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이나믹해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던…
올 8월은 오랫동안 두고두고 기억할 듯하다.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덮쳐왔고, 그에 따라 내 기분도 오르락내리락, 천국과 지옥을 오갔기 때문이다. 34년간 별 기복 없이, 잔인할 정도로 매일매일이 똑같았던 일상을 더 잔인하게 침범했던 몇 가지 일들에 대하여 요약해보고자 한다. 순간순간을 거치며 느꼈던 감정들을 낱낱이 적으려면 끝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1. 생애 처음이자 두 번째 조직검사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25년의 8월을 잘 설명할 수 없다. 시작은 6월 말의 건강검진이었다. 결과는 이전 글에서 썼던 것처럼 다소 충격적이긴 했다. 서두의 건강검진 결과지가 A4 1장 반 분량이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반 장 정도면 충분했는데, 무려 한 장이 넘어가는 일이 발생했고 저번달에 기재했던 녹내장 의심 말고도 바로 검진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한 번도 검사를 해보지 않아서 아마 이번에 뭔가 발견되긴 발견될 거야,라고 이미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텍스트로 결과를 받아 드는 것과는 다르니까.
7월 중순에 정밀검사를 했고, 나는 녹내장 의심 때처럼 별거 아니겠지! 그냥 추적만 하자고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혹 모양이 조금 이상해서 조직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조직검사 자체는 별 일 아니었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은 얼마나 피말리던지… 다행히 걱정할 것은 아니었고, 떼어내자고 했다. 다만, 별거 아닌데 굳이 큰돈 써가면서 떼어낼 필요가 있나 싶어 이번 달 초에 조금 더 큰 병원을 방문했다. 단순히 2차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었고, 내가 기대한 답변은 ‘처치 안 해도 됩니다!’였다. 이 단순한 한 마디를 기대했고, 나는 어련히 그럴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
그런데 웬걸… 왼쪽 미세석회가 모양이 좋지 않아서 여기도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혹은 기대했던 대로 별다른 처치를 안 해도 관계없지만, 문제는 왼쪽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진단이었다. 카테고리 C4A. 단순 조직검사는 아니어서 1박 2일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검사.
빠르게 그다음 주로 예약을 잡았지만 문제는 병원 문을 나선 그다음이었다. 요새 관련된 암도 많다는데… 미세석회는 결과가 더 안 좋다는데… 마음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챗GPT에 상담을 구해가며 마음을 안심시켰다가도, 네이버에 조직검사 결과를 검색해 보면서 다시 불안감에 휩싸이기 일쑤였던 하루하루. 내가 불안과 걱정이 많은 편이기도 해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
조직검사를 하는 것 자체도 은근히 서러웠다. 반나체로 누워있는 상태에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검사 대기 중인 내 뒤를 간호사분들이 왔다 갔다 하시는데 마치 차가운 실험대 위에 누워있는 느낌이었다. 별것 아니라면 별것 아닌 검사지만, 내가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가 싶어 서러움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석회 모양만 동글동글하니 예뻤다면!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조직검사 자체는 예사였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일주일이 ’ 찐으로‘ 피가 말리는 기간이었다. 그 다음 주 월요일 외래 진료 때에 소식을 들을 테지만, 그래도 빠르게 결과를 알고 싶어 검사 후 4일 차에 전화까지 했더랬다. 혹시 결과 나왔으면 미리 알려주면 안 되냐고. 역시나 안된다더라. 친구들을 만나도 순간적으로 검사 결과가 떠오를 정도로 얕은 불안감에 휩싸인 채 주말을 건넜다.
월요일 오전반차를 쓰고 방문한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대기하던 그 시간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게 느껴질 정도. 다만, 정말 치료가 필요한 환자분들과 함께인지라 이런 나의 섣부른 걱정이 자못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부끄러움이 깊이 들어올 새가 없을 정도로 긴장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며 마음을 다독이던 20분이었다.
드디어 결과. 정말 다행히! 양성이었다. 아무런 처치도 할 필요 없고, 그냥 6개월간 추적 관찰 하자는 결론. 허무할 정도였다. 칼같이 결과만 말씀해 주시며 3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외래 진료가 끝났다. 짧은 시간이 무색하게 3분 후의 내 마음은 얼마나 가벼워졌던가. 앞으로 건강 관리 잘하면서 살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부모님도 내가 조직검사 한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걱정스러움이 크셨나 보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검사 결과를 듣고도 연락이 없으니 어서 연락을 달라는 엄마의 다급한 카톡. 결과를 듣고는 그제야 웃으시더라. 괜히 부모님께 섣부른 걱정만 끼쳐드린 것 같아서 죄송할 따름이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말하고 싶다. 조직검사는 2%의 적은 확률일지라도 혹시 모를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진단 차원에서 하는 것뿐이니 많은 인터넷 글들을 보면서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긴 한 것 같지만).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분들 중에는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조직검사를 했으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후기를 찾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 후기 하나를 더한다. 정말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진짜 치료가 필요한 분들을 생각하며 조금 숙연할 필요가 있다고.
2. 긴장된 일상을 지탱했던 소소한 행복들
올 8월은 유독 약속이 많았다. 집순이, 막상 약속을 잡아도 때가 되면 침대 밖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성향의 나로서는 이번 8월의 변화가 실로 오랜만이었다. 움직이고 싶은 시기가 있는데 이번 여름이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먼저 약속을 잡기도 하고, 또 연락도 많이 왔다. 동기 중 한 명이 최근 이사를 해서 동기 모임 겸 집들이를 했다. 동기 집이 망원시장 근처라 집에서 먹을 음식을 살 겸해서 처음으로 둘러봤는데, 말로만 들었지 망원시장에 이렇게 맛있는 것이 많을 줄이야! 가장 큰 발견은 고추튀김 맛집 <우이락>. 다소 생소해서 맛에 대한 의문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하긴,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데 뭔들, 하고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소스에 콕 찍어먹었는데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다! 그날 동기들과 오랜만의 수다도 좋았지만, 미안하게도 우이락이라는 곳의 발견이 더 반가웠다 ㅎㅎ. 다른 동기도 우이락을 처음 맛봤다며, 우리는 그다음 날까지도 우이락 튀김이 생각난다고, 또 먹고 싶다고 말했다. 여운 남는 그 맛… 타임스퀘어에도 매장이 있던데 이번 달이 다 가기 전에 다시 사 먹어보리라.
전시회도 이번 달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한 번은 친구와 함께, 한 번은 나 혼자. 뮤지엄 한미에서 진행된 매그넘 사진전을 친구와 다녀왔는데, 포토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진전이어서 한 권 한 권 펼쳐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회화와는 다르게 사진은 작가가 직접 눈으로 보고 전해주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직관적으로 풀어내서 그런지 현장감이 훨씬 잘 느껴지는 것 같다. 탈레반 구성원 각각의 사진이 인상 깊게 남았는데, 원래는 사진 촬영도 종교적인 이유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작가와 몰래 촬영했다는 그 사진들을 보면 인간이란 자신의 흔적을 어떤 방식으로든 남기고 싶어 하는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금기된 무언가를 몰래하고 들키지 않았을 때 은근한 스릴과 약간의 우쭐함이 생기기도 하는데, 무표정한 사진 속 얼굴들에서 그 마음을 엿본 것 같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청년들이구나 싶었다. 바로 그 점에서 그 사진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집에서 뒹굴뒹굴 거릴 때도 물론 좋지만,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는 특효약은 역시 뭐라도 해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가서 새로운 무언가를 접하다 보면 관심이 그리로 쏠려 자연스레 마음이 환기가 될 때가 많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고, 취향을 넓힌다는 점에서 재미도 있다. 25년 8월이 가기까지 남은 약 일주일간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해보기 위해 종종걸음 하며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