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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un 26. 2020

아내는 과식 다이어터!

미처가 (美妻歌) 제2장 : 먹을 때 가장 예쁜 아내  

<아내가 차린 식탁에 아내의 밥은 없다>

십첩반상 진수성찬 손수지어 맛모르고

윤기좔좔 고기반찬 굽다보니 맛떨어져

반강제로 다이어트 아내는늘 입맛없네

애처롭다 고운아내 반평생을 식단조절 

군고구마 해독쥬스 밥대신에 드시더니

구운계란 다섯알로 허기짐을 보충하네

입맛없다 푸념하며 식빵에다 잼바르고    

그위치즈 올리고는 굶었다고 한탄하네

미처가 미처 (美妻歌 美妻) 

미처요 미처 (美妻謠 美妻)

(아름다운 아내를 노래하네 아름다운 아내를)

(아름다운 아내를 노래하네 아름다운 아내를)


 우리 집 식탁에는 항상 구운(찐) 계란과 구운(찐) 고구마가 올려져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한창 먹성이 좋은 아이들을 위한 건강 간식으로 과자나 빵 대신 준비해 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갓 나온 따끈따끈한 계란과 고구마는 좋아하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나 식게 된 것은 잘 먹지 않는다. 나도 어쩌다 하나씩 먹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 워낙 구황작물을 자주 먹은 탓인지 좀처럼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계란과 고구마는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내의 식사 대용이 되곤 한다. 


 (내가 볼 때) 날씬한 아내는 언제나 다이어트를 한다.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도대체 뺄 곳이라고는 없어 보이는데 아내의 생활 자체가 다이어트의 연속이다. 이쯤 되면 '전문 다이어터'라고 불러도 좋을만하다. 특히 "나 요즘 살쪄 보여?" 나 "나 요즘 얼굴 커졌지?"라는 질문에 0.1초 내로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그 강도는 더욱 거세진다. 그때부터 아내는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 아니 밥만 거의 먹지 않는다.   


 사실 아내가 '요리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다이어트의 시기와 강도는 더욱 빈번해지고 또 강해졌다. 그토록 맛깔나게 음식을 준비하고는 정작 자신의 밥은 식탁에 올리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면서 계속 간을 보고, 그 냄새에 취하다 보니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아내가 너무도 안쓰러워 그래도 한 술 같이 뜨자고 설득해 보지만 아내는 입맛이 없다며 끝내 거절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내의 건강을 심각하게 염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아내의 손은 자연스럽게 고구마와 계란으로 향한다. 음식 만드느라 입맛이 사라진 아내가 그래도 뭐라도 먹으니 다행이다 싶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그토록 입맛도 없고, 다이어트에 한창인 아내가 섭취하는 고구마와 계란의 양이 만만치가 않았다. 몇 개를 먹는지 하나하나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면 한 끼 식사 이상으로 충분하다 싶었다. 그제야 나는 아내가 장을 볼 때 왜 계란을 세 판씩 사는지, 왜 고구마나 감자를 박스로 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내는 다이어트 중이니까 꼭 해독주스를 마셔야 한다며 냉장고에서 미리 토마토와 양배추를 끓여 만들어 놓은 해독주스 재료를 꺼내 바나나와 함께 갈아 마신다. 그것도 내가 아침 식사로 먹는 양만큼 묻고 더블로!


 우리 집은 식사를 마치면 후식을 먹는다. 사실 아내와 결혼하고 겪은 문화적 충격 중 하나가 바로 식사 끝나자마자 또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었다. 형제(남매)가 많은 우리 집은 밥 한번 먹는 것도 전쟁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많이 먹어두어야 했다. 그러니 밥을 먹고 바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밥 먹는 배, 후식 먹는 배가 따로 있다고 했다. 평소 밥을 그렇게 새 모이처럼 적게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장인 아내의 식습관이 그러하니 자연스럽게 후식을 먹게 되었다. 보통 후식으로는 과일이나 케이크, 빵 등을 먹는다. 나도 과일은 좋아하는 터라 가끔 함께 먹기도 하지만 다른 것들은 잘 먹지 않는다. 정확히는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어릴 적 습관이 여전히 몸에 남아 있는가 보다. 하지만 입맛 없는, 한창 다이어트 중인 아내는 후식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특히 아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나 초코파이(카스타드, 몽쉘통통 포함)가 있다면 백프로다.


 백 번 양보해 이 정도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일지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칼로리를 보충하는 에너지원(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쉬는 순간은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점방(부엌)을 정리하고 TV 앞에 앉아 빨래를 개는 시간이다. 오직 이 순간만큼은 세 남자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나도 가급적 아내가 온전히 이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숨소리까지 신경을 쓴다. 아내는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로 틀어 놓고서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런 평화의 순간이 오면 아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오늘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었다." 

 "다이어트 때문에 평생 먹고 싶은 걸 실컷 먹어 본 적이 없어!" 


 그럼 고구마와 계란과 해독주스는? 나는 아무리 배고파도 구운 계란 다섯 알까지는 못 먹는데?

(물론 이런 질문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그러고는 뭔가를 결심한 듯 주방으로 가 식빵에 잼을 바르고 그 위에 치즈를 한 장 올려와 다부지게 먹기 시작한다. 딱 한 개만 만들어 오는데 정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드신다. 그러고는 하나 더 먹을지 나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하루 종일 굶었는데 하나쯤 더 먹어도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그럼 아내는 마치 데자뷔처럼 다시 주방으로 가 식빵에 잼을 바르고, 그 위에 또다시 치즈를 한 장 올려 먹는다. 그렇게 두 장의 식빵을 가뿐하게 해치운 후 갑자기 "아, 맞다. 냉장고에 어묵 있었는데 그걸 먹을걸." 하며 몹시 아쉬워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곧 그 어묵이 아내 앞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종종 아내에게 지상에서 가장 무거운 동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럼 차가운 아내의 눈빛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으로 날아온다. 그러면 나는 그 동물이 엄청난 채식주의자라는 사실도 일깨워 준다. 아내의 등짝 스매싱이 정확히 날아와 꽂히는 순간이다. 자주 반복되는 상황이지만 나 또한 굽히지 않는다. 진정한 용기란 진실을 향해 침묵하지 않는 법이다. 


 인정한다. 아내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 많은 집안일에 틈틈이 그림도 그린다.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아이들 공부와 숙제도 봐준다. 집안일을 한 싸이클 다 돌고 쉴 때다 싶으면 어느새 또 청소기를 돌리거나 화장실 청소를 한다. 얼마나 활동량이 많은지 아내는 자주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기까지 한다. (음... 이렇게 쓰다 보니 나는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네 T T) 아무튼 이렇게나 활동량이 많은 아내에게 다이어트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일부러라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사실 아내는 요즘 살이 쪄서 고민이라고 하지만 17년 전 결혼식(역대 최저 몸무게를 찍은 날) 이후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다. 결혼식 날 약속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게 해 주겠다는 말을 지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먹고 싶은 것은 실컷 먹을 수 있도록 우리 두 사람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니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을 훌훌 털고, 좋아하는 음식 마음껏 배부르게 먹었으면 좋겠다. 항상 예쁜 아내지만 먹을 때 가장 예쁘니까.

 


 브런치에 올리는 모든 글이 아내의 '사전 검열' 대상이지만, 특히 '미처가'라는 제목으로 올리는 글은 매우 엄격한 사전 검열을 받는다. 따라서 '발행'되었다는 것은 그 엄격한 검열을 통과했다는 것이므로 작가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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