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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Nov 18. 2021

열 나는 아기, 허둥대는 엄마


호야가 열이 났다. 평상시처럼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같이 노는데 얼굴이 뜨끈뜨끈했다.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38도. 기침이나 콧물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닦아주고 물을 마시게 하고 해열제를 먹였다.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금방 내리는 편이었기 때문에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했다.


다음날 아침 열을 재보니 39도였다. 허둥지둥 육아시간을 써서 소아과에 들러 약을 처방받았다. 소아과에서 열을 쟀을 때는 37도여서 그대로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했다. 나도 남편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안 있어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핸드폰으로 두 번이나 온 것을 못 받아서 선생님이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다. 호야가 열이 38도가 넘었다는 전화였다. 부랴부랴 친정 부모님께 연락드려 호야 하원을 부탁드렸다. 호야는 12시쯤 부모님 집으로 갔다. 부모님이 연세가 있으셔서 긴 시간을 부탁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하는 동안 호야 걱정에 잔뜩 예민해졌다. 6시가 되자마자 퇴근해서 데리러 가자 다행히 호야는 평상시처럼 쌩쌩했고 열도 내려 있었다.


잠들기 전까지 열이 없어서 나도 한시름 놓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새벽에 호야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열이 38도였다. 해열제를 먹고 잠든 호야는 한 시간 뒤쯤  때문에 젖은 옷이 불편했는지 낑낑거리며 울었다. 체온은 다시 정상이었다. 아침까지 열이 없어서 호야를 등원시키고 남편과 나는 출근을 했다. 그런데 호야가 등원하자마자 키즈노트에 메시지가 떴다. 현재 체온이 37.2도여서 열이 오르면 다시 연락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했는데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은호 열이 38.6도라는 연락이 왔다. 아기가 계속 안 낫는 게 나 때문인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 사무실에 말씀드려서 자녀돌봄휴가를 쓰고 어린이집으로 뛰어갔다. 오늘따라 그 길이 왜 그렇게 긴지…


어린이집에서 호야를 데리고 택시를 부르기 위해 카카오 택시 어플을 까는데 속도가 느려서 직접 택시를 잡으러 다녔다. '빈차'에 불이 들어온 택시가 몇 대 있어서 다가갔다가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한 분은 다른 시로 가는 택시라서 안 된다고 했고 한 분은 창문을 열고는 말없이 손만 휘휘 저었다. 아픈 아기를 안고 30분 동안 택시를 찾아 헤매다 지하철 역 앞에서 겨우 택시를 탔다. 이번엔 내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남편이 있는 행정복지센터로 가서 차 키를 받아 소아과에 갔다.


소아과 선생님은 냉랭하고 언짢은 얼굴로 나를 봤다. 어제 왔는데 하루 만에 같은 증상으로 또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하느라 약을 제대로 못 챙겨준 내 탓이니까(식후에 주는 약 외에 두 시간마다 주는 해열제가 있었다). 선생님은 계속

“엄마가…”

하면서 답답한 듯 한숨을 푹푹 쉬었다. 엄마가 애를 잘 봐야지 뭐하냐는 뜻 같았다. 나는 죄인처럼 앉아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데려가는 길에 혹시나 해서 들렀다고 하자

“오늘 어린이집에 보냈다고요?”

하면서 질책하듯 나를 노려봤다. '그러면 선생님은 아기 아플 때마다 휴가를 꼬박꼬박 쓰실 수 있나요'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고 우물쭈물 혼만 나다가 떨어진 타이레놀 해열제만 더 받아서 돌아왔다.


사무실에서는 느닷없이 다른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아기에게는 아기를 잘 보살피지 않은 엄마가 되었다.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걸까 지난 며칠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 집에 돌아온 후로 호야는 밥도 먹지 않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약을 먹이고 체온을 체크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했다. 열이 40도에서  몇 시간째 내려가지 않아 무서운 마음에 응급실에 가야 하나 검색하다가 요즘 고열이 며칠간 지속되는 파라바이러스가 유행이라는 글이 많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누워만 있던 호야가 남편이 오니 발딱 일어났다. 아빠를 보니 좋은가 보다. 열은 그대로인데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10시에 겨우 37도까지 떨어진 호야는 아파서 놀지 못한 게 아쉬웠는지 밤 11시가 지나도록 재잘대고 '바나나 차차'부르다 잠이 들었다. 내일은 남편이 연가를 내고 호야를 보기로 했다. 호야가 엄마 아빠의 보살핌 속에 어서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본다.


열이 아직 40도일 때. 아빠 오자 기운 되찾은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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