 자고 있을 때 내가 깨어있는 시간이 미라클모닝, 미라클나잇이 된다. 내가 아무리 일찍 일어나거나 늦게 자도, 호야가 깨어 있다면 내 시간을 가질 수 없. 반대로 새벽이나 늦은 밤이 아니더라도, 야가 자고 있다면 가능하다.


지난 토요일에는 눈을 떠보니 7시였다. 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호야가 곤히 잠들어있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슬그머니 방에서 나왔다.

"주말인데 좀 더 자면 안 돼?"

등 뒤에서 잠돌이 남편이 잠결에 작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책상 앞에 앉아 다이어리를 폈다. 전날 일기를 짧게 쓰고, 오늘의 계획을 적었다. 내 시간이 생기면 늘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일기는 세 줄도 채 안 될 때가 있어서 일기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지만, 매일 쓰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다이어리를 다 쓴 후에는 달리기를 하러 가기 위해서 주섬주섬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페이스는 여전히 8분대이지만, 이제는 쉬지 않고 30분을 달리는 일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게 됐. 집 밖으로 나오자 쌀쌀한 공기에 닿은 뺨이 금세 차가워졌다. 햇빛이 거의 없는, 달리기 썩 좋은 날씨였다. 평소 달리기 코스인 집 앞 호수공원을 한 바퀴 뛰고 들어왔다.


'호야의 늦잠 덕분에 생기는 미라클모닝'은 보통, 아무리 길어도 내가 달리기를 마치고 씻고 나오면 끝이 난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침실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웬일이지???'


아침 8시 반이 지나도 단잠에 빠져있는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평일에 부족했던 잠을 보충해야 하는 건 남편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출근하는 엄빠 때문에 아침마다 졸린 눈을 힘겹게 뜨곤 했었는데, 모처럼 주말에라도 늘어지게 늦잠을 자주니 다행스럽기도 했다.


예상보다 호야의 기상 시간이 늦어진 덕분에 다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유유자적 도서관으로 향하는 기분이 상쾌했다. 어깨에 멘 백팩에는 반납할 책이 두 권 들어있었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도서관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주말 아침부터 가진 않을 테니까) 이미 서가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나는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들을 찾아 빠르게 훑으며 몇 권을 빌려 도서관을 나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우유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평상시에는 과자를 사지 않는데, 이날은 내가 먹을 과자랑 호야에게 줄 뽀로로 과자도 샀다. 일하면서 먹는 과자가 당 충전용이라면 주말에 먹는 과자는 여유를 한껏 더해주는 느낌이다.


10시가 다 된 시각, 잠을 듬뿍 잔 호야가 그제야 빼꼼 문을 열고 나왔다. 막 일어나 힘이 남아도는지 거실로 도도도도 뛰어간다.


호야 덕분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예전에는 주말에 뭘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침부터 달리기를 하거나 도서관을 가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호야가 없었다면, 느지막이 일어나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냈을 확률이 높다(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은 하루라고 생각하지만). 호야 덕분에 생긴 반짝이는 3시간을 기록해놓고 싶었다. 호야는, 함께 보내는 시간 못지않게 혼자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게 만들어줬다. 다음에 호야가 선물해줄 미라클모닝(혹은 나잇)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쑥쑥 잘 크는 22개월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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