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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y 17. 2020

국가어항 들어 보셨나요? 위미항에 가고 싶다.

제주에 가고 싶다. : 낚시하기 좋은 위미항

 아직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말단 경찰관이셨던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투망 하나를 낡은 가방에 대충 담으시고 (아마도) 125cc 오토바이의 뒷자리에는 어머니를, 앞자리에는 나를 앉히고 가까운 강으로 투망질을 하러 다니셨다. 오토바이 앞에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언제나 최고였다. 호시절(好時節)이었다. 


 이미 일정 경지에 이르렀던 아버지의 투망질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품격이 있었다. 태극권 고수처럼 팔을 앞뒤로 서너 번 흔들다가 힘차게 앞으로 뻗으면, 투망은 허공에 절제되면서도 우아하게 아름다운 타원을 그리며 퍼져나갔고, 이내 물속으로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잠기었다. 그러면 피라미나 갈겨니, 운이 좋으면 모래무지나 눈치 등이 바글바글 끌려 나왔다. 어망을 든 어머니는 말 한마디 없이 아버지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다 억척스러운 아버지의 팔에 끌려 나오는 고기들을 보고는 분주해지셨다. 

 

 어린 나는 수영복도 없이 팬티 차림으로 (얕은) 강바닥을 헤집고 돌아다녔고, 물안경도 없이 물속을 제 세상처럼 샅샅이 살폈다. 그것이 나만의 능력이라고 우쭐대기도 했다. 이런 어린 시절 덕분인지 물을 좋아했고, 물속을 읽는 능력을 제법 가지게 되었다.       


 지난해 제주 한달살이를 준비하면서 생선을 직접 잡아 반찬값을 아끼겠다는 당찬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경험도 한 몫했지만 미디어의 폐해를 빠뜨릴 수 없다. <도시 어부>와 <삼시 세 끼>는 헛된 꿈을 꾸게 하였다. 낚시만 하면 월척까지는 아니더라도 손바닥만 한 물고기는 당연히 잡는 것인 줄 알았다. 해 질 녘에 던져 놓은 통발에는 문어나 게들이 바글거릴 줄 알았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호기롭게 출발한 배낚시는 갑자기 찾아온 멀미 덕분에 물고기를 잡기는커녕 앓아눕게 만들었다. 포기를 모르는 '여자 정대만'인 아내조차도 몇 차례나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었는지 모른다. 결국 뱃멀미를 전혀 하지 않던 큐만이 2자 쏨뱅이를 잡았지만 그 한 마리를 반찬으로 쓰려고 가져오기는 민망해 선장님께 (미끼로 사용하라고) 양보했다. 


 통발은 더욱 한심하다. 한달살이 집을 선택할 때 '바다와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이내'일 것이라는 원칙을 정해놓았었는데, 점잖은 말투가 매력적인 집주인 청년의 "당연히 10분도 안 걸리죠"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걸어서 10분 안에는 도저히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집 앞에서는 한 번도 통발을 던져보지 못했다. 

<제주에서 용을 보았다. 마음씨 좋은 사람에게만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집 앞 바닷가에 자주 나갔다. 걸어서 10분 이내로는 갈 수 없었지만 때론 산책을 하기 위해, 때론 낚시를 하기 위해 갔다. 그곳이 바로 '위미항'이다. 한쪽으로는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는 한라산이 보이고, 다른 한쪽으로는 하얀 등대와 수평선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 위미항은 그런 곳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한라산, 제주에 도착한 첫날부터 날씨가 도와주었다.>
<낚시는 반찬값을 아껴주지 못했지만 기다림이라는 미덕을 가르쳐 주었다. 뒤풀이로는 위미항 전력질주! 선착순 아님!>

 서귀포시 남원읍에 자리 잡고 있는 위미항은 '국가어항'이다. 솔직히 국가어항이라는 말은 이곳에서 처음 들어 보았다. '이용 범위가 전국적인 어항 또는 도서, 벽지에 소재하여 어장의 개발 및 어선의 대피에 필요한 어항'을 의미한다고 한다. 위미항과 함께 김녕항, 도두항, 모슬포항, 신양항, 하효항 등 제주도에만 모두 6개의 국가어항이 있다. 

<크고 작은 배가 정박되어 있는 모습은 뭍사람에게 매우 낯설다.>

  다른 항들은 가보지 못했지만 위미항은 확실히 초보 낚시인들의 천국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 가족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다. 물론 반찬으로 만들만한 어종을 잡는 것은 아니고, 작은 물고기들만 겨우 잡았지만 손맛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잡은 물고기는 모두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곳곳에서 지역주민분들도 낚시를 했는데, 역시 이 분들은 큼지막한 물고기들을 무척 잘 잡았다. 민물에서는 한가닥 하는 나도 바닷가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그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밖에는...... 게다가 바늘이 바닥에 걸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주민들은 기꺼이 도움을 주셨다. 그럴수록 나 자신은 더욱 초라해졌지만 말이다.   

 위미항은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그만이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 아니라서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 수 있다. 나도 아이들과 정말 오랜만에 뛰어다니며 놀았다. 술래잡기도 하고, 100m 경주도 했다. 예전에는 한참 뒤에서 뛰어도 아이들을 앞질렀는데 이제는 같은 자리에서 출발해도 먼저 도착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수영은 이미 상대가 안된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적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고, 나는 더욱 약해질 것이다. 그 빈자리를 성숙한 지혜로 채워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인생에 꼰대의 푸념이 아닌, 진정 힘이 될만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면 좋겠다. 물론 아내는 약해진 체력을 다시 강하게 만들도록 채근하겠지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그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물론 결코 포기하지는 않는다. 


 날씨가 다시 더워지기 전에 위미항에 가고 싶다. 낚시 도구를 챙겨 찬거리로 쓸만한 물고기도 잡아 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다시 한번 숨이 차도록 아이들과 전력질주를 해보고 싶다. 달리기는 어디서라도 할 수 있지만 제주라서, 위미항이라서 날듯이 뛰어볼 수 있을 것 같다.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누가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착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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