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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Apr 13. 2022

과거에서 온 부활절 카드



퇴근 후 남편과 호야와 함께 장을 보고 돌아온 저녁. 문 앞에 작은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응? 이게 뭐지? 캠핑 웨건은 아닌 것 같고….”


지난 주말 당일치기 캠핑 때 고생한 이후 남편이 주문한 캠핑 웨건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작은 택배 상자를 보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살펴보니 비다누에바 청장년팀에서 보낸 것이었다.


비다누에바(Vida Nueva)는 스페인어로 ‘새로운 삶’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 청년 피정(일정 기간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종교적 수련을 하는 것) 이름이다. 2박 3일 동안 진행되는 피정인데 나는 서른한 살 때 청년 비다누에바에 참가한 이후 청년팀에서 세 번, 청장년팀에서 한 번 봉사를 했었다.


‘아 부활절 카드구나.’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비다누에바 청장년팀에서 부활절 카드를 보내준다고 주소를 물어봤던 일이 기억났다. 카드만 오는 건 줄 알았는데 택배 상자가 오니 궁금한 마음에 장본 것 정리도 미뤄두고 언박싱부터 했다.


‘부활절 계란인가?’


딱 계란 세 개 정도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어? 커피네. 와 대박…!”


상자 안에는 드립백 커피 10개가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이런 센스 넘치는 부활절 계란(?)은 처음이다. 바로 읽어 내려간 부활절 카드의 내용은 더 감동적이었다.


비다에서 느낀 뜨거움과 함께 했던 행복함은 여전히 간직되어 있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선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이때 진짜 좋았는데… 돌아가고 싶다.”


추억에 젖어있는 나를 흘깃 보더니 남편이 물었다.


“뭐야, 지금 나랑 사는 것보다 더 행복했어?” (역시 자존감 높은 뻔뻔쟁이)


남편의 질문에 “당연히 그건 아니지”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내겐 특별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십 대 후반에 다시 성당을 찾은 이후 공부를 하느라 발길이 뜸해졌던 삼십 대 중반까지 본당에서, 또 교구에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천국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생각한 순간이 많았다. 나는 지금 미리 천국을 잠깐 다녀가는 것이라고.


예전의 기억으로 자꾸 나를 데려가는 걸 보니 이 부활절 카드는 마치 과거에서 온 편지 같다. 기회가 된다면 청장년팀에서 한 번 더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몇 달 동안 주말에 시간을 내야 하고 2박 3일 피정 기간 동안 집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봉사라고 하지만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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