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성산 일출봉 명당 광치기 해변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by 조이홍

준, 큐 형제가 어느 정도 자란 지금은 제주에 오면 한라산을 오르지만, 아직 어린 준, 큐 형제 시절에는 언제나 성산 일출봉에 올랐다. 경사가 제법 있지만 내가 업고 안고 어떻게든 올라갔다.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온 바다가 시원해 좋았다. 우도가 왜 소섬인지도 성산에 오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지름이 600미터나 되는 굼부리 안을 바라보는 것도 뭍사람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언젠가부터 정상에 전망대가 생겨 그곳에만 머물러야 해 아쉬웠다. 물론 굼부리 안으로 내려갈 만큼 용감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매번 성산 일출봉에 가던 어느 날이었다. 수십 대의 관광버스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주차하기도 쉽지 않았다. 겨우 주차를 하고 매표소로 향하다 우리는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성산 일출봉 입구가 거의 막히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성산 일출봉에 오르려면 줄을 서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중국인이어서가 아니라 그토록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고 싶었다. 결국 그 날을 계기로 성산 일출봉에 오르는 것은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위안 삼을 것이 있었다. 오르는 성산 일출봉은 포기했지만, 보는 성산 일출봉이 있었다. 발밑에 두면 절대 볼 수 없는 성산 일출봉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당 중 하나가 바로 광치기 해변이다. 성산에서 섭지코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광치기 해변은 올레 1코스의 마지막이자 2코스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늦은 오후에 찾은 광치기 해변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뜨거운 용암이 차가운 바닷물을 만나 빠르게 굳어 형성된 지역으로 이끼 낀 너른 바위가 제주 다른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마침 파란 하늘과 흰 구름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성산 일출봉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컴퓨터 그래픽 같다고 느꼈다. 참 이상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풍광을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이번에 제주에 와서 종종 느꼈던 것인데 회색빛 건물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다 보니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이런 고상한(?)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광치기 해변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큐는 어느새 모델로 변신해 있었다. 평소에는 사진 찍기를 그렇게 싫어하는데 이곳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다양한 포즈를 취해 주었다. 포즈 하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우리 집 톱 모델 아내와 함께 단짝을 이루어 단번에 화보집 한 권을 만드는 열정을 보여 주었다. 썰물로 바위가 많이 드러났지만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물고기를 잡는 어린아이들과 엄마, 아빠들도 제법 많았다. 준, 큐 형제는 이런 웅덩이 수준에서는 시시해해서 잡지 않았지만 어린아이들이 놀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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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공간,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아내와의 관계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지금 가족 간의 관계가 엉망이거나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혼 17년 차, 그리고 아이들과 정신없이 10여 년을 보내다 보니 처음 마음먹은 결심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춰 버렸다. 아무 일 없이 사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는 마음이 일상이 되어갔고 다른 집들도 다 부딪기며 이렇게 사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던 그 순간, 첫 아이 준, 둘째 아이 큐가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의 기쁨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무리가 좀 되었지만 제주에서의 짧은 한 달을 살아보기로 했던 것이다. 아기 때처럼 아이들과 실컷 놀아주고, 아내에게는 혼자만의 시간도 갖도록 해 주고, 또 둘만 오붓하게 데이트도 즐기는 그런 시간을 통해서 조금씩 벌어진 가족 간의 틈을 메우고 싶었다. 제주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줄 공간이었다. 준, 큐 형제의 공부가 조금은 걱정되지만 지금 아니면 영원히 해 볼 수 없는 도전을 오늘도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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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성산 일출봉 이야기>


성산 일출봉은 다른 오름과는 달리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해 만들어진 수성화산체다. 화산활동 시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바닷물과 만나면서 습기를 많이 머금은 화산재 층을 이루었고 이것이 쌓인 것인 성산 일출봉이다. 생성 당시에는 제주와 떨어진 섬이었는데, 주변에 모래와 자갈 등이 쌓이면서 간조 때만 제주와 이어졌다. 그러다 1940년에 도로가 생기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성산 일출봉의 높이는 해발 182m, 둘레는 2,927m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원형에 가깝고 광치기 해변에서 보면 엎어 높은 사발 모양이다. 이곳에도 제주의 아픈 역사가 있다. 1943년 일본군이 해안절벽에 24개의 굴을 팠다. 폭탄과 어뢰 등을 감춰두고 전쟁에 대비했지만 사용하지 못하고 패전하였다. 또한 4.3 사건 당시 많은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성산 일출봉의 원래 이름은 성산(城山)이었다. 산이 성처럼 서 있다는 뜻이다. 한라산을 손수 빚은 설문대할망도 성산 일출봉과의 인연이 깊다. 옥황상제에게 쫓겨나 제주로 귀향 온 설문대할망은 여벌 옷이 없어 매일 길쌈을 했는데 성산 일출봉에 있는 기암괴석에 등잔불을 올려놓고 바느질을 했다. 처음에 바위에 등잔을 올려놓았는데 너무 낮아서 다시 바위 하나를 더 올렸다. 이 돌이 등경돌이다. 또 하루는 길쌈을 하다 오줌을 누웠는데 한 다리는 성산 일출봉에, 다른 다리는 오조리 식상봉에 디디고 앉았다. 그때 오줌 줄기에 섬 귀퉁이가 잘려 나갔는데 그때 만들어진 섬이 우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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