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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Apr 30. 2020

직장 영어도 암기만한 것이 없더라.

서바이벌 잉글리시

  오늘의 퀴즈) 왼쪽 영어 단어와 오른쪽 그림은 어떤 관계일까요?

<영어 단어 혹은 엉뚱함에 관한 퀴즈>

  여러분은 과연 몇 문제나 정답을 찾았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 아리송한 퀴즈의 출처는 요즘 한창 때늦은 영어 공부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큐가 자신의 영어책에 그린 그림들이다. 매일 밤 아내에게 영어 읽기와 쓰기를 검사받는 큐는 잘 외워지지 않는 단어들 아래에 이런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그저 책에 낙서한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만의 암호를 만들고 있었다.  


  자, 정답을 공개하겠다. 


  첫 번째 None 옆에 있는 것은 그림이 아니고 한자이다. 밭 전(田). 논도 아니고 밭이라는 한자를 통해 영어 발음 [nʌn]을 유추하려고 했다.     

  두 번째 Whisper 옆에 그린 그림은 유령이다. 아이들이 보는 '요괴 워치'에 등장하는 유령 캐릭터로 이름이 <위스퍼>다. 

  세 번째 Together 옆의 그림은 눈치챘겠지만 아이스크림이다. 우리 가족이 요즘 가장 즐겨먹는 아이스크림, 바로 <투게더>다.  


  세 문제를 모두 맞힌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아주 비범한 사람이거나 아주 엉뚱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큐의 꼼수를 알아챈 아내는 이 정도 노력할 거라면 그냥 영어 단어 암기하는 편이 더 쉽지 않겠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나는 큐의 이런 노력에서 절박함과 함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내 회사 생활의 첫 영어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기억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내 서바이벌 잉글리시(Survival English)의 서막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대학시절 내내 장학금을 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던 나였지만 이상하게 영어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전공(사학) 탓에 영어사전보다 옥편을 더 많이 찾아봤을 정도였다. 솔직히 그때는 왜 그렇게 영어 공부가 하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선배형이 몇 년 후면 자동번역기가 개발되어 언어의 장벽 따위는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모두 '세계인'이 될 것이라고 한 말을 믿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되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굳이 이유를 따져보자면, 변명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나라 언어를 그토록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좀 상했다고나 할까......


  이런 내가 졸업 후 정말 운 좋게도 다국적 기업 영업팀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2년 여를 영업직에서 근무하다 덜컥 본사 마케팅팀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 우리 회사는 다국적 기업임에도, 다행스럽게, 모든 임직원이 한국인이었다. 딱 한 명 독일인 대표이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영업직에 있을 때는 한 번도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지만 마케팅팀에 와서는 사정이 달랐다. 사원인 내가 작성한 기안지를 직접 대표이사께 가지고 가서 결재를 받아야 했다. 영어로 기안지 작성을 하는 것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마케팅팀의 다른 동료들보다 몇 배는 더 시간이 걸렸지만 어떻게든 할 수는 있었다. (야근과 휴일 근무를 밥 먹듯 한 이유다.) 하지만 사장실에 들어가서 결재를 받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질문을 하면 영어로 답변을 해야 하는데 당시에 나는 질문을 알아들을 수도, 답변을 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팀에서 올라오는 기안지들은 비서를 통해 결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유독 마케팅팀만큼은 직접 담당자가 결재를 받도록 했다. 그만큼 대표이사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도 첫 결재를 받으러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대표이사 방문 앞에서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모른다. 입사 2년 차 사원에게 대표이사란 까마득히 멀리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 존재다. 그런데 결재도 받고 영어로 답변도 해야 하니 아무리 용기를 내도 방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분을 떨다가 결국 동갑내기 비서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어쩔 수 없이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영어로 짧게 인사를 하고 바로 결재판을 내밀었다. 대표이사가 무언가를 질문하려다 그만두고 몇 분간 말없이 기안지를 읽어 보더니 바로 서명을 해 주었다. 결재판을 빼앗듯 받아 들고 꾸벅 인사를 한 후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셔츠가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간신히 넘겼지만 앞으로도 이런 행운이 따라줄지 모르는 일이었다. 다음 결재는 또 어떻게 받아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진정한 위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당시 우리 팀에서 준비하고 있던 고객관리 프로그램을 대표이사께 보고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발표를 실무자가 하기로 한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거냐고!) 큰 예산이 들어가는 데다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보통 이런 발표는 팀장이나 담당 중역이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실무자 발표라니, 말도 안 되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물론 그 실무자란 바로 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걱정이 한가득인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팀장도, 담당 중역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어깨를 토닥이며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며 위로해 주었다. (얼마나 내 영어 실력이 걱정되었으면......) 


  일주일을 꼬박 영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다. 보고 자료의 논리와 근거도 중요했지만, 어떤 영어 단어가 우리말 의미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해 줄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사용했다. 다행히 중, 고등학교 시절 기계적으로 암기해 두었던 단어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아무튼 '어떤 사물을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말은 하나밖에 없다'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 맹신자라도 된 것처럼 단어 사용 하나하나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고 발표 하루 전날이 되었다. 팀장과 담당 중역에게 프레젠테이션 리허설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발표 자료에 너무 공을 들인 나머지 발표 자체는 거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보통 발표자는 청중을 보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영어로 발표를 해야 하다 보니 화면만 쳐다보고 발표를 한 것이다. 말이 발표이지 청중을 등지고 영어를 읽는 수준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지만 시간은 없고 영어 실력은 더더욱 없었다. 


  밤늦게 퇴근한 나는 발표할 내용을 전부 한글로 작성했다. 자료는 수십 장이 되었지만 다행히 세밀한 내용까지 발표할 필요는 없었다. 각 페이지마다 주요 내용만 요약해서 작성했다. 이렇게 한글로 작성한 내용을 다시 영작했다. 나한테 이런 영어 실력이 있었는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막힘없이 번역을 했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그 내용을 모두 외웠다. 한두 줄도 아니고 몇십 장의 분량을 어떻게 다 외우지 했는데 결국 다 외워지더라. 비록 일분도 눈을 붙이지는 못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절박함이 나에게 초인적인 능력을 가져다주었다. 


  과연 첫 영어 프레젠테이션은 어떻게 되었을까? 잘 끝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잘 해냈다. 마지막에 대표이사의 질문이 있었지만 그것 만큼은 팀장과 담당 중역이 대신 답변해 주었다. 물론 이를 계기로 내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 한 것은 아니다. 이후로도 영어 때문에 곤란함을 겪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회사 생활을 잘하려면 영어공부를 제대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계기'는 되었다. 


  아내에게 영어 검사를 받는 큐도, 대표이사에게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던 나도 결국 절박함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 항상 막차를 잡아타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지만 어쨌든 기차를 놓치는 것보다야 나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누군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한 것처럼, 우리에게 '절박함은 영어실력의 스승'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겠는가. 나는 삶이란 어느 면에서는 누가 더 절박한 지가 중요한 순간이 온다고 믿는다. 반대로 말하면, 그러니 반드시 매 순간 절박할 필요는 없다. 그때가 오면 그때라도 최선을 다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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