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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다이어터 May 27. 2021

반만 이루어진 나의 꿈

(2019년 MBC여성시대 신춘편지쇼 장려상 수상작)

 

     

#1  나, 어릴 적에

     

    어릴 적에, 강 건너 마을에는 이집 저집 다니며 구걸하는 여인이 살았다. 경상도 말로 “걸베이”. 그 마을 이름을 따서 “OO걸베이”라고 불렸다. 떡진 머리,  때가 꼬질한 얼굴에 누더기 옷을 입은 여인은 냄새가 심해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소문에는 아기가 병이 나서 죽고, 남편이 집을 나가면서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을 중얼중얼 거리며 근처 마을 이집 저집을 다니며, 먹거리를 구걸했다. 그때는 대문을 잠그지 않았기 때문에 여인은 자연스럽게 우리집 마당에 들어왔고, 마당 한 가운데 서서 중얼거리고 있으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먹을 것을 바가지에 담아 주셨다.

    나와 동생은 이 걸베이가 너무 무서웠다. 걸베이가 우리집에 오면 나는 재봉틀 옆에 재빨리 숨어서 침을 꼴깍 삼키며 마당을 살폈고, 여동생은 무서워서 울었는데, ‘울면 걸베이가 잡아간다’는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는지, 겨우 울음을 삼키며 내 옆에 숨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어른이 아무도 안 계신 날, 걸베이가 우리집에 왔다. 어른이 계셔도 무서운데, 아무도 안계시니 정말 너무 무서웠다. “우짜노, OO걸베이 왔다. 우리 잡아가면 우짜노” 깜짝 놀라서 동생 손을 꼭 잡고, 같이 재봉틀 뒤에 숨었다. 온몸에 땀이 났다. 동생은 온몸을 떨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걸베이는 한참을 마당에 서서 중얼거리더니, 수돗가에서 물을 한 바가지 마시더니 집을 나갔다. 다시 올까봐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숨죽여 있었다. 어른들이 집에 오시고 나서야 마당과 수돗가에 가봤다. 마당엔 별 이상이 없었다. 수돗가에는 걸베이가 사용한 바가지가 있었다. 너무 불쾌해서, 어머니께 “걸베이가 사용한 바가지 버리면 안돼요?”라고 말했다가 등짝을 맞았다. “뭐라카노! 똑같은 사람이다. 누구든 베풀 줄 알아야지! 그래 안칸다!”

    그렇다. 우리 어머니는 누구든 집에 오면 정성껏 대접했다. 우리집도 딱히 먹을게 없었는데도 나누고 베푸는 것을 당연히 여기셨다. 심지어, 어느 날은 걸베이를 마루까지 들어오게 해서 국수를 일부러 삶아서 김치와 차려준 적도 있다. 나는 그리 깔끔한 편도 아니었으면서, 걸베이가 사용한 그릇, 젓가락을 몰래 꼭 기억했다가 그 그릇을 사용하지 않았다. 걸베이가 앉은 자리에도 앉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씀과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다음에 크면, 걸베이 없는 도시 나가서 살끼다!” 속으로 다짐했다.  



#2  나, 지금    


    세월이 지나, 나는 대도시에 살고 있다. 어릴 때의 꿈이 이루어 졌을까? 아쉽게도 반만 이루어졌다.


    사실 나는 지금, 노숙인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매일 아침 200명이 넘는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요즘은 어린 시절 우리집을 찾아온 걸베이 정도의 모습을 한 노숙인은 별로 없긴 하다. 그래도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다양한 모습에 다양한 냄새를 풍기는 노숙인들에게 정성껏 준비한 아침식사를 대접하고, 자립 지원을 위한 상담하고 있다. 수년째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가까이 앉아서 상담을 하다보면 냄새 때문에 어지러울 때도 있고, 취객이 찾아와서 소란을 일으키면 아침부터 진이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 일이 너무 좋다. 누군가에게 한 끼를 대접하는 것, 더구나 희망찬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아침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정말 보람차다. 사실 어릴 때 나의 다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도시에 가면 걸베이가 없을 줄 알았던 소년의 꿈은 무참히 깨졌다. 스무살 때 처음 간 대도시의 기차역 앞에도 구걸하는 사람이 있었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 여러 대도시에서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만 살았다. 분명히 도시에 산건 맞는데, 도시에 산 느낌이 별로 없다. 그 사이에 나의 다짐도 바뀌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는 삶을 살자!”


생각해보면, 나의 다짐은 별로 효과가 없었고, 어머니의 삶이 나를 바꾼 것 같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노숙인들을 만나며, 어렸을 때 냄새나고 지저분한 그 여인을 정성껏 대접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 비록 어릴 적 꿈은 반만 이루어 졌지만, 이제는 내 삶으로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어릴적 기억, 그 모습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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