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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Apr 13. 2020

코로나 역설(逆說)과 소중한 일상에 대하여

저녁이 있는 풍경 - 영주(寧宙)

사람들이 멈추었다. 

사람들이 멈추니 사회가 멈추었다. 

사회가 멈추니 지구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자, 인간의 욕망으로 몸살을 앓던 지구가 눈에 띄게 회복하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역설이다. 


  대기오염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과 인도는 푸른 하늘의 기적에 무척 놀라고 있다.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어든 베네치아 운하도 60여 년 만에 물이 맑아졌다고 한다. 사람의 빈자리를 돌아온 물고기 떼들이 채우고 있다는 말도 있다. 세계 곳곳의 도심에서 사람이 줄어든 거리를 야생동물이 활보하며, 굳이 다른 나라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맘때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황사와 미세먼지 주의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코로나만 빼면 얼마나 축하할 만한 일인가?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아직 늦지 않았다고 가르쳐 주려는 것은 아닐까? 멈추어선 자리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이후에 대해서.      


  코로나로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가족과 집에 대한 생각도 원래 자리를 찾은 듯하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8시나 되어야 퇴근하는 부모들(내 경우는 7시 출근해서 10시 퇴근이 일반적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공부방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아마도 이것이 보통 가족의 모습일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때로는 격려해 주고 때로는 무관심한 척하며 하루를, 한 달을 그리고 일 년을 바쁘게 살아간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모두 눈을 질끈 감고 그렇게.      


  하지만 불청객처럼 나타난 코로나와 이로 인한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는 우리 모두에게 ‘시간’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재택근무, 원격의료, 온라인 개학 그리고 착한 임대료까지 하나하나가 기술적 개발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민감한 사안들인데 한방에 해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전에는 몰랐던 시간의 공백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하루는 24시간인데 말이다.


  우리 가족만 하더라도 평소에는 서로 (깨어있는) 얼굴 보기도 힘든데, 코로나 사태 이후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시간이 덤으로 생겼다.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계절의 변화를 이토록 분명하게 목격한 것은 나도, 아이들도 모두 처음이었다. 게다가 아이들 학교 공부도 봐주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은 시간이 많아진 아빠, 엄마 덕분에 숙제만 늘었다고 불평하는 쪽이지만 말이다. 매일 밤 가족영화 상영 시간을 통해 마블 영화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감상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아내가 마블 영화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주말에만 게임이 허용되는 아이들은 주중에는 공기놀이도 하고, 도화지에 과녁을 그려 사격 놀이도 한다. 읽고 싶은 책과 만화책도 실컷 읽는다. 내가 어렸을 때 놀던 방식 그대로이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을 학교와 수영장, 미술학원에 실어 나르느라 하루하루가 바빴던 아내에게도 비로소 시간의 여백이 생겼다. 아내는 그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오롯이 쏟고 있다. 아내의 오랜 꿈도 그렇게 제자리를 찾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브런치에 글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고나 할까. 아무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저녁이 있는 풍경’이 찾아온 것이다.  

<매일 밤 창문을 그려나가고 있는 아내는 꿈에서도 창문에 색을 칠한다고 한다.>

   아내는 ‘저녁이 있는 풍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품의 제목은 <영주(寧宙)>다. ‘편안한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저녁 시간을 보내는 어떤 마을의 풍경을 그린 것인데,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탁구장을 꼭 넣어달라는 내 요청으로 탁구치는 장면도 추가되었다. 어디에 있을까요?>

  코로나 상황이 끝나고 빨리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대체 그 ‘일상’이 무엇이란 말인가. 시간에 쫓기고 경쟁에 치이고, 하루에 한 번도 아이들의 깨어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그런 삶이 다시 돌아가야 할 소중한 일상일까? ‘사랑이 가득한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이 마치 기숙사 인양 잠만 자고 나와야 하는 그런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코로나는 치료제와 백신이라는 의학적 해결책과 함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우리에게 소중한 일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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